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 “대구간송미술관 통해 변화 의지 표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Immerse:K’ 전시는 단순한 미디어아트 전시를 넘어 한국 문화유산이 지닌 깊이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도전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신념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전통 미술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을 통해 간송미술관이 지향하는 방향성과 그 중심에 놓인 그의 철학을 들어보았다.
간송미술관, 문화보국의 길을 잇다
일제강점기였던 1938년에 시작된 간송미술관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다. 한국의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계승하는 역할을 자임하며, 이를 통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화보국의 사명을 지닌 공간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것은 물론, 사람을 키우고 연구에도 힘썼다. 이후 그의 뜻을 잇고자 1965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생겨났고, 5년 이상 연구에 대한 발표가 학술 전시 형태로 이어졌다. 이것이 간송미술관의 봄·가을 정기 전시로 발전했으며, 일반 공개를 시작한 것은 간송 선생이 돌아가신 후 1971년부터다.
전인건 간송미술관 관장은 간송의 철학을 이어받아 미술관 운영을 맡으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문화유산의 가치를 배우며 성장했고, 자연스럽게 ‘문화보국’이라는 신념을 자신의 삶 중심에 두게 되었다. 해외에서 학업을 마친 후에도 한국 문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고, 간송미술관의 운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전 관장은 “문화유산은 과거의 것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자산이므로 보존과 혁신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며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연구와 교육, 그리고 새로운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발전하는 기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2013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설립했고, 지난해 9월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을 이끌었다.
“간송 선생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이 곧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는 문화보국 철학을 바탕으로, 간송미술관이 새로운 시대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전시와 연구 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번 ‘Immerse:K’ 전시도 그러한 노력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 보존을 넘어, 이를 대중과 공유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Immerse:K’ 전시, 전통과 기술의 융합
간송미술관은 ‘Immerse:K’ 전시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 부니 별이 빛난다(구달바별)’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 제목은 간송미술관 설립자 간송 전형필 선생이 광복 후 남긴 예서 대련 ‘雲開千里月 風動一天星’,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의 시대를 맞이한 기쁨을 표현한 문장에서 따온 것이다.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 등 주요 작품을 활용한 이머시브 & 인터랙티브(immersive & interactive) 미디어아트 몰입형 전시로, 한국 전통 예술과 디지털 기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탄생했다. 조선의 회화와 서예 작품이 대형 스크린에서 생동감 있게 펼쳐지고, 관객은 그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작품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한국 전통 미술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이번 미디어아트 전시는 간송미술관이 지금까지 시도해온 IP 확장 사업의 결정판이자, 시대·장소·매체를 넘어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며 쌓아온 경험의 집약체”라며 “관객을 완전히 에워싸는 듯한 몰입감을 주기 위해 3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이야기했다.
간송미술관이 이토록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에 진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온도·조명·습도 등의 영향을 받아 손상되는 작품이 많을 수밖에 없지 않나”며 “디지털이어야만 공간적·시간적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고, 동시에 여러 곳에서 전시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은 물론, ‘미래 세대’가 친근하게 여기는 미디어를 통해 접근해야 K-헤리티지를 알릴 수 있다는 전인건 관장의 철학이 밑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진행한 간송미술관 전시들에 대한 오마주 장면이 포함돼 있어 올드팬들이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문화재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 경험하는 전시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접근 방식이 한국 전통 예술의 매력을 세계에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이 한국 문화유산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간송미술관의 변화와 도전
간송미술관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전통적인 보존과 전시의 역할을 넘어서는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에는 미술 작품을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현재는 미디어아트,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기술 등을 활용해 한국 미술의 가치와 문화적 깊이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간송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더 풍성하고 몰입감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간송미술관은 국내외 연구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국 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도 지속하고 있다.
전인건 관장은 “‘간송미술관이 한국 문화를 글로벌 무대에서 조명하는 중심이 되길 바란다’는 비전 아래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시뿐 아니라 학술적 연구와 문화 교류 등의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구간송미술관은 지역적 특성을 살린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미술의 연구 및 보존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글로벌 문화 교류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해야만 지역 문화 활성화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한국 미술의 가치 확산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전 관장의 바람이 사람들에게 가닿은 것일까. 대구간송미술관 개관기념전이 열린 3개월(2024.9.3~12.1) 동안 전국에서 22만 4000여 명의 관람객이 전시를 찾았다. 그 결과 ‘2024년을 빛낸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되는 쾌거를 안은 바 있다.
한국 문화유산의 세계화를 향한 노력
전인건 관장은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콘텐츠의 힘을 활용해 한국 미술을 세계 무대에 알리는 것이 그가 집중하는 분야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3D 스캔해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이를 전 세계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또한 해외 유명 미술관 및 박물관과 협업해 간송 컬렉션을 소개하는 전시를 추진하며, 한국의 문화유산을 세계적인 문화 콘텐츠로 확장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자산을 준비하는 일이자 미래의 한국을 만드는 밑거름”이라고 강조하며, 우리 문화의 지속 가능한 보존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문화재 보존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과학적 연구와 기술적 접근을 통해 체계적인 보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간송미술관이 한국 문화의 중심이자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전인건 관장. 그는 한국 문화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한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간송미술관은 앞으로도 국내외 연구기관과 협력해 문화유산의 지속 가능한 보존과 활용 방안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보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문화보국을 실현할 수 있어요. 이번 ‘immerse:K’ 전시가 간송미술관의 이런 의지를 담고 있는 첫 번째 프로젝트입니다. 간송미술관의 콘텐츠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문화유산 콘텐츠를 아우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해 전통 미술과 현대 예술의 접점을 넓히고, 더 많은 이들이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 첫발을 내딛었으니, 앞으로도 간송미술관의 계속되는 도전에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찾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