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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아픈 뒤 병원 찾는 농어촌, 예방이 1순위

입력 2026-09-0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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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일차 의료 허브와 성과 기반 보상체계 제안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농어촌 지역 의료·돌봄 현안 해법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박지수 기자 jsp@)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농어촌 지역 의료·돌봄 현안 해법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박지수 기자 jsp@)

농어촌 의료 접근성은 병원 수나 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병원까지 갈 이동 수단이 부족하고 진료받은 뒤 어느 기관을 찾아야 하는지 안내받기 어렵다. 의료와 돌봄이 서로 연결되지 않아 치료 이후의 생활은 다시 환자와 가족의 몫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농어촌 주민의 삶을 이해하는 일차 의료 체계와 지역 보건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의료·돌봄 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어촌 지역 의료·돌봄 현안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는 농어촌 의료의 구조적 한계와 평창군의 일차 의료 강화 사례가 소개됐다. 토론회는 이만희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서삼석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이 공동 주최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농어촌 의료 접근성, 거리만의 문제 아냐”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는 농어촌 의료가 주민의 노동과 생활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농업인은 근골격계 통증을 일상적으로 견디면서도 계절과 작업 일정 때문에 쉽게 쉴 수 없다. 그러나 진료실에서는 “무리한 작업을 하지 말라”는 식의 권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농어촌의 의료 접근성은 거리만이 아니라 이동과 정보, 진료 안내, 의뢰와 연계까지 포함하는 문제”라며 “농업인의 삶을 모르는 의료가 만드는 간극은 생각보다 크다”고 말했다.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과 진료과를 스스로 찾아다니지 않도록 의료가 일종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복합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농어촌 가족의 사례도 언급했다. 지역에서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하면 보호자는 환자를 데리고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아 여러 진료과를 돌아야 한다. 검사 일정이 나뉘면 장거리 이동을 반복해야 하지만 이를 조정해주는 인력은 찾기 어렵다. 지역의 방문간호와 재택 의료 기반도 충분하지 않아 의료적 돌봄까지 가족에게 전가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장 교수는 전북 정읍에서 5개월 동안 진행한 주민 주도형 통합돌봄 사업도 소개했다. 주민 16명을 ‘마을 돌봄 매니저’로 양성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고 돌봄 수요를 파악하도록 했다. 주민들은 외부인의 접근을 거부하거나 집에 머무는 이웃까지 발굴했지만, 필요한 공공서비스로 연결하는 단계에서는 한계가 나타났다.

거동이 불편한 주민을 대신해 신청서를 작성해도 행정기관이 본인 방문을 요구하거나, 사업마다 대상자 기준과 진입 절차가 달라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장 교수는 “주민들이 돌봄 수요를 찾고 초기 평가를 하는 일은 잘했지만, 주민의 노력만으로 공공 시스템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법으로 군 단위 ‘공공 책임형 일차 의료 허브’를 제시했다. 보건소와 보건지소·보건진료소를 연결하고 의사와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 팀을 두는 방식이다. 여기에 방문간호와 돌봄 기관, 민간 의료기관, 마을 주민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 참여를 활용하되 부족한 인력과 예산을 무급 자원봉사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장 교수는 “병원까지 가는 의료에서 사는 곳으로 오는 의료와 돌봄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지리적 불리함이 권리의 격차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8일 '농어촌 지역 의료·돌봄 현안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8일 '농어촌 지역 의료·돌봄 현안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박지수 기자 jsp@)

평창군, 치료 전 예방하는 일차 의료 실험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은 고령자가 중증질환이나 노쇠로 돌봄이 필요한 단계에 진입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농어촌 의료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박 원장이 제시한 수치에 따르면 건강한 사람의 연평균 의료비는 약 50만 원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지만, 합병증이 없으면 약 200만 원, 합병증이나 골절이 발생하면 의료비와 장기요양비를 합쳐 약 2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그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잘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는 보건소만의 일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일차 의료 전문가가 함께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평창군은 보건의료원을 중심에 두고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를 연결하는 ‘허브-스포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허브-스포크란 전문인력과 기능을 갖춘 중심기관이 주변의 소규모 의료기관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방식이다. 주민은 가까운 보건지소나 보건진료소에서 진료를 받고,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면 보건의료원의 지원을 받는다. 평창군은 이를 위해 개별 사업 중심의 조직을 생활권 중심으로 바꾸고 의사·간호사·운동처방사·영양사 등이 함께 만성질환과 노쇠를 관리하도록 했다.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집에서 혈압과 혈당을 측정하면 의료진이 원격으로 수치를 살핀다. 측정이나 전화 상담만으로 관리가 어려운 주민에게는 여러 전문가가 참여하는 심층 진료를 제공한다. 약을 늘리는 대신 복약과 식사, 운동을 함께 관리하는 방식이다. 공중보건의와 치과의사·한의사가 보건진료소를 순회하고 숙련된 전문의가 보건진료소 간호인력에 임상적 자문도 제공한다.

노쇠 예방에는 걷기보다 근력운동과 단백질 섭취를 결합한 관리가 이뤄졌다. 박 원장이 소개한 평창군 연구에서는 1인당 100만 원을 투입한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주민의 이후 진료비가 882만 원, 장기요양비가 약 600만 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원과 요양시설 이용을 늦추거나 막은 결과다.

문제는 비용을 지출하는 기관과 편익을 얻는 기관이 다르다는 점이다. 예방사업 예산은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지만 절감되는 의료비는 건강보험 재정에 반영된다. 지자체로서는 예방사업을 확대할 직접적인 유인이 부족한 셈이다.

박 원장은 건강 상태와 의료비 지출 개선 정도에 따라 의료기관과 지자체에 보상하는 가치·성과 기반 지불제도를 제안했다. 건강한 주민이 병원을 덜 찾을수록 의료기관이 손해 보는 현행 행위별 수가체계를 바꿔야 의료진도 운동·영양 관리와 예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농어촌에 ‘공공 종합의원’을 설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여러 진료과를 모아놓은 의원이 아니라 지역의 의원과 보건진료소, 상급병원, 돌봄 기관을 연결하고 다학제 서비스를 지원하는 거점기관이다. 민간 의료 기반이 약한 농어촌에서 공공이 먼저 모델을 만들고 지역 여건에 따라 다양한 운영방식을 실험하자는 구상이다.

박 원장은 “지역 필수의료 특별회계를 대학병원과 지방의료원에만 투입해서는 안 된다”며 “취약지역의 일차 의료와 주민 건강을 끝까지 책임지는 체계를 만드는 데도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발표가 가리킨 방향은 같았다. 농어촌 의료 문제는 의료인력을 배치하는 것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민의 생활을 이해하는 진료, 병원까지의 이동, 진료 이후의 돌봄, 지역 자원의 연계가 하나의 체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농어촌 주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아픈 뒤 찾아가는 병원’에서 ‘아프기 전부터 건강을 지키는 일차 의료’로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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