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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가 태어나다

기사입력 2016-06-24 17:53

며칠 전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딸을 낳았다고 했다.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하다고 했다. 출산 예정일이 임박했으므로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 필자가 태어났고 필자가 아들, 딸을 낳아 아들이 또 결혼해서 딸을 낳은 것이다. 필자가 태어나서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자동적으로 할아버지가 된 셈이다.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이다. 9호선 샛강역에서 내려 걸으면 30분은 걸리는 길이 하루 길은 돼보였다. 손녀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날씨도 좋았고 좋은 계절이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63빌딩 바로 옆이라 찾기는 쉬웠다.

병원에 도착하니 휴게실에 아들과 딸이 기다리고 있었다. 딸이 휴대폰으로 찍은 손녀의 출생 순간 사진을 보여줬다. 입원실에 가보니 아이들 엄마도 와 있었다. 며느리 쪽에서는 할머니가 와 있었다. 자연 분만하느라 거의 탈진 상태인 며느리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했다. 실내가 너무 더워 바로 나왔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두 만나 지하층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딸이 하는 얘기가 어머니, 아버지가 갑자기 노인처럼 늙어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 한 세대가 새로 태어났으니 우리 세대는 밀리는 것이다. 3대를 구성한 셈이다. 아이 이름은 ‘세연’으로 하기로 했는데 어울리는 한자를 골라야 한다.

12시 40분부터 20분 간 신생아를 창 너머로 구경할 수 있었다. 아직 빨간 피부에 눈도 못 뜨고 있으나 귀엽기는 했다. 앞에 본 다른 아이는 쌍둥이로 각각 2.5 kg 인데 비해 3.75kg이니 훨씬 커 보였다. 넋을 놓고 보고 있으니 정작 산모는 뒷자리로 밀려 까치발을 들고 보고 있었다.

이틀 정도 병원에 더 있다가 산모산후조리원에서 2주 정도 몸조리를 한다는 것이다. 200만 원에서 700만 원까지 든다는 것이다. 관례로는 친정어머니가 돌봐야 하는 일이라 그쪽에서 비용을 대는 것이라 했다. 그래도 우선 돈이 가장 필요할 것 같아 돈 봉투를 건넸다.

손주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어서 섭섭하지 않느냐고 딸이 물었다. 며느리가 임신했을 때 아들이 아니라는 소리를 미리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들, 딸 구별해서 선호하는 사람도 아니다. 요즘 세상에는 딸이 더 낫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많다. 둘째 계획도 있느냐고 묻자 아들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며느리에게 출산하느라고 고생 많았다고 하자 “둘째 낳을 때는 쉽다면서요”라는 말이 하나 더 낳겠다는 말인지 귀에 남는다.

카톡으로 친구들에게 손녀 출생 소식을 전했다. 필자가 결혼도 가장 빨리 했고 첫 아이 출산도 빨랐으니 친구들 또래에서는 손주도 가장 빠른 셈이다. 축하 메시지가 줄줄이 들어 왔다. 필자도 남들처럼 손주 사랑에 빠질지는 모르겠다. 휴대폰 사진은 손주 사진으로 도배하고 남들 앞에서도 손주와 영상통화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음 주 산모산후조리원에 가서 한 번 더 보고 백일, 돌 등 앞으로 자주 볼 일이 생기니 그때 어떻게 마음이 끌릴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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