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8월 중순이라고?”
“분명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입추가 지났네요.”

어릴 때는 방학 한 달도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일주일, 한 달, 심지어 1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는 것 같다. “나이 먹으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이 단순한 기분 탓만은 아니다. 실제 연구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지나간 시간을 더 빠르게 느끼는 경향이 확인된다. 다만 그 원인은 아직 하나로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새로운 기억을 얼마나 만들어내느냐가 시간의 체감 속도와 관련 있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진다고 느껴
독일 심리학자 마르크 비트만과 산드라 렌호프 박사팀은 2005년 국제학술지 ‘Psychological Reports’에 발표한 논문 '시간 지각에서 나타나는 연령 효과(Age Effects in Perception of Time)’에서, 14~94세 499명을 대상으로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느끼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지난 10년을 더 빠르게 흘러갔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다만 연구팀은 연령이 설명하는 차이가 최대 10% 정도로 크지 않다고 밝혔다. 연구진 역시 시간 감각에는 나이뿐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심리 상태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흔히 “10세에게 1년은 인생의 10분의 1이지만 60세에게는 60분의 1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이것만으로 시간 감각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과학적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기억, 주의력, 새로운 경험의 양 등 여러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고 있다.
반복되는 하루는 기억 속에서 짧아진다
최근 연구에서는 기억이 중요한 단서로 떠올랐다. 2026년 국제학술지 '지난 10년간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정도가 자전적 기억의 양보다 새로운 정보를 기억으로 저장하는 능력과 관련 있다(Memory & Cognition’에 발표된 논문 ‘Memory encoding for new information, not autobiographical memory load, is linked with age-related differences in subjective time passage over the past decade)'는 20~91세 120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과 10년의 시간 흐름에 대한 인식과 기억 능력 등을 조사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지난 10년이 빠르게 지나갔다고 느끼는 현상이 다시 확인됐는데 이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 적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령자는 자신의 과거를 더 생생하고 의미 있게 기억하기도 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새로운 정보를 기억으로 만드는 능력이었다.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는 능력이 낮을수록 지난 시간을 빠르게 느끼는 것과 연관성이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가령 처음 가본 여행지에서 보낸 사흘은 새로운 장소와 사람, 음식이 기억에 촘촘하게 남는다. 반면 비슷한 일상을 반복한 한 달은 지나고 나면 특별히 떠오르는 장면이 많지 않다. 시계로는 똑같은 하루지만 기억 속 하루의 밀도는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은퇴 이후 이런 변화를 유독 크게 체감하는 이들이 많다. 출퇴근이라는 뚜렷한 시간의 마디가 사라지고, 요일 감각마저 흐려졌다는 하소연은 브라보 독자들 사이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동선으로 하루를 보내다 보면, 한 주가 통째로 하나의 장면처럼 뭉뚱그려지기 쉽다. 연구가 말하는 ‘새로운 기억의 부재’가 은퇴 후 삶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이유다.
시간을 붙잡고 싶다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라
그렇다고 나이가 들면 시간이 무조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연구에서도 연령의 영향은 제한적이었고, 시간의 체감 속도에는 개인차가 컸다. 최근 연구 역시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능력과 시간 인식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준 것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확정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한 가지 힌트는 얻을 수 있다. 매일 같은 길만 걷는 대신 새로운 길을 걸어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배워보는 것이다. 거창한 여행일 필요도 없다. 평소와 다른 경험이 하나씩 쌓이면 하루를 구분해주는 기억의 표지가 늘어난다.
△늘 다니던 길 대신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걸어보기 △안 가본 동네 카페나 식당에서 낯선 메뉴 주문해보기 △손주나 자녀와 처음 해보는 놀이·활동 함께하기 △관심 있던 강좌(문화센터, 도서관 등) 한 번 등록해보기 △자기 전 오늘 새로 경험한 일 한 줄 적어보기 등의 활동을 하며 하루에 표지 하나씩을 남겨보는 것을 어떨까?
“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느낀다 해도 시계를 붙잡을 수는 없다. 대신 기억에 남는 장면을 늘리는 것은 가능하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필요한 것은 시간을 천천히 보내는 방법보다, 지나간 시간이 어디로 갔는지 기억할 수 있도록 하루를 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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