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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연수 도전기] 60세, 필리핀 바기오로 혼자 떠난 2주

입력 2026-09-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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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으로 채운 해외 한달살기] “안 하는 게 실패지”

(이미지=유영현 기자ㆍAI 생성)
(이미지=유영현 기자ㆍAI 생성)

6월 14일 한국을 떠나 새벽 5시께 필리핀 바기오의 JIC 프리미엄 캠퍼스에 도착했다. 인천에서 클락까지 비행기로 4시간, 다시 야간 셔틀로 4시간을 달린 뒤였다. 배정받은 2인실 문을 열자 자고 있던 베트남인 룸메이트가 놀라 일어났다. 서둘러 짐을 정리한 최승이 씨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고 약 3시간 동안 레벨 테스트를 치렀다. 2주간의 어학연수는 긴 이동과 시험으로 시작됐다.

▲바기오 JIC 캠퍼스에서 수업 자료를 살펴보는 최승이 씨.(최승이 제공)
▲바기오 JIC 캠퍼스에서 수업 자료를 살펴보는 최승이 씨.(최승이 제공)

‘액티브 시니어 코스’로 다시 학생이 되다

1965년생인 최승이 씨는 자신을 ‘시니어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한다. 러닝과 운동, 여행 등 새로운 도전을 영상으로 기록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늙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낡은 사람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말을 책에서 읽었어요. 낡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영상 촬영과 편집을 배웠죠.”

영어는 그에게 낯선 분야가 아니다. 과거 미국·인도·일본·영국에서 생활했고 토익 만점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일상에서 영어를 쓰지 않자 쉬운 단어조차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AI 영어 회화 앱도 이용했지만, 사람과 말을 주고받을 때 생기는 상호작용까지 채워주지는 못했다.

그 무렵 필리핀 바기오의 스피킹 특화 어학원을 소개받았다. 필리핀에 가본 적도, 바기오라는 지명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처음에는 ‘왜 굳이 필리핀에서 영어를 배우지?’라는 선입견도 있었다.

“어학을 배우든 모험만 하다 끝나든 뭔가는 건져 오겠다고 생각했어요. 안 해본 일이니 한번 가보자는 마음이었죠.”

▲개인 시간에는 현지 시장을 찾아 생활 속 영어를 써봤다.(최승이 제공)
▲개인 시간에는 현지 시장을 찾아 생활 속 영어를 써봤다.(최승이 제공)

왜 바기오였나, 날씨·치안·수업 효율

바기오는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다. 최 씨가 머문 6월은 우기였지만, 오전에는 해가 나고 늦은 오후나 밤에 비가 내려 종일 끈적이지 않았다. 소나무가 많은 풍경은 그에게 강원도를 떠올리게 했다.

쾌적한 기후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환경, 교육도시의 여건, 저렴한 물가 등이 바기오의 장점이다. 최 씨는 늦은 시간의 이동은 피했지만, 혼자 지프니와 택시를 타고 시장과 쇼핑몰을 다녀도 위축되는 일은 없었다.

그가 필리핀을 택한 또 다른 이유는 일대일 수업의 비중이었다. 같은 예산으로 다른 영어권 국가보다 일대일 수업을 많이 받을 수 있고, 숙소·식사·세탁·청소가 한곳에서 해결돼 공부에 집중하기 좋았다.

최 씨가 선택한 ‘액티브 시니어 코스’는 해외 자유여행이나 봉사활동을 준비하는 중장년을 염두에 둔 과정이었다. 하루 일정은 일대일 수업 3개와 그룹 수업 1개로 구성됐다. 스피킹과 문법·쓰기·읽기를 배우고, 토론 수업에서는 여러 나라 학생들과 의견을 나눴다. 일대일 수업을 연달아 마치면 영어를 쓰느라 “머리가 뜨끈뜨끈해질 정도”였다.

교사들은 그의 학습 방식과 성향을 연관 지었다. 이론과 근거를 알아야 안심하는 성향을 파악하고, 단어 뜻만 외우기보다 유의어를 함께 익혀 맥락에 맞게 사용하는 연습을 권하기도 했다.

▲숙소에서도 매일 배운 영어를 틈틈이 복습했다.(최승이 제공)
▲숙소에서도 매일 배운 영어를 틈틈이 복습했다.(최승이 제공)

세대와 국경을 넘어 ‘갓생’에서 배운 것

2인실 기숙사도 수업의 연장이었다. 베트남인 룸메이트와 아침 인사부터 잠들기 전까지 영어를 썼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함께 쓰는 불편은 있었지만, 서로 의지하고 생활 영어를 익힐 수 있었다.

그에게 영어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함께 공부한 사람들의 태도였다. 젊은 학생들은 어학연수를 위해 일하며 돈을 모았고, 일본과 대만에서 온 시니어들은 여행이나 봉사활동 등 저마다의 다음 목표를 품고 있었다. 최 씨의 표현대로 “그냥 시간 보내러 온 사람은 없었다.” 서로의 목표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분위기에서 영어 외의 것을 배웠다.

“다들 자기 인생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고 온 사람들이었어요. 요즘 말로 정말 ‘갓생’을 사는 사람들이죠. 그들을 보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자신감도 생겼어요.”

2주는 공부의 방향을 확인하기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실력을 체계적으로 끌어올리기에는 짧았다. 고산지대인 바기오는 쾌적하고 안전한 곳이었지만, 물과 음식 위생에 주의가 필요했고, 공중화장실에는 화장지가 없어 챙겨 다녀야 했다. 다시 간다면 경량 패딩과 실내 슬리퍼, 물병을 꼭 챙기겠다고 했다. 새로 사귈 친구들과 선생님께 선물할 한국 기념품도 넉넉하게 사가면 좋다는 팁도 놓치지 않았다.

▲국적과 세대를 넘어 만난 동료와 함께한 시간(최승이 제공)
▲국적과 세대를 넘어 만난 동료와 함께한 시간(최승이 제공)

“가능하다면 한 달 정도는 투자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짧게 갈수록 한국에서 미리 공부해 가야 해요. 아는 만큼 보이니 이왕이면 본전을 많이 뽑아야죠.”

귀국 후에는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영어로 전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공부하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러나 가장 큰 수확은 영어 점수보다 앞으로의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자식들이 독립하고 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일 수 있어요. 그런데 앞으로 20~30년을 무엇을 하며 살 건가요? 안 하는 게 실패지, 해본 것은 실수일 뿐이에요. 해보고 아니면 다른 걸 하면 되죠.”

영어를 배우러 떠난 60세의 최승이 씨. 그가 돌아올 때 손에 쥔 것은 세대와 국가를 넘어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서 얻은 자극과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는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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