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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아직도 여동생이 필요하냐고 묻고 싶다

기사입력 2017-02-06 10:09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길을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남학생이 쏜살같이 내달려왔다. 아무래도 부딪힐 거 같은 불안함으로 살짝 비켜서는데 어느새 필자의 오른쪽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필자는 당황해하면서 멈춰 섰고, 뒤를 돌아보자 남학생은 뒷모습을 보이며 벌써 저만큼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발에 뭔가 밟히는 기분이 들었다. 내려다보니 오른발 옆에 편지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누가 본 건 아니겠지? 혹시 아버지가?’ 하면서 주변을 돌아봤지만 근처에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걸 어쩌지?’ 난감한 표정으로 다시 뒤를 돌아봤지만 이젠 남학생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던 필자는 순간 화장실에 들어가 편지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냅다 집으로 뛰어갔다. 살금살금 화장실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편지를 열어보려는데 종이 부스럭대는 소리가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방에 있는 엄마와 동생들이 들을 것만 같았다. 결국 화장실에서도 편지를 열어보지 못하고 다시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유 없이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서관 가는 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큰 나무 밑에 편지를 던지고 간 남학생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있었다. 필자는 쏜살같이 남학생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남학생 등 위로 열어보려다 만 편지를 휙 집어던지고는 돌아서서 도망치듯 달아났다. “저기요!” 하며 다급하게 필자를 부르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얼마나 뛰었을까. 숨이 차서 씩씩거리며 겨우 멈춰 선 곳은 집 근처 숲 속, 필자가 자주 찾아가던 비밀 아지트였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서 혼자 엉엉 울다가 눈물을 닦고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필자를 안방으로 불렀다. 어떤 남학생이 불쑥 찾아와 엄마한테 필자를 동생 삼으면 안 되겠냐고 했다면서 아는 사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자 엄마는 “이 편지도 주더라?” 하며 필자에게 돌려주었다.

방으로 들어가 편지를 읽어보니 “여동생이 되어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이 씌어 있었다. 평소에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잠시 혹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엄마가 낳은 오빠가 아니라서 바로 단념했다. 필자는 평생 단 한 번도 ‘오빠’라는 말은 해본 적이 없다. 그때 생각을 바꿨다면 필자에게도 오빠가 한 명 생겼을지도 모른다. 오호 통재라!! 어쩌면 예쁘고 아름다운 첫사랑으로 엮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왜 오빠들이 못살게 군다는 친구들 말만 떠올랐는지…. 그렇게 용기 있던 남학생의 시도는 불발탄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 남학생은 동네방네 소문이 날 만큼 공부를 잘했지만 원하는 대학에는 못 들어갔다고 한다. 대학도 낙방하고, 거기에 내 반응도 그랬으니 상심이 컸으리라. 혹시라도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직도 여동생이 필요하냐는 농담 같은 질문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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