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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사기꾼이야!

기사입력 2017-08-08 10:09

나, 이럴 때 분노조절이 안돼

어느날 거실에 앉아 과일을 깎으며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결혼 사기에 관련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결혼할 때 남자가 거짓 약속을 남발했는데 여자가 그 약속을 믿고 결혼했다가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사기’로 고소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판사의 판결이 기가 막혔다.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 거짓 약속을 했더라도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사기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결혼 후에는 약속을 안 지켜도 된다는 말인가?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걸 알았다면 결혼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러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건데 여자 인생을 너무 가볍게 보는 판결이 아닌가! 아직도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이나 부속품쯤으로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아서 벌어지는 일 같았다.

필자가 결혼할 때도 그랬다.

“고생은 절대 안 시키고 잘해줄게요. 그리고 생활비 외에 용돈도 매달 10만원씩 별도로 꼬박꼬박 줄 테니까 우리 결혼합시다.”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필자 또한 그 말만 믿고, 결혼하면 꼭 그렇게 해줄 줄 알고 결혼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해주는 건 고사하고, 용돈다운 용돈 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

당연히 옆에서 뉴스를 함께 보고 있던 남편에게 화풀이를 했다.

“당신도 사기꾼이야! 뭐? 용돈을 줘? 고생도 안 시키고, 다 잘해준다구? 이 사기꾼아!”

그러자 남편의 말이 가관이다.

“아이구, 여보! 결혼하려면 무슨 말을 못하겠어? 우선 결혼부터 하고 봐야지. 나만 그런 게 아냐, 남자들은 다아 그래. 내가 사기꾼이면 세상 남자들 모두 사기꾼이게?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아들을 낳아줬으면 됐지 뭘 그래? 그보다 더 잘해준 게 어디 있어? 그깟 용돈에 비할까?”

남편의 말을 듣다 보니 화가 더 치밀어 올라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세상 남자들이 누가 그래? 다른 남자들은 얼마나 점잖고 잘들 하는데? 그리고 남들은 아들 안 낳았냐?”

남편은 약이 바짝 오른 필자의 모습을 보고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그 뒤통수에다 대고 냅다 소리를 질러본다.

“야! 이 사기꾼! 물가상승률 반영해서 용돈 내놔!”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벌써 사라져버리고 없다.

“흥! 뭐? 용돈을 줘? 용돈은 고사하고 반찬 타박이나 하지 마라! 이 사기꾼아!”

뉴스를 보다가 시작된 필자의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손은 어느새 다 깎아놓은 과일 한 접시를 들고 있다. 그리고 방으로 숨어버린 남편에게로 가져다준다.

“어머! 내가 왜 저 사기꾼한테 과일을 갖다 줬지? 참! 한심하다! 한심해!”

분노의 폭풍이 무아지경에 이르기라도 한 것일까? 조금 전까지 화를 내던 필자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언제 화를 냈는지, 언제 화가 가라앉았는지 기억조차 안 난다. 그래도 남편이 마음에 안 들면 “이 사기꾼아!” 하고 소리를 친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키들거린다.

“흥! 지은 죄는 알아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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