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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한 마음이 보글거렸다

기사입력 2017-08-30 11:08

1925년 7월 10일은 필자 어머니의 생년월일이다. 지금까지 그 연세치고는 젊게 보이고 건강도 괜찮은 편이시다. 그리고 아직도 어여쁜 모습을 잘 간직하고 계셔 정성을 다해 단장을 하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우시다. 특히 오뚝한 코와 시원한 이마등 이목구비가 여전히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고운 한복을 입고 자주 입으셨다. 한복 차림으로 학교에 오시면 친구들이 “영애야, 엄마 오셨다. 정말 예쁘시다!” 하며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그러면 으쓱해지면서 필자 얼굴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어머니는 못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본 여학교를 다녔던 어머니는 자로 잰 듯 정확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많이 낳았으면서도 그런 것들을 자상하게 가르쳐준 적이 없다. 학교 갔다가 오면 어머니는 맛난 것들을 만들어놓고 우리를 기다리셨다. 우리는 그저 맛나게 먹기만 했다. 몇 년 전에 왜 음식 만드는 것도 딸들에게 안 가르쳐줬냐고 물으니 다 자기 방식대로 잘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시시한 대답만 하셨다.

옷본만 있으면 무슨 옷이든 만들었고 수선하는 일에도 선수였다. 하지만 우리 딸들은 하나도 배운 게 없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여자로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어느 한 가지도 가르쳐준 게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그때 방법을 찾아내며 살았다. 막내는 큰언니인 필자에게 가끔 전화를 해서 묻기도 하지만, 둘째나 셋째와 필자는 스스로 알아서 결혼생활을 했다. 어머니의 조언 같은 건 전혀 없었다.

8년 전 어머니랑 함께 살게 되었다. 이 기회에 모든 것들을 전수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곧 희망으로 마음이 들썩였다. 어머니의 미모 유지법이 도대체 뭔지 알아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지도 눈여겨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 특별한 비법이 있을까 해서 물으면 그런 거 없다는 짧고 싱거운 대답만 하셨다. 그럴 때면 은근히 야속한 마음이 보글거렸다.

딸들에게 당신의 철학을 얘기해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그럴 마음이 없는 듯 보인다. 이것이 질투심에서 나오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그저 혼자 즐기면서 남들에게 칭찬받고 사는 걸로 만족하시는 듯하다. 우리 딸들은 아무도 어머니의 미모를 닮지도 못했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나 동안 유전자만큼은 제대로 받은 거 같다. 딸들이 제 또래보다 모두 젊어 보이니 말이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면 될 텐데 가끔 유별나게 피어오르는 작은 분노가 잘 삭혀지지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때문이다. 아버지가 딸들 교육을 맡아 하셔서 어머니는 아예 우리에게 신경을 안 썼던 것이다. 딸은 어머니의 거울이라는데, 본받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어머니의 장점들을 물려받지 못한 원인이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 때 아주 가끔 조잘 안 되는 마음들이 웅성거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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