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끝이 좋아야 다 좋다

우리는 살면서 출산, 입학과 취업, 결혼과 승진 등 많은 것을 준비한다. 여행을 떠날 때도 숙소를 예약하고 동선을 짜며, 날마다 입을 옷까지 챙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마지막 여행, 죽음과 장례는 왜 준비하지 않을까.
‘작지만 의미 있는 장례’로
우리 사회에서 장례는 인생의 중요한 의례였다. 부모의 장례를 잘 치르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 여겼고, 때로는 체면 때문에 빚을 내면서까지 성대하게 치르기도 했다. 고인을 잘 보내드리는 의식이 어느 순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의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장례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매장 중심에서 화장 중심으로 바뀌었고, 2005년 52.6%였던 화장률은 최근 94%에 이를 정도로 일반적인 방식이 됐다. 화장 후에도 봉안당, 자연장, 수목장, 산분 등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일본의 직장(直葬)이나 벚꽃장, 인간을 퇴비로 만드는 미국의 새로운 자연장 문화도 생겼다. 가족 규모가 작아지고 가치관도 달라지면서 가족장과 소규모 추모식처럼 작고 간소한 장례도 늘고 있다.
이 변화의 핵심은 단순히 ‘작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규모보다 의미를, 형식보다 고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자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족과 의례 중심에서 고인 중심, 기억과 애도 중심의 ‘개인 맞춤형 장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보이는 장례’가 가장 좋아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이 장례식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조문객은 육개장을 먹으며 자녀의 직장 이야기나 손주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간다. 정작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오래 기억에 남는 장례는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평생 클래식을 사랑한 사람의 장례식에 꽃 대신 즐겨 읽던 책과 손때 묻은 악보가 놓여 있었다. 조문객들이 꽃 한 송이씩 가져와 마지막에 커다란 꽃밭을 만든 장례도 있었다. 화환 대신 기부를 부탁하거나 나무 한 그루를 심어 기일마다 숲을 찾는 사람도 있다.
죽음을 연구한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게 나비는 특별한 상징이었다.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나비가 돼 날아가듯 죽음도 하나의 변화 과정으로 보고, 자신의 장례식에서 조문객들이 나비를 동시에 하늘로 날려 보내게 했다. 이는 슬픔 속에서도 고인의 삶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장면이 됐다. 이런 장례라면 돌아가는 길에 ‘참 좋은 삶을 사신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살아 있을 때 나누는 마지막 인사
최근에는 ‘사전 이별식’, 이른바 리빙 퓨너럴(Living Funeral)도 관심을 받고 있다. 죽기 전에 가족과 친구를 만나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나누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도 죽음을 앞두고 제자 미치 앨봄과 화요일에 14번 만나 삶과 사랑, 죽음 등에 대해 인생 수업을 했다. 그 만남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선물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죽은 뒤에야 “고마웠다”, “사랑한다”, “미안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을 살아 있을 때 직접 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장례식은 이렇게 해주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장례를 미리 생각하고 가족에게 알려두는 것이다. 사전 장례의향서나 엔딩노트를 준비하면 좋다.
준비할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첫 번째는 장례의 장소, 즉 장지다. 두 번째는 장례 형식과 장례용품, 세 번째는 영정 사진과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다. 편지나 글, 짧은 영상으로 남겨도 좋다.
내 46년 지기는 자신의 마지막을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아들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을 수의로 정하고, 봉분 대신 평장을 하기로 했다. 영정 사진도 미리 준비했다. 앨범도 한 권으로 정리하고, 편지와 이메일까지 정리했다. 자녀와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은 편지와 음성으로 남겼고, 기부도 미리 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그 친구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삶도 정리한 것이다.
마지막 여행도 예약이 필요하다
장례 준비는 거창할 필요 없다. 장지(화장•매장)와 종교에 따라 원하는 장례 형식(수의•관 같은 장례용품), 영정 사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부터 생각해보면 된다. 사전 장례의향서나 엔딩노트에 기록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건복지부의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서는 지역별 장례식장과 봉안시설 등 장사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e하늘 디지털 추모서비스’를 이용하면 추모 시설을 찾거나 온라인 추모 공간 꾸미기도 가능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준비는 가족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죽음 이야기는 식탁에서 하자’고 권하고 싶다.
“나는 이런 장례식을 하고 싶어.” 밥을 먹다 편하게 한마디 꺼내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 한마디가 가족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 순간 자녀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거나 서로 다른 생각으로 다투는 일도 줄일 수 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더 분명하게 하는 일이다. 불필요한 형식과 빈 껍데기를 내려놓고,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질에 집중하게 만든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 Ends Well that Ends Well)’는 제목처럼 아름다운 삶은 아름다운 마무리로 완성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그리고 나의 마지막 장면은 어떤 모습이면 좋겠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면서 오늘의 삶을 더 충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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