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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라이프’

기사입력 2017-12-13 19:40

참으로 귀에 익숙한 단어인데 이제야 ‘슬로 라이프’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에서 추천한 책이다. 환경운동가이자 문화인류학자인 한국계 일본인 쓰지 신이치(한국명 이규)가 쓴 책이다.

‘슬로 라이프’는 영어로 된 단어이지만, 원래 영어에는 없는 단어라고 한다. 일종의 콩글리쉬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누구나 무슨 뜻인지 대략 안다. 그만큼 국제적인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 반향도 컸다는 것이다. 굳이 영어로 하자면, 단순한 삶(Simple Life),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건강하고 지속적인 생활스타일) 정도가 된다. ‘문화 창조자들((Culture Creative)’, ‘작은 것이 아름답다‘, ’슬로 푸드‘, ’반세계화‘ 등도 같은 맥락의 단어들이다.

저자는 ‘나무늘보 친구들(Sloth Club)'도 운영하고 있다. 나무늘보는 남미에 사는 동물로서 이름처럼 게으른 동물이다. 근육이 없어 공격성도 약한 모양이다. 그렇게 살면 약육강식이 벌어지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버젓이 번식하고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근육이 없는 대신 몸이 가벼워 얇은 가지에도 잘 매달릴 수 있다는 점이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보니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과 통하는 것이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바로 도태될 것 같은 세상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빈둥대고 있으면 비난을 받는 세상이다. 그렇게 빈둥대다가는 돈을 벌 수 없다며 질책한다. 돈을 많이 벌면 뭘 하느냐고 묻자 돈이 많으면 빈둥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돈을 안 벌고도 빈둥대고 있으니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역설도 소개했다.

필자는 책을 읽을 때 다시 볼 페이지가 있으면 일단 그 페이지 모서리를 중요도에 따라 접어둔다. 그런데 이 책은 70개의 슬로 라이프 키워드가 소개되어 있다 보니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모서리가 두툼해졌다. 그만큼 다시 읽을 가치가 많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슬로 라이프’라는 것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심을 떠나 시골에 가서 한적하게 사는 것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해였다. 물론 시골 생활도 ‘슬로 라이프’에 들어가지만, 이 책이 애기하는 슬로 라이프는 상당히 광범위 했다. '슬로 라이프'의 진정한 의미를 개인적, 사회적, 환경적 영역에서 조망하면서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글로벌화는 인간과 지구환경을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TV를 끄고 전깃불을 끄라는 것이 대표적인 슬로 라이프의 실천 방안이다. 현대인은 나이가 들수록 TV에 더 의존한다. 가족들끼리 모여 앉아 식사를 해도 TV가 없으면 어색하단다. 대도시의 전깃불만 일시적으로 꺼도 상당한 양의 전기를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걷기나 산책도 슬로 라이프의 중요한 키워드이다. ‘산책(散策)’이라는 의미가 목적 없이 걷는다는 뜻이란다. ‘멍 때리기’ 같은 것이다. 자전거 타기 운동도 슬로 라이프의 일환이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구하자, 물질과 돈에 의존하지 말자, 잘 웃고 자주 노래하고 잘 놀자도 포함되어 있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논다는 것은 낭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다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잡일’, ‘잡곡’, ‘잡목’처럼 무시되어 오던 것들을 다시 보라고 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도 돈 버는 일이 아니면 잡일이라는 것도 모순이란다. 돈 되는 나무나 곡식이 아니면 천대 받아 왔으나 나름대로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바쁘다, 바쁘다는 뜻인 비즈니스(Busi+ness), 경제, 혁신, 성장, 모두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마이너스 경제, 언플러그드 라이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자연은 멈출 때를 아는데 인간은 앞만 보고 달리고 있어 인간과 환경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갈등이 생긴다. 바쁘게 살지 않으면 도태될 텐데 슬로 라이프에 대해서 공감은 하면서도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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