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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가장이 큰아들로 바뀌었더라

기사입력 2019-01-17 17:24

한 집안의 가장은 생계를 책임지고 꾸려가는 사람이다. 집안을 대표하는 남자 어른을 말하는 것이 사전적 표현이다. 남편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까지 사전에 올라 있으니 여자인 엄마가 가장역할을 하거나 소년소녀 가장은 특별한 경우이고 아버지, 남편이 보편적인 가장이다. 농경사회에서의 가장은 농지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경제권을 틀어잡고 죽을 때까지 절대적인 위세를 지니고 있었다.

요즘은 가장의 권위를 힘이나 전통으로 지켜나가기에는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 반항하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힘은 무력하다. 방에 들어가면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딸에게 아버지의 권위로 대화할 수 있는 문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어야 자식이 수저를 들던 전통의 위계질서는 대부분 깨어졌다.

아내가 남편에게 불만이 있을 때면 “당신 늙어지면 가만두지 않겠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젊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들리던 말이 슬슬 힘이 빠지는 50대가 되면서 문득문득 겁이 난다. 보복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내의 무관심 속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할까봐 걱정도 되는 것이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대세다.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적인 일을 하는 자식은 30년 근무한 아버지의 봉급을 훨씬 뛰어넘는다. 가정에서의 권력 순위는 가장이라는 지위보다는 누가 가정경제에 더 많은 도움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 살가운 말을 해주거나 포용력에 따라 발언권의 크기도 달라진다.

해외 건설 현장에서 몇 년간 고생하고 귀국한 P 씨와 술자리에서 마주앉았다. P 씨가 말하길 열사의 사막에서 고생해서 벌어다 준 돈으로 가족이 살아가고 있으니 가장은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게 착각이었다고 한다. 1년에 한 번씩 휴가를 얻어 고국에 나와 보면 아버지를 대신해 대학생인 큰아들이 아내의 말벗이 되어주고 동생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토닥여주며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몇 년 뒤 큰아들은 취직을 하고 자신은 실업자로 전락하니 자연스럽게 가장이 큰아들로 바뀌어버렸단다. 큰아들은 아버지 말에 무조건 승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틀린 말은 “아버지 이건 이렇고요, 저건 저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건의를 하는데, 이치에 맞는 말이다 보니 은연중 “그렇게 하자”라고 답하게 되더란다. 좋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보태서 말하면 집안에서 자신의 말에 영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앉은 꼴이고 실세의 왕은 큰아들이란다.

하늘같은 제왕적 권력을 갖고 있는 권력자도 임기 말이 가까워지면 권력의 누수로 영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퇴직하고 나면 가족만 주위에 남는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다. 젊을 때 가족을 우습게 보고 맘대로 행동하던 사람이 늙어서 가족의 버림을 받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방송에서 보곤 한다.

가정이 화목하고 평온하려면 가장의 권위와 위계질서가 필요하다. 존경받는 영원한 가장이 되려면 돈과 힘이 아닌 가족에 대한 사랑과 보살핌이다. 그 바탕에 깔린 온화함의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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