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채우는 삶에서 내려놓는 삶으로
유정은 마보 대표

명상은 잡념을 없애거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일만 뜻하지 않는다. 내가 왜 불안한지, 어떤 생각에 매어 있는지 알아차리는 연습이다. “나이 들수록 명상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유정은 마음챙김 명상 플랫폼 ‘마보’ 대표를 만나 중장년에게 명상이 필요한 이유를 들었다.
직장과 가족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50대. 은퇴가 가까워지면 ‘얼마나 더 이룰 것인가’보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로 질문이 달라진다. 자녀는 독립하고 직장에서의 역할은 줄어든다. 배우자와 보내는 시간은 늘고, 부모의 노화와 자신의 나이 듦도 실감한다. 지금까지 자신을 설명해주던 것들이 하나둘 달라지는 시기다. 유정은 대표는 이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은 바뀔 수 있을까’에서 시작된 명상

유 대표가 처음부터 명상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컨설턴트로 한국 기업의 조직구조와 인사 제도를 개편하는 일을 했다. 업무 특성상 수많은 직장인을 인터뷰했는데, 여러 조직을 들여다볼수록 조직구조나 업무 프로세스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계와 소통, 감정에서 비롯된 비슷한 갈등이 있었다.
“그때 ‘구조와 프로세스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사람의 문제라면, 사람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생겼어요.”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발견했고, 이 책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바로 구글에서 개발한 마음챙김 기반 정서지능 프로그램을 소개한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Search Inside Yourself)’다.
기독교 신자였던 유 대표에게 명상이란 종교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수행에 가까웠다. 이 책을 만난 뒤 명상은 다르게 다가왔다. 정서지능과 심리학, 뇌과학을 토대로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는 훈련이었다.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죠. 우리가 자신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잘 모르기 때문이고,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보기 시작하면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 굉장히 큰 통찰이었어요.”
그는 책의 저자이자 구글 엔지니어였던 차드멩 탄(Chade-Meng Tan)에게 프로그램을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만남으로 이어져 마음챙김 기반 정서지능 프로그램을 국내에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명상 앱 개발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구글이 창업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한 공간에서 무료 명상 모임을 운영했는데, 한 참가자가 “집에서도 명상을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방법을 모르겠다”며 유 대표의 목소리를 녹음해 앱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당시는 명상 자체가 지금보다 낯설었고, 한국어 명상 앱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는 기업 강의를 다니면서도 “명상이 좋은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회상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어로 된 명상 앱 하나 정도는 있어야겠구나’ 싶었어요. 개발도 모르고 사업도 몰랐지만 일단 그냥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지금의 ‘마보’가 탄생했다. 2018년 정식 투자를 받으며 서비스의 틀을 갖췄고, 어느덧 10년이 됐다. 최근에는 40~50대 이용자 증가세가 눈에 띈다고 한다. 70대 이용자가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 명상을 배우고 싶은데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몰라 찾기도 하고, 잠이 오지 않거나 불안한 마음 때문에 주변의 권유로 시작하기도 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을 만날 때
왜 중장년에게 명상이 필요할까? 유 대표는 “나이 들수록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30대에는 삶의 많은 문제를 외부의 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요.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직급이 올라가고, 돈을 더 벌면 지금의 결핍이 사라질 거라고 기대하죠. 하지만 40~50대가 되면 달라져요. 어느 순간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중년 이후에는 그동안 익숙했던 방식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긴다. 여기에 은퇴와 자녀 독립, 부모의 노화, 자기 신체 변화까지 겹친다. 특히 은퇴는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자신을 설명해주던 직함과 역할이 사라지면서 정체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 이때 많은 사람이 “나의 쓸모나 가치가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을 경험한다”고 그는 말했다. 사회에서 한발 물러난 뒤 세상과의 연결이 느슨해지고,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다.

마보의 오프라인 명상 과정에도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직장과 가족관계의 변화를 겪는 중장년이 많이 찾아온다.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익숙했던 일상과 관계가 달라지면서 불안이나 상실감을 겪는다는 점은 비슷하다. 문제는 그 마음을 편하게 털어놓을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은 고통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안 보려고 하거나 도망가려고 해요. 그런데 자기 내면을 계속 보다 보면 ‘내가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던 고통이 이렇게 많았구나’를 알게 됩니다. 그걸 보는 것이 시작이에요.”
명상은 생각을 지우는 것보다 지금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피는 데서 출발한다. 호흡과 몸의 감각을 살피고 그와 연결된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믿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 ‘성공해야 인정받는다’, ‘자녀는 이래야 한다’ 등과 같은 생각이다. 유 대표는 이를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핵심 믿음’이라 설명했다.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많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돈이 없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지도요. 너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나이가 온 거죠.”
은퇴 후 ‘뭘 하지?’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은퇴를 앞두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부터 고민하게 된다. 재취업을 할지, 창업할지, 여행을 다닐지, 새로운 취미를 찾을지 생각한다. 그는 이런 것보다 먼저 자신에게 질문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삶의 방향을 찾을 시기가 명상이 제일 필요한 때죠. 나 자신과 대화를 해야 하니까요.”
그 역시 30대 중반에 비슷한 고민을 했다. 컨설턴트로 일하며 안정적인 소득을 얻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명상을 알리는 일을 선택하면 수입이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한 달에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직접 계산해봤다. 막연한 불안을 숫자로 확인하고 나니 다른 길을 선택할 여지가 보였다.
은퇴를 준비할 때도 현실적인 생활비와 노후자금은 중요하다. 다만 그는 필요한 수준을 넘어 계속 더 많은 것을 좇는 것이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인지 한 번쯤 물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은퇴할 수 있다는 건 나를 찾아가는 길일 수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일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막막할 수 있지만 이제는 내 삶을 관통하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에 시간을 써보면 좋겠어요.”
그는 인도의 전통적인 생애 구분을 예로 들었다. 삶의 전반부에는 배우고 가정을 꾸려 가족을 부양하지만, 사회적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되면 다음 세대에 권한을 넘기고 물질적 욕망을 줄이며 명상과 정신적 수양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삶의 후반부를 대하는 태도였다.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곳으로 가려 하기보다, 자신이 쥐고 있던 것을 조금씩 놓는 연습을 한다. 나이가 들면 실제로 내려놓아야 할 것이 늘어난다. 직함을 내려놓고 자녀를 독립시키며 부모를 떠나보낸다. 몸도 예전 같지 않다. 유 대표가 중장년 이후 명상을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시니어가 자신의 쓸모 또는 가치가 없어진 것 같거나 세상에서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 많이 힘들어해요. 그래서 나이 들어갈수록 명상이나 정신적인 수양이 필요한 거죠. 세상과의 연결감을 더 넓혀가는 훈련을 해서 더 성숙해져야 하고요. 가족관계에서도 자신을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상 수업을 마치고 나면 ‘우리 남편이 하면 좋겠다’, ‘아내가 하면 좋겠다’, ‘우리 아이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참가자가 많아요. 그럼 저는 ‘남을 시키려고 하지 말고 본인이 먼저 시작하시라’고 대답해요.”(웃음)
잡생각이 떠올랐다면, 명상을 잘하고 있는 것

명상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큰 장벽 중 하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오해다. 막상 눈을 감으면 저녁 메뉴부터 내일 할 일, 오래전 기억까지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다 “나는 잡생각이 많아서 명상을 못 한다”며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오히려 그때부터가 명상이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그게 명상이에요. 내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 생각이 났다는 걸 알아차렸다면 명상을 굉장히 잘하고 있는 거예요. 잡생각이 떠오른다고 자책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생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호흡에 집중하다 ‘오늘 저녁에는 뭘 먹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다시 호흡으로 주의를 돌린다.
일상의 걱정도 마찬가지다. ‘노후자금이 부족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아프면 어떡하지’, ‘자식에게 짐이 되면 어떡하지’로 이어질 때, 중간에서 ‘내가 지금 걱정하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명상한다고 불안이 사라지고 가족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나, 내 감정이나 생각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그러면서 마음의 힘이 강해지죠. 마음의 힘이 강해진다는 건 무거운 생각이 안 떠오르는 게 아니라, 생각이 났을 때 ‘그래, 또 왔네’ 하고 조금 더 빨리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이런 알아차림은 반복해서 연습하며 익히는 것으로, 처음부터 오랜 시간 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마보 역시 초보자가 명상의 기본을 익힐 수 있도록 7일간의 기초 훈련을 제공한다. 유 대표는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챙김 명상의 원리를 경험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오디오 앱이라 팟캐스트처럼 명상 콘텐츠를 듣기만 하는 분들이 많아요. 명상은 하는 거예요. 안내에 따라 호흡하고 몸의 감각을 느끼면서 실제로 자신의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유정은 대표는 은퇴 후 생긴 시간을 또 다른 일로 서둘러 채우기보다 그동안 미뤄둔 질문을 꺼내보라고 권했다.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믿어온 것이 여전히 중요한지, 앞으로는 무엇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은지 묻는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지금까지 살았던 가치대로 계속 사는 것이 맞는가? ‘이게 전부인가,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질문이 언뜻 떠올랐다면, 그 질문을 조금 더 파고들어 보세요. 나는 무엇을 원했는지, 어떤 삶을 원했는지 알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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