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잇는 맛, K-푸드 '한식'] 올해 김치·전통주·인삼 벨트 신설

방탄소년단(BTS)를 비롯한 K-팝 아이돌 그룹, 넷플릭스 오리지널 ‘케이팝 데몬 헌터스’, 유튜브·SNS를 통해 확산되는 ‘먹방’ 콘텐츠까지. K-컬처 열풍이 전 세계로 확장하면서 K-푸드 역시 글로벌 관심의 중심에 서 있다. 한국 음식을 경험하기 위해 방한하는 외국인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으며, 정부도 이러한 흐름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미식 관광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대표적 시도가 바로 ‘K-미식벨트’ 사업이다. 소개된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올겨울 미식 여행을 계획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잠재 방한 여행객 조사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분명히 드러난다.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할 때 가장 하고 싶은 활동 1위로 ‘맛집 투어(15.7%)’가 꼽혔다.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지 음식을 맛보며 문화·생활·철학을 체험하는 미식 여행이 한국 관광의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은 K-푸드 생태계 확장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K-미식벨트’ 사업을 공동 추진하고 있다. 지역별 특색 있는 미식 관광상품 개발, 전문 해설사 양성, 콘텐츠 홍보 등을 지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2024년부터 2032년까지 총 30개의 미식벨트 조성을 목표로 한다.
단순 미식 여행 아냐
K-미식벨트는 크게 발효 문화, 전통 한식, 제철 밥상, 유행 한식 등 네 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바비큐·치킨·분식·파인다이닝·커피·베이커리 등을 아우르는 유행 한식 벨트는 외국인 관심의 변화를 적극 반영한 영역이다. 이제 여행객들은 비빔밥·불고기 같은 전통 한식뿐 아니라 라면·김밥·길거리 간식 등 한국인의 일상식에도 깊은 흥미를 보인다.
K-미식벨트가 지향하는 미식 관광은 단순히 ‘맛집 리스트’를 따라 이동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지역의 생산지(1차), 제조·가공지(2차), 체험·외식 공간(3차)을 하나의 여정으로 묶어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체감하는 입체적 여행 구조다. 한 지역의 음식이 탄생하는 배경, 식재료의 생명력, 조리 방식의 전통과 변화, 지역 주민들의 삶까지 연결해 먹는 행위를 문화 경험으로 확장한다.
예컨대 산지에서 자란 식재료를 직접 확인하고, 장류·젓갈·전통주가 발효를 거치는 과정을 양조장이나 장독대에서 살펴본 뒤, 지역 고유의 조리법을 체험하고, 마지막엔 그 재료로 완성된 음식을 맛보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방식은 해외에서도 이미 검증된 관광 모델이다. 일본의 사케 투어, 이탈리아의 치즈·와인 코스처럼 생산–체험–식사가 이어지는 형태의 미식 루트는 세계적으로 확산된 흐름이다.
다만 K-미식벨트는 여기에 한국만의 문화적 매력을 더해 정체성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한류 콘텐츠를 통해 한국의 음식과 조리 방식에 익숙해진 외국인들이 실제 현장을 체험하며 더 깊은 몰입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그 나라의 문화와 매력을 대표하는 핵심 콘텐츠”라며 “지역의 이야기와 체험을 결합한 K-미식벨트가 한국 미식 관광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에서 김치·전통주·인삼까지 확장
K-미식벨트 사업은 2024년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그 첫 주자는 한국 고유의 발효 문화를 대표하는 ‘장(醬)벨트’였다. 장 문화는 한식의 근간이자 발효식품 강국으로서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 자원이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은 한국 장 담그기 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며 이뤄냈고, 장류 명맥을 가장 뚜렷하게 이어가고 있는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을 중심으로 벨트를 조성했다.
장벨트는 장류의 유래, 전통 장 담그기 체험, 장으로 만든 음식 시식, 지역 명소 연계 미식 관광까지, 장 문화를 직접 보고 만들고 맛보는 체험형 여정으로 구성했다. 특히 간장 명인 기순도 명인, 고추장 명인 강순옥 명인 등 장 문화 전승자들이 직접 참여해 프로그램의 깊이와 전문성을 더했다.
올해는 장벨트에 이어 광주 김치벨트, 안동 전통주벨트, 금산 인삼벨트가 새롭게 추가됐다.
김치벨트는 김치 제조 과정에 문화·예술 체험을 결합해 독창적 콘텐츠로 구성했고, 전통주벨트는 전통 민속주부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지역 특산주까지 아우르며 한국 술 문화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인삼벨트는 건강·웰니스를 테마로 자연 속에서 즐기는 미식 체험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이러한 오감형 미식 경험을 통해 관광객이 한식을 단순히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이해하고 배우는 문화 콘텐츠로 인식하길 기대하고 있다. 동시에 K-미식벨트가 지방 소멸 위기 지역의 새로운 관광자원이 되며 지방 경제 회복에도 기여하는 모델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이처럼 K-미식벨트는 지역의 고유한 식문화를 관광 동선과 연결해 미식 경험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2032년까지 30개 벨트가 완성되면, 지역과 식문화가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K-푸드 생태계가 구축될 전망이다.

◆광주광역시 김치벨트▲반지김치를 만들고 있는 오숙자 명인의 모습.(광주광역시)▲반지김치를 만들고 있는 오숙자 명인의 모습.(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는 지역의 대표 음식인 김치를 중심으로 한 김치벨트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관광상품 이름은 전라도 방언 ‘게미(입맛 당기게 하는 깊은 맛)’에서 따온 ‘김치가 예술인 게미진 광주 여행’으로, 광주김치가 가진 고유한 풍미를 체험형 관광으로 확장한 것이 특징이다.
광주김치는 영산강 유역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신선한 재료, 불린 고추를 곱게 갈아 넣는 남도식 양념, 찹쌀풀죽과 젓갈의 감칠맛, 재료에서 자연스레 우러나는 국물의 조화가 더해져 묵직한 풍미를 자랑한다.
올해는 ‘광주 방문의 해’와 맞물려 김치벨트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졌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열린 ‘제32회 광주김치축제’는 5만 명 넘는 관람객이 찾으며 인기를 끌었다.
김치벨트는 김치타운·김치박물관, 광주의 부엌인 양동시장, 예술·근대·감성이 공존하는 양림역사문화마을 등 주요 관광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구성된다.
하이라이트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오숙자 명인에게 배우는 반지(班紙)김치 만들기 체험이다. 반지는 전남 나주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 김치로, 국물이 많지 않고 깔끔한 백색 국물 맛이 특징이다.
오 명인은 집안 여성들로부터 김치 전통을 이어받아 반지김치를 대중화한 인물이다. 여행객은 직접 만든 반지김치 반 포기를 가져갈 수 있으며, 광주김치 3㎏도 제공된다.
당일 여행 상품만 운영했는데 최근 1박 2일 코스가 추가됐다. 서울 출발 상품으로 버스 여행은 로망스투어, KTX 여행은 홍익여행사에서 예약할 수 있다. 일정·탑승지·가격은 상품별로 다르므로 여행 스타일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안동시 전통주벨트▲(좌)3대가 함께하는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우)김연박 명인의 민속주 안동소주.(안동시)▲맹개술도가 진맥소주 주안상.(안동시)경상북도 안동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의 고장이지만, 최근 국내외 여행객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식 자원은 단연 안동소주다. 전통주 열풍과 함께 안동의 양조 문화가 조명되면서, 안동시는 이를 기반으로 한 전통주벨트 관광 프로그램 ‘안동 더 다이닝’을 운영했다.
안동 전통주는 제주(祭酒), 반주(飯酒), 접대주(接待酒)처럼 일상과 의례 곳곳에서 의미를 지녀온 술이다. ‘안동 더 다이닝’은 이러한 전통주를 안동의 음식·자연 및 역사 공간과 결합해 안동만의 미식 문화를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여행으로 구성했다.
특히 안동시는 코레일과 협업, 전통주 팝업열차를 진행했다. 서울에서 안동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부터 전문 전통주 소믈리에의 해설과 함께 안동 지역 대표 술을 시음하며 여행이 시작된다. 가격은 1인당 7만 5000~8만 5000원 수준으로 구성했다. K-전통주벨트 참여 업체 4곳을 중심으로 총 6개 체험 코스를 운영한다.
박재서 대한민국 식품명인의 양조장에서는 전통 안동소주를 시음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맹개술도가에서는 진맥소주 양조장을 둘러보고, 진맥소주 4종과 페어링 안주를 함께 맛볼 수 있다. 또한 국가유산 조옥화 박물관 및 양조시설에서는 1대 조옥화 식품명인의 뒤를 이은 2대 김연박 식품명인이 전통 제조 방식과 누룩 만들기 시연을 하고, 안동소주 하이볼 만들기 체험도 진행한다. 여기에 브랜드관 잔잔에서는 명인 안동소주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칵테일을 선보인다. 이처럼 젊은 감각을 더한 안동소주의 새로운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안동 더 다이닝’은 올해 8월과 11월 두 차례 운영했다. 현재는 정규 코스가 별도로 없지만 각 체험지와 양조장은 상시 운영하니, 전통주벨트의 동선을 따라 나만의 전통주 루트를 직접 설계해보는 재미를 느껴보자.
◆금산군 인삼벨트▲인삼캐기 체험.(충남문화관광재단)▲월영산 출렁다리.(충남문화관광재단)충청남도 금산군은 ‘인삼의 수도’로 불릴 만큼 전국 인삼 유통량의 약 85%가 이곳에서 거래된다. 금산군은 이 지역 대표 품목을 기반으로 ‘K-미식벨트 금산인삼 미식 투어’를 선보였다.
금산군 프로그램의 핵심은 수동적인 관광을 넘어 몰입형 스토리텔링 여행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금산인삼 재배의 기원으로 전해지는 ‘강처사 설화’를 모티브로 여행 전반에 내러티브를 입히며, 방문객이 금산의 역사와 인삼의 가치, 지역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감하도록 기획했다.
여행은 인삼으로 시작해 인삼으로 마무리된다. 금산인삼 재배의 시초로 알려진 전통 테마파크 개삼터, 인삼의 역사·효능·문화 콘텐츠를 한곳에 담은 금산인삼관, 국내 최대 규모의 약초·인삼 중심지인 금산인삼시장 거리를 방문한다.
체험 콘텐츠도 다채롭다. 인삼 캐기 체험, 인삼꽃주 담그기, 인삼 디저트 쿠킹 클래스 등은 물론, 대한민국 식품명인 김창수 명인의 인삼주 시음회, ‘농부형제’와 함께하는 금산인삼 삼계탕 식사까지 이어져 금산인삼의 풍미를 다각도로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 월영산 출렁다리, 천년 은행나무로 유명한 보석사 탐방 등 금산의 대표 관광지도 여정에 포함돼 있다.
박범인 금산군수는 “미식 투어를 통해 금산인삼의 프리미엄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했다”라며 “충남 방문의 해와 금산 헬스투어의 해를 맞아 지역의 맛과 멋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미식 관광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금산인삼을 알리고 관광객이 만족할 만한 지역 관광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덧붙였다.
인삼벨트는 11월 30일까지 한정 운영했다. 공식 프로그램은 종료됐지만, 금산 곳곳에 남아 있는 인삼 재배지와 시장, 체험 공간은 여전히 여행객을 기다린다.
계절이 바뀐 지금, 인삼벨트를 따라가며 12월 금산 여행 일정을 구성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