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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나? 산에서 배우는 게 잘 사는 길임을

기사입력 2019-11-28 16:00

[고수 열전] 탐험가 허영호

산에 미쳐도 단단히 미쳐 살았다. 그러니 일이 터질 수밖에. 주목할 만한 기록이 나왔고 사람들은 갈채를 보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미치지 않고서 도달할 길이 없다. 선무당처럼 대충 미쳐서는 히말라야 고봉을 오를 수 없다. 지구상의 극한적 험지인 세 극지(히말라야, 남극, 북극)를 찾아 누빈 탐험가 허영호(65). 그의 격렬한 모험이 거둔 성과가 경이롭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을 향한 온전한 몰입으로 삶을 만족스럽게 끌어온 성취는 더욱 놀랍다. ‘온전한 몰입’이 있는 인생이라는 게 어디 시중에 흔하던가.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일찍이 소년기 때 동네 산꼭대기에 오르는 쾌감을 맛본 게 등산에 빠진 계기였다지. 군대를 다녀온 뒤엔 인생을 몽땅 산에 걸기 시작했단다. 서막은 그저 그렇게 자연스러웠으나, 이후 산악 역사에 두고두고 마르지 않을 이름을 등기했으니 허영호의 행장은 사실상 비범한 것이었다.

허영호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83년, 히말라야 마나슬루를 산소통 없이 단독 등정하면서였다. 마나슬루는 1972년, 돌연한 산사태를 일으켜 한국 산악인 16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악명 높은 고봉이다. 1987년 12월, 허영호는 다시 기세를 돋웠다. 세계 등반사상 세 번째로 에베레스트 동계 등정에 성공했던 것. 이것으로 마침내 세계적 산악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1994년엔 남극점을, 1995년엔 북극점에 도달했다. 진기한 드라마를 연속 상영한 셈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허영호를 ‘7대륙 최고봉과 남극점, 북극점 도보 탐험에 성공한 인류 최초의 탐험가’로 기록하고 있다. 이쯤이면 역사적 인물이다. 역사에 남는다는 것. 허영호는 그게 매우 기쁘다.

“나는 실로 꾸준히 세계적인 것에 도전해왔다. 매번 엄청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모험에 나섰다. 가치 있는 도전이라는 것, 역사를 가치 있게 만든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세계적인 역사를 만들지 못하는 가치 없는 도전이란 말짱 꽝이지 않은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강렬한 집념. 그게 모험에 나서게 했다는 얘기인가?

“극지에 도전하는 모험은 무섭고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다. 목숨을 걸고 하는 행위다. 그러나 역사에 이름이 남는다는 건 고귀한 일이지 않은가.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등반을 죽기 전에 완료하겠다는 게 나의 지향이었으며, 그게 모험에 나서게 하는 힘이었지.”

세상의 위업들은 맹렬한 명예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신에게서도 강한 명예욕이 느껴진다.

“명예, 명망에 대한 기대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더군. 그러나 명예라는 건 결과적으로 오는 것이지 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백지상태인 미답의 땅을 섭렵한다는 성취감, 극지의 신기한 자연 풍경에 대한 감동, 이런 요소 역시 나를 모험에 빠지게 했다.”

히말라야에 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오는 산악인들도 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흔히 탄식한다. 공연히 위험한 등산을 자청, 하나뿐인 아까운 목숨을 허무하게 버리는 게 안타까워서.

“프로 산악인들의 등반은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등산과 다르다. 특유의 어떤 정신세계를 가지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게 아니겠는가.”

아예 죽음을 각오하고 출발하나?

“아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약해진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재앙이 벌어지는 게 인생이지만 여하튼 어디서건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난 산이 좋아 산에서 죽을래! 이런 생각은 그야말로 바보에게나 어울린다. 나는 항상 죽는 일 따위는 내게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등반에 나섰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죽을 뻔했던 무산소 등정

에베레스트는 이 산의 측량 전문가였던 영국인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초모랑마’라는 티베트 이름으로 불린 산이었다. ‘세계의 어머니 신(神)’이라는 뜻으로 티베트인들은 예로부터 이 산을 숭배해왔다. 산악인들도 정신의 산, 신비의 영산으로 숭상하며 거룩한 사유를 펼치곤 한다. 생사 여부마저 산령(山靈)의 뜻에 달렸다는 식의 감상을 털어놓기도 한다. 허영호에게 이는 어림없는 생각이다. 내 목숨은 오직 내가 간수할 수 있을 뿐 그 무엇도 간섭할 수 없는 거라는 실사구시에 충실할 따름이다. 완벽한 사전 준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 정신력, 팀을 통제하는 엄격한 규율. 그것들만이 사고를 피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라 믿는다.

특히 원정 대원들의 관리에 추상같다. 인상에 쓰여 있듯이 평상시엔 온유하지만 등반할 때는 돌변한단다. 엄격하고 날카로운 독수리로 변하는 모양이다. 눈빛부터 사납게 바뀐다는 게 아닌가.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이 성깔을 부리면 한순간에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해서, 군기반장처럼 엄한 규율로 대원들을 다그친다. 덕분에 단 한 사람의 대원도 다치지 않았으며, 이는 다른 원정대에선 찾아보기 드문 성과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 상황은 빈발했다. 벼랑에서 추락했고,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눈사태에 휩쓸려 파묻혔다가 셰르파에 의해 구조되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죽음과 직면하기를 거듭했다.

“1993년 4월, 무산소 등정으로 에베레스트를 횡단하며 비박할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산소 등반과 무산소 등반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걸 절감했다고. 가슴이 터져나갈 듯 고통스러웠는데 심장이 당장 멈출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지. 하늘을 쳐다보며 절규를 했다고. 천신만고 끝에 38시간 만에 캠프에 도착, 비로소 물을 마실 수 있었지. 오열을 하면서.”


지독한 사경을 겪고도 또다시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배짱이라니.(웃음)

“나 이젠 다시는 산에 안 가! 그런 외침이 속에서 터지긴 한다. 아주 잠깐, 현장에서만.(웃음)”

기어이 정상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며 자연에 도전하는 게 서구적 알피니즘의 전통이지만, 우리 선인들은 산을 그저 욕심 없이 편하게 노닐었다. 이게 더 수준 높은 산행 방식 아니었을까?

“과학의 발달로 일찌감치 산과 바다로 당차게 진출한 서양과 달리 우리는 다분히 정적인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봤다. 어릴 적에 부모님들은 흔히 자식에게 타일렀다. 산에 가지 말라고, 물가에 가지 말라고.”


우리 민족은 누가 말린다고 산수 간에 머물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DNA에 이미 산야의 기질이 상속된 게 아닐까.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양과 사뭇 다른 건 사실이지만, 우리에게도 일찍부터 등산이라 일컬을 만한 장르가 존재했다. 혹자는 승려들의 입산을 등산의 효시로 보며, 혹자는 신라 화랑도의 유산(遊山)을 원조로 간주한다. 조선시대 중엽의 민화 중엔 밧줄을 타고 암벽을 오르는 모습이 있기도 한다. 이 희귀한 사례를 통해 도전적 차원의 등산마저 행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산을 몹시 애호해 산행을 즐겼다. 일테면 남명 조식 선생은 지리산을 16회나 오르내렸다. 사대부들은 등산이라는 개념보다 관산(觀山), 요산(樂山), 유산(遊山)이라는 코드로 산을 누렸던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의 등산객들이 산을 즐기는 방식도 이와 꽤 유사한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한국의 산은 스케일은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정답다. 위험요소가 드물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수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쌓인 불만과 스트레스를 산에서 해소하고 있어 사회가 그나마 덜 시끄럽다고 봐야 하겠지.”

히말라야의 광막한 설산을 묵묵히 오르는 산악인들의 모습은 고행하는 수도승을 연상시킨다.

“고행을 통해 목표를 성취하고자 한다는 점에선 수도승과 다를 게 없겠지. 그러나 산악인은 자연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수도승과 다르다. 도전이란 정복을 겨냥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정복하나? 잠깐 정상을 딛고 내려올 뿐인데.”

에베레스트 고지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던가?

“아름답고 경이롭다. 그러나 너무 춥고 숨이 가빠 사실상 풍경을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텐트 밖으로 머리를 살짝 내밀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게 잠시잠깐의 감상일 뿐이거든.”

등반 중에는 무슨 생각을 하나?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극한 상황에서도 산과 대화를 했던 것 같다. 거짓말하지 않는 자연에서 겸손을 배우고, 인내심을 기르고, 분노를 자제하는 능력을 얻었다. 이건 극지 등반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어디서건 자연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심성이 더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속세의 거친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아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있지만, 산을 좋아하게 되면 달라지지. 어떻게든 사람을 자연으로 끌어내는 게 옳다는 거. 특히나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산을 경험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탐험과 운명적 사랑에 빠진 종(種)

허영호는 지난 2010년, 대학생이었던 아들 재석과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또 한 번 매스컴의 관심을 샀다. 좌우간 산에서 배우는 게 인생을 잘 사는 비결이라는 생각. 등반에 인간과 인생의 모든 게 담겨 있다는 확신. 그는 그걸 널리 홍보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 아니랴. 인생에도 크레바스가 있고, 추락이 있으며, 눈사태가 있게 마련이지 않던가. 이 모든 요상한 난리블루스를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과 안목을 산에서 얻을 수 있다는 얘기는 언제 들어도 신선한 뉴스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허영호도 어느덧 늘그막에 접어들었다. 난다 긴다 하는 모험 고수이지만 이젠 체력을 고려해 자제하며 산다. 그러나 탐험을 멈출 방법이 없다. 좀 부풀려 말하자면, 그는 탐험과 운명적 사랑에 빠진 종(種)이니 말이다. 요즘은 경비행기에 빠져 산다지. 경비행기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해 또다시 역사적 기록을 남기겠다는 웅장한 포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랫동안 경비행기를 타고 독도를 비롯해 국내 곳곳을 비행 훈련하며 세계로 비상할 날을 대비해왔다. 문제는 자금이란다. 스폰서를 잡아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는 것.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자력으로 탐험하는 방식은 실로 불가능한가? 매우 내성적인 성격으로 보이는 당신은 어디 가서 쉽사리 손을 내밀지도 못할 것 같다.

“원정대를 꾸려 착수하는 극지 탐험에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가는 것을 무슨 수로 개인이 감당하겠나? 원정대 지원이 일방적 수혜도 아니다. 주로 등산 장비업체가 스폰서로 붙는데, 그들은 나의 원정 활동상을 비즈니스 마케팅에 활용하거든.”

직업이 탐험가인 당신에게 누가 월급을 주지? 가족을 어떻게 건사하나?

“가족은 나에게 탐험보다 소중하다. 가족 생계를 등한시하는 산악인은 산악인의 자격조차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난 꽤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강연 초대를 자주 받았으며, 그게 무난한 생활 대책이 돼주었다. 사람들이 내게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이 뭔지 아나? 등반으로 돈이 생기느냐, 반사이익이 있느냐, 라는 것이다. 그러나 등반 자체는 무상(無償)의 행위일 뿐이다. 대신 강연료가 들어와 살 수 있었지.”

우리 사회가 나름 똑똑해지는 모양이다. 허영호를 강연장으로 끌어들여 경청을 하는 걸 보면.

“글쎄다. 난 나를 비롯해 프로 산악인들을 더 활용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가령 유능한 산악인들을 모아 특공구조대 같은 걸 만들면 자연재난이나 산악조난 구조에 크게 쓰일 수 있지 않겠는가. 119소방대만 고생시킬 게 아니라는 얘기다. 언젠가 국무총리 공관에서의 오찬에서 그런 취지의 제안을 했으나 소용없더라고.”

어디서나 일관하는 인생관이 있겠지?

“노력하며 살자! 그거. 탐험하며 살다 보니 ‘자기 노력’이 인생 성공의 99%를 차지한다는 걸 깨닫겠더라. 행복이라는 것도 노력의 산물이지 않겠는가.”


평생 노력만 하면 무슨 재미? 잘 노는 데에서도 행복의 샘물이 퐁퐁 솟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긴긴 세월 극지와 맞붙었던 사람에겐 실없는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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