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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속 이중돌봄 세대 품을까, 첫발 뗀 ‘중장년기본법’

입력 2026-06-30 09:45수정 2026-06-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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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 의원실 정책간담회 개최… "생애 전환 주체로 봐야" 패러다임 전환 촉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중장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중장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중장년층을 독립적인 정책 대상으로 삼는 ‘중장년기본법’ 제정 논의가 국회에서 시작됐다. 다만 이날 토론에서는 법 제정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함께, 법안이 기존 고용·복지 제도의 단순 확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중장년을 복지 지원의 대상으로 볼 것인지, 생애 전환기의 사회적 주체로 볼 것인지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29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4간담회의실에서 ‘중장년기본법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경기도,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노사발전재단, 서울시50플러스센터협의회 등 중장년 관련 민간·당사자 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박 의원은 모두발언에서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녀를 양육하는 이중돌봄 세대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간담회 의견을 토대로 준비 중인 중장년기본법 입법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를 준비 중인 중장년기본법안은 중장년을 40세 이상 65세 미만으로 정의한다.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중장년 정책의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3년마다 중장년의 고용·주거·건강·금융상태·디지털 역량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국무총리 소속 중장년정책조정위원회를 두고, 보건복지부 장관 산하에 한국중장년미래설계원을 설립하는 내용도 담겼다.

법안에는 생애전환설계 및 개발 지원, 고용안정과 일자리 지원, 중장년 친화적 근무환경 조성, 권익 보호와 사회적 인식 개선, 디지털 역량 강화, 건강증진과 심리 지원, 사회참여 및 지역사회 기여 활성화 등이 포함됐다.

“단순 고용·복지 대상 아냐… 생애전환권 보장해야”

첫 발제에 나선 유보영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과장은 현행 법체계에서 생애주기별 정책 대상이 어떻게 규정돼 있는지를 짚었다. 노인복지법은 65세 이상을 중심으로 노인 정책을 두고 있고, 아동복지법은 18세 미만, 청년기본법은 19세 이상 34세 이하, 청소년기본법은 9세 이상 24세 이하를 대상으로 삼는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고령자를 55세 이상, 준고령자를 50세 이상 55세 미만으로 규정한다는 점도 소개했다.

유보영 과장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서 저출산·고령사회 관련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인구정책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중장년 정책도 주요 과제로 검토되고 있다며, 일자리뿐 아니라 건강, 사회적 관계, 여가·문화 등 여러 영역을 포괄한 중장년 지원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남경아 과장은 중장년을 특정 연령대의 복지 대상이나 고용 지원 대상으로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의 중장년을 “인류가 맞이한 첫 번째 노년층”이라고 표현하며, 청년 정책의 연장선이나 노인 정책의 교집합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남 과장은 중장년 정책의 핵심은 나이보다 전환기라는 특성에 있다며, 직장과 가족관계, 돌봄, 생활방식, 지역사회 참여가 동시에 흔들리는 시기를 개인 책임으로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남 과장은 중장년 정책이 시장에서는 구매력 있는 ‘액티브 시니어’, 중앙정부에서는 정년과 실질 은퇴 사이 공백을 메우는 ‘신중년’, 지방정부에서는 인생이모작과 당사자 활동 중심으로 각각 다르게 형성돼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장년 정책에 대해 “대중성은 확인됐지만 정당성은 아직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당사자의 참여와 호응은 크지만, 다른 세대가 왜 중장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 이를 설득할 논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남 과장은 또 2025년 기준 전국 226개 기초단체 가운데 100여 곳 이상이 중장년 지원 조례를 만들었지만 실제 정책 수준과 내용은 지역별로 다르다며, 중장년기본법은 특정 집단을 위한 특별법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언젠가 경험할 생애 단계를 지원하는 “생애전환권 보장법”이 돼야 한다고 했다.

“당사자들, 일자리만큼 사회적 관계망 원해”

토론에서는 우선 ‘중장년을 연령으로 자르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이기영 부산대 교수는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 관련 법이 있는 가운데 중장년은 연령상 비어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사각지대가 맞다”면서도 “중장년기본법의 핵심은 몇 세냐가 아니라 생애 전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이나 은퇴 이후에도 25~30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 현실을 언급하며, 생애전환설계는 일자리뿐 아니라 사회참여, 가족관계, 건강, 여가까지 포괄해야 한다고 했다.

이귀보 두두협동조합 이사도 “기본법이 특정 연령을 고정하기보다 생애 전환과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국가의 기본 원칙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안의 생애전환설계 정의가 “퇴직 이후를 포함한 직업·경력 경로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으로 돼 있는 점을 지적하며 “학습, 건강, 관계, 돌봄, 사회참여 등 삶 전반을 전환할 수 있도록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실태조사 항목도 고용·주거·건강·금융·디지털 역량에 그치지 말고 사회관계망, 고립 정도, 삶의 만족도, 지역사회 활동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당사자 관점에서는 중장년 정책이 일자리 중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컸다. 김수동 중장년네트워크 대표는 “중장년 당사자들이 일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장년 정책의 성과를 취업률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립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연결돼 살아가는가”로 봐야 한다고 했다. 중장년을 복지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전환하는 핵심 자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현장 일자리 지원기관에서는 고용의 비중을 낮춰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영수 노사발전재단 중장년고용전략본부장은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며 “청년 정책과 노인 일자리 정책 사이에 중장년 정책은 사실상 비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장년내일센터 40곳에서 약 300명의 컨설턴트가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과거와 달리 최근 중장년은 정규직 재취업뿐 아니라 프리랜서, 유튜브, 사회공헌 활동, 단기 일자리 등 다양한 방식의 일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중장년 채용보다 청년이나 외국인 근로자를 먼저 찾는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철호 상상우리 대표는 법안이 ‘중장년을 도와주는 법’으로 보이면 사회적 저항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장년들은 돈도 있고 알아서 할 수 있는데 왜 지원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현장에서 많이 받았다”며 “중장년의 경험과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장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이기영 부산대 교수가 법안의 방향과 생애전환 지원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중장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이기영 부산대 교수가 법안의 방향과 생애전환 지원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이준호 기자)

부처 간 분절 우려… 전달체계 통합이 숙제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참석자들은 법안의 소관과 기존 제도와의 중복 문제를 짚었다. 오성일 보건복지부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은 중장년기본법이 노후준비지원법과 어떻게 차별화될 수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노후준비지원법도 재무, 건강, 여가, 대인관계 등을 포함해 노후 준비 서비스를 규정하고 있는 만큼, 중장년기본법은 현재 중장년이 겪는 구체적 어려움을 더 분명히 담아야 한다는 취지다.

구동영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 서기관은 “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중돌봄을 하면서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하는 중장년의 문제를 지적하며, 일자리 단절이 이후 삶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법안에 포함된 한국중장년미래설계원에 대해서는 “특정 부처가 주관하면 그 부처 소관이 강조되고 다른 영역이 분절될 수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전달체계에 대한 우려도 반복됐다. 이기영 교수는 복지부의 노후준비지원센터, 고용부의 중장년내일센터, 서울시 50플러스재단과 센터 등 이미 존재하는 인프라를 어떻게 연결할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는 “새로운 원, 새로운 센터, 새로운 위원회를 만들 때 기존 서비스 인프라와 전달체계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가 숙제”라고 말했다.

남경아 경기도 베이비부머기회과장은 중장년 정책을 복지나 고용의 연장선으로만 보는 시각을 경계했다. 그는 “중장년은 특정 집단을 위한 특별법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언젠가 경험하게 될 생애 단계”라며 “복지법이 아니라 생애전환권 보장법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현장에서 느끼는 중장년의 불안, 우울, 사회적 고립 문제는 심각하지만 여전히 개인의 몫으로만 돌려지고 있다”며 “지역별 편차도 너무 크기 때문에 지방정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는 중장년기본법 제정 필요성을 확인하는 자리였지만, 동시에 법안의 방향을 둘러싼 쟁점을 드러낸 자리이기도 했다. 중장년을 40~64세로 고정할 것인지, 생애전환기라는 유연한 개념으로 볼 것인지, 법안의 중심을 일자리·전직에 둘 것인지 사회관계망·돌봄·지역사회 참여까지 넓힐 것인지, 새 전담기관을 만들 것인지 기존 전달체계를 연결할 것인지가 향후 입법 과정의 핵심 쟁점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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