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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게 배운다

입력 2026-09-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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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중장년 진짜 공부’] “돈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1990년 첫 직장인 증권회사에 입사했을 때 주식시장이 사상 첫 1000포인트를 기록했다. 부푼 기대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10년이 흘렀다. 청와대에 가게 돼 10년 동안 야금야금 사 모은 주식을 정리해야 했다. 1999년 IMF 때로, 주가지수는 300~400대를 오르내리는 등 역사상 최저점을 기록했지만 눈물을 머금고 주식을 팔았다. 청와대에 들어가 일하다 보니 벤처붐이 일었고 주식시장이 연일 새 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외양간도 소도 다 잃은 내겐 의미가 없었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2008년 청와대를 나왔다. 한 그룹 상무로 영입됐으나 내게 맞지 않는 자리라는 걸 느끼고 3개월 만에 그만뒀다.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주식을 했다. 할 줄 아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고, 당시 증권사에 이름을 날리는 입사 동기들이 즐비했다. 그들을 믿고 시작했다. 하루에 한 달 월급을 버는 나날이 이어졌다. ‘무슨 이런 세상이 있나? 진즉 이렇게 살걸’. 그러나 꿈같은 세월은 얼마 가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주가가 하염없이 떨어졌고, 그럴수록 기회다 싶어 더 샀다. 결국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집어넣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때가 2008년 금융위기였다.

2014년에는 20년 넘게 갖고 있던 아파트를 팔았다. 당시 벌이가 마땅치 않았고, 아파트를 짊어지고 사는 게 부담됐다. 그런데 얼마 안 가 그 아파트가 재건축됐고, 판 가격보다 다섯 배 이상 올랐다. 지금은 강남에서 가장 크고 비싼 아파트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아내와 나는 강남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앞을 피해 다닌다.


돈 앞에서 서툴렀던 날들

줄곧 돈 이야기를 꺼리며 살았다. 돈은 내 팔자에 없는 것이라고 단념했고, 돈을 밝히면 속물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원고료나 강의료를 물어보면 ‘알아서 달라’며 얼버무렸고, 누가 재테크 이야기를 꺼내면 슬쩍 자리를 피했다. 글을 쓰고 강연하며 살았지만, 돈 앞에서 늘 어색했다.

그런 내가 10여 년 전부터 달라졌다. 월 200만 원을 벌지 못해 아내가 가계를 책임졌다. 아버지는 자식의 기를 살려주고 싶으셨는지, 자동차에 몇 십만 원 하는 내비게이션을 달아주시면서 “몸만 건강하면 다 살게 돼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내 덕분에 먹고사는 기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아내 직장에서 해주던 종합건강검진에서 위암 선고를 받았다. 오진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그로 인해 깨달은 바가 컸다.

육십을 향해 가면서 돈은 더 이상 피해 갈 수 있는 화제가 아니었다. 친구들 모임에 가도 자식 결혼자금, 병원비, 노후 준비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다들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만만찮은 불안이 깔려 있었다. 젊을 때는 부모는 그저 어른이니 알아서 사시겠거니 했고, 자식은 언젠가 저절로 독립하겠거니 했다. 이 나이가 되니 어느 쪽도 저절로 되는 일은 없었다. 부모를 살피는 것도, 자식을 독립시키는 것도 돈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돈과 건강이 한 몸처럼 붙어 다닌다는 것도 알게 된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비가 나가고, 병원비를 아끼려다 몸을 더 상하게 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아플 때를 대비해 돈을 모으는 것 못지않게, 아프지 않으려고 돈 쓰는 일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낀 세대, 돈이 절실해지는 나이

오십을 넘기면서부터 누구나 수입은 정점을 지나고, 자식은 아직 독립하지 못했으며, 부모는 병원 출입이 잦아진다. 부모를 봉양하면서 동시에 자식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이른바 낀 세대의 자리에 서 있다.

젊을 때는 돈이 없어도 시간과 체력으로 메울 수 있다. 몸으로 때우고, 버티고, 기다리면 되지만 나이가 들면 안 된다. 남아 있는 시간도 체력도 줄어든다. 그 자리에 돈이 대신 들어와야 한다. 젊어서 돈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지금은 하기 싫은 걸 안 해도 되게 해주는 것이다.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고 늙어갈 수 있는 선택지, 친구들과 밥 먹고 앞장서 계산할 수 있는 선택지,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선택지. 한마디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선택지가 바로 돈이다.


(이미지=AI 생성)
(이미지=AI 생성)


나만의 기준 없으면 파도에 휩쓸린다

무엇보다 돈을 다루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젊을 때는 굴려서 불리는 공격이 중심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가진 것을 지키는 수비가 중심이어야 한다. 은퇴가 코앞인데도 마음이 조급해져 평생 모은 돈을 낯선 곳에 던져 넣는 이들을 여럿 보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만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어디에 돈을 쓰고, 쓰지 않을지 기준이 없으면 이런 상태에 놓인다. 남들이 장사하고 투자해서 돈을 많이 벌거나 큰 수익을 냈다고 하면, 그걸 하지 않은 자신을 자책한다. 심하면 자기만 소외되거나 기회를 놓치지 않았는지, 상대적 박탈감과 극도의 불안 상태에 빠져든다.

또한 기준이 없으면 남의 소비가 곧 내 소비의 잣대가 된다. 옆집이 차를 바꾸면 나도 바꾸고 싶고, 친구가 좋은 곳으로 이사 가면 내 집이 갑자기 초라해 보인다. 요즘은 남의 살림살이가 손바닥 화면 안에서 실시간으로 들여다보이는 세상이라 이 비교가 한층 더 지독할 수밖에 없다.


나만의 소비 기준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결국 남을 보지 않고 나에게 묻는 일이다.

●내가 가장 많이 해본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잘 알고 잘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할 때 즐거운가?

●한 달에 얼마가 있으면 마음이 편한가?

●이 소비가 꼭 필요하고 정말 나를 위한 것인가?


돈을 쓰는 품격

남의 시선 때문에 돈을 쓴 적도 많았다. 청와대 비서관, 회사 임원 시절에는 옷차림 하나, 가방 하나까지 남들이 어떻게 볼지 신경 쓰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물러나 보니 그게 다 부질없는 소비였다는 걸 알았다. 정작 나를 지탱해준 건 좋은 옷이 아니라, 힘들 때 밥 한 끼 사줬던 친구, 책 한 권 선물해준 지인, 그런 사람들과 나눈 적은 돈이었다.

식당에서, 택시에서, 서비스를 받는 자리에서 돈을 낸다는 이유로 거만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자신이 가진 돈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상대에게 짧은 인사 한마디 건넬 줄 아는 여유와 겸손이 사람의 품격을 말해준다.

이 나이의 과시적 소비는 자신의 결핍을 드러낼 뿐이다. 이제는 삶의 결을 채우는 데 써야 한다. 물건을 사는 소유의 소비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경험의 소비로 옮겨가야 할 때다. 책과 배움, 건강을 지키는 식재료,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밥 한 끼는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다. 오히려 은은하게 쌓여 그 사람의 인품이 된다.


관리한다는 것, 흐름을 안다는 것

돈을 쓰는 법 못지않게 돈을 관리하는 법도 중요하다. 오랫동안 돈 관리를 귀찮은 일, 쪼잔한 일로 여겼다. 통장은 몇 개인지, 어디에 얼마가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았다. 그러다 한번은 급히 목돈이 필요한 순간에 돈을 융통하지 못해 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 있는 줄 알았던 돈이 다른 곳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그 뒤로 돈 관리를 소홀히 하는 건 호방함이 아니라 무책임한 일로 여기게 됐다.

요즘은 쓸 돈과 모을 돈과 불릴 돈을 나누어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고 있다. 당장 쓸 돈은 편하게 쓰고, 모을 돈은 손대지 않고, 불릴 돈은 서두르지 않는다. 이 몇 가지를 지키는 사람치고 돈 때문에 크게 무너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이도 알 만한 이 단순한 이치를 어른이 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산다. 그리고 그 흐름을 파악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아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통장을 열어 얼마가 들어오고 얼마가 나가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돈이 가르쳐준 것들

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돈은 움켜쥐기보다 흘려보낼 때 제 역할을 한다. 강물도 흐를 때 맑듯, 돈도 필요한 곳으로 흘러갈 때 사람도 관계도 함께 살아난다. 거창한 기부만이 나눔은 아니다. 사소한 돈도 그것이 사람을 향해 흐르면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불어난다.

나는 돈을 통해 사람을 배웠다. 돈이 걸린 자리에서 사람의 본색이 나온다. 어려운 형편에도 남에게 베푸는 사람을 보며 부끄러웠던 적도 있고, 넉넉한데도 인색한 사람을 보며 씁쓸했던 적도 있다. 돈은 관계를 시험하는 저울이다. 돈을 나누는 모습에서 그 사람의 그릇이 드러나고, 돈을 빌리고 갚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진심이 드러난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일수록 돈 문제가 생기면 관계가 더 크게 흔들리는 것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배웠다.

돈은 나 자신을 가르쳐준다. 무엇에 돈을 쓸 때 행복한지 알아가는 과정이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돈을 쓰기 시작하면서 삶이 훨씬 단순해졌다.

돈은 시간에 대해서도 가르쳐준다. 젊을 땐 돈을 아끼려고 몇 시간씩 발품을 팔았다. 지금은 시간을 아끼려고 기꺼이 돈을 쓴다.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돈만 아끼려 들면 그건 자신을 소진하는 일이다.

돈은 물려주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애써 모은 돈을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는 나이 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치는 물음이다. 요즘은 서른 넘은 자식을 품고 사는 부모가 허다하다. 무리해서 자식에게 다 내주고 정작 자신의 노후를 저당 잡히는 부모를 자주 본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자식이 힘들다는데 어느 부모가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부모가 노후 준비 없이 늙는 것이야말로 훗날 자식에게 가장 무거운 짐이 된다.

아내는 요즘 운동에 열심이다. 다른 사람 부축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걸어 다니다가 죽는 게 목표란다. ‘내 노후는 내가 감당할 테니 너는 네 인생을 책임져라’라고 자식과 선을 긋는다. 이런 선 긋기는 야박함이 아니라 자식을 믿고 홀로 서게 만드는 배려이자 자식에게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다짐임을 이제는 안다.


돈이라는 거울

작가 김승호는 베스트셀러 ‘돈의 속성’이라는 책에서 ‘열심히 산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부자가 되지도 못한다. 부자가 된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부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고 말한다.

나 역시 평생 돈을 좇으며 살았지만, 정작 돈에서 배운 건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돈은 집을 지을 순 있어도 가정을 만들지는 못하며, 약을 살 수는 있어도 건강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돈은 강력하지만 전능하지 않다. 이 경계를 잊는 순간 돈은 도구가 아니라 우상이 된다.

돈은 결국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피하지 않고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어른의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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