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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자의 장수풍뎅이 연구 20년, 비행 로봇 ‘KU비틀’되어 날다

기사입력 2024-10-17 09:03

박훈철 건국대학교 스마트운행체공학과 교수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지난 8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한국의 장수풍뎅이를 모방한 초소형 비행 로봇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박훈철(62) 건국대학교 스마트운행체공학과 교수가 개발한 ‘KUBeetle’(KU비틀)이다. 세계 최초로 장수풍뎅이의 날갯짓을 모방한 비행 로봇을 선보인 건 20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장수풍뎅이만 연구한 박 교수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구실 문을 열자 온갖 실험 장비들이 즐비했다. 맞은편에 실험실이 있지만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탓에 연구실까지 실험 공간으로 활용됐다. 연구실 한편에는 손바닥 크기만 한 인도네시아의 장수풍뎅이 표본이 있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10여 개의 장수풍뎅이 로봇이다. 10월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전시하기 위해 그동안 개발해온 로봇들을 총집합한 날 마침 인터뷰를 하게 돼 초기 버전부터 다양한 KU비틀을 볼 수 있었다.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호숫가에서 만난 무당벌레

2003년 즈음이었을까. 연구실을 찾아가던 박 교수는 건국대학교 호숫가에서 무당벌레에 시선을 빼앗겼다고 한다. 당시에는 새의 날갯짓을 연구한 생체 모방 로봇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는데, 오히려 박훈철 교수는 새와 다른 비행 형태를 보이는 곤충이 눈에 들어왔단다.

“무당벌레도 풍뎅이과에 속하거든요. 지금까지 밝혀진 곤충 종류 중 약 40%가 풍뎅이과예요. 그런데 풍뎅이는 날개를 펼쳐서 비행하다가 비행이 끝나면 날개를 접어서 보관할 수 있거든요. 새처럼 날개에 근육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신기하더라고요. 호기심과 흥미로 시작한 연구가 벌써 20년이 다 되었네요.”

날갯짓을 연구하려면 관찰을 해야 하는데, 무당벌레는 크기가 너무 작았다. 그러다 떠올린 게 장수풍뎅이였다. Allomyrina Dichotoma라고 하는 장수풍뎅이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장수풍뎅이 중 가장 몸집이 크고, 수컷은 머리에 긴 뿔이 나 있다. 문제는 연구할 장수풍뎅이를 어디에서 가져오느냐였는데, 마침 이 시기에 애완 곤충으로 장수풍뎅이가 관심을 받으면서 마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수풍뎅이는 곤충학자 사이에서도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아 특성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연구하면서 하나씩 알아가야 했다. 가장 큰 특징은 ‘야행성이고 빛이 있으면 날지 않는다’였는데, 이 부분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장수풍뎅이의 비행 모습을 담으려면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해야 하는데, 초고속카메라는 굉장히 밝은 환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2004년부터 촬영한 영상은 정말 힘들게 찍은 것들이라 너무 소중해서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미국 대학교의 곤충학자들과 함께 연구하려고도 했거든요. 하지만 장수풍뎅이를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데 이 과정도 쉽지 않았고, 그들도 장수풍뎅이를 처음 봤던 거예요. 일주일 뒤 이메일이 왔어요. 정말 나는 곤충이 맞냐고요.(웃음)”

곤충의 비행 방식에 관심을 가진 건 기존 비행 로봇보다 효율이 높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수풍뎅이는 자신의 몸무게 대비 넓은 날개 면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더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생각으로 장수풍뎅이를 관찰하던 박훈철 교수의 장수풍뎅이 비행 모방 연구는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던 중 2011년 미국 에어로바이런먼트(Aerovironment)라는 회사가 나노허밍버드(Nano-hummingbird)라는 로봇의 비행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새를 모방한 로봇들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모두 ‘꼬리 날개’라는 것이 있었는데 나노허밍버드는 꼬리 날개가 없었다. 꼬리 날개가 있는 벌새를 모방했지만, 로봇에는 꼬리 날개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곤충판 로봇이나 다름없었다. 이를 보고 확신을 얻은 박 교수는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풍뎅이 연구로 인정받다

“물체를 공중에 띄웠다면 다음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비로소 비행체라고 할 수 있거든요. 2016년 처음으로 제어 비행에 성공했어요. 40초 정도 공중에 있었죠. 최고 기록은 8.8분이에요. 나노허밍버드가 껍데기 없이 11분을 기록했는데, KU비틀이 두 번째로 긴 비행시간을 기록한 거죠.”

KU비틀은 단계적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꼬리 날개 없이 날개로만 비행에 성공했다면 다음은 충돌해도 추락하지 않는 장수풍뎅이의 비행 방식을 연구해 적용했다. 장수풍뎅이는 비행 중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뒷날개가 접히더라도 중앙부의 충돌 에너지를 흡수해 짧은 시간에 다시 펼쳐지며 안정된 비행을 이어갈 수 있다. KU비틀의 초기 버전이 접히지 않는 일체형 날개였다면, 이 원리를 적용한 KU비틀은 날개 끝 쪽이 충격을 받았을 때 휘어졌다가 즉시 펴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특수한 날개가 장착되어 있다. 이런 내용을 연구해 장수풍뎅이 로봇이 비행 중 충돌하는 실험을 분석한 논문이 2020년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2021년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2024년에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도 논문이 실렸다. 이번에 발표한 장수풍뎅이 로봇의 무게는 18g, 날개를 완전히 펼쳤을 때 폭은 20cm다. 가장 큰 특징은 비행하지 않을 때 곤충이 날개를 접은 것처럼 바닥을 향해 날개를 접고 있다는 것이다.

장수풍뎅이의 날개는 딱딱한 겉날개와 비행 운동을 수행하는 얇은 속날개로 나뉜다. 비행 직전 겉날개를 펼치면 속날개는 접힌 채로 있다가 완전히 펼쳐지면서 날기 시작하는데, 속날개가 펴지는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새처럼 근육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박훈철 교수는 다른 방식일 거라 생각했다. 연구 결과 속날개가 접히고 펴지는 원리는 ‘원심력’이었다.

이 원리를 이용한 KU비틀의 최근 버전은 바닥을 향해 접혀 있던 날개가 모터로 만든 원심력으로 펴지면서 수직·수평으로 운동하고, 일정 수준에 달하면 양력이 생기며 날게 된다. 비행 중 충돌하면 모터 작동이 멈추고 날개가 접힌 채 착륙하기 때문에 파손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날개가 접히는 게 중요한 이유는 이동이 용이해지기 때문이에요. 첩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성냥갑이나 담뱃갑에 곤충 모양 비행체를 숨길 수 있는 거죠. 우주로 비행체를 보낼 때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화성에 인지뉴이티라는 헬리콥터를 보냈잖아요. 이때 로켓에 패키징이라는 것을 합니다. 로켓이 발사될 때 진동이 엄청나기 때문에 이를 버틸 수 있게 설계하는데요. 이렇게 비행체의 날개가 접히면 패키징할 때 장점으로 작용하죠. 물론 제 연구는 기초연구이기 때문에 첩보 로봇이나 항공우주 로봇으로 활용되려면 응용연구가 이어져야 합니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동행한 친구들 덕분이라고 박 교수는 공을 돌렸다. 공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도 적은 데다 스마트운행체공학과는 학부 자체도 없어 대학원에 진학할 학생을 찾기가 정말 어려웠다. 박 교수는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직접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대학을 찾아가 장수풍뎅이 비행을 연구할 학생들을 찾기도 했다. 이렇게 만난 학생들과 함께한 그의 장수풍뎅이 모방 로봇 연구는 ‘KU비틀’의 탄생과 더불어 ‘네이처’와 ‘사이언스’라는 과학계 양대 학술지에서 인정받는 성과까지 낼 수 있었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같은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이 따라와 주고 열정을 가졌기에 가능했죠. 특히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낸 논문의 주저자인 판 호앙 부(Hoang-Vu Phan) 스위스로잔공대(EPFL) 박사후연구원은 11년 동안 제 제자로 함께하며 저보다 더 많은 열정을 가지고 연구에 동행해주었죠.”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사진=주민욱 프리랜서)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박훈철 교수는 은퇴를 3년 앞두고 있다. 현재는 공기 밀도가 낮은 환경에서 장수풍뎅이 로봇이 어떻게 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 화성과 같이 대기 밀도가 낮을 때도 날 수 있다면 또 다른 연구의 지평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 해 2월 이 연구를 마치면 곤충형 비행체의 비행 속도를 높이는 연구를 하고 싶단다. 물론 원하는 연구 계획서를 제출했을 때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주제로 선정돼야 가능한 일일 테다.

“사실 제가 하는 연구는 남들이 안 해봤던 것들이에요. 아무도 몰랐던 것이기에 국제 학술지에도 실릴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이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연구는 아니기 때문에 연구비를 받기가 쉽지는 않아요. 또 저의 기초연구가 응용연구로 이어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응용연구는 더 많은 사람과 공간, 규모와 비용이 필요하거든요.”

박훈철 교수의 연구는 언젠가 응용될 곤충 모방 비행 로봇의 기초를 쌓아두는 일일지도 모른다. 박 교수는 당장 이 연구로 “인류의 역사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기초연구야말로 “교수이자 학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기초연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에요. 저에게 장수풍뎅이 연구는 운명이 아니었나 싶어요. 장수풍뎅이를 연구하려는 찰나 마트에서 장수풍뎅이를 구할 수 있었던 것, 제 연구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있었던 것, 꾸준히 작게나마 연구비를 받을 수 있었던 것… 이런 것들이 굉장히 절묘하게 이어진 것 같아요. 다른 곳에 눈 돌릴 겨를 없이 한 우물을 팔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달까요?(웃음)”

그 봄날 호숫가에서 무당벌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장수풍뎅이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처음 장수풍뎅이의 비행을 연구할 때만 해도 로봇으로 완성할 수 있으리란 확신도 없었고, 이를 함께 연구하려는 학생도 찾기 어려운 데다 연구비를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성공할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박 교수는 그것이야말로 “기초연구의 묘미”라고 했다. 어쩌면 그에게 장수풍뎅이 연구는 천직이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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