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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에게는 길바닥이 영업장

기사입력 2018-02-05 11:11

택시기사와 70대 할아버지가 언성을 높이며 싸움을 하고 있었다. 요금시비인가 하고 가만히 들어보니 처음 보는 신기한 싸움이었다. 싸움의 발단은 이렇다. 아침 동이 틀 무렵 교통신호등이 있는 길 옆에서 택시기사가 새벽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하는 시간을 이용해 자동차 백미러의 성에를 닦았다. 그리고 백미러를 닦아 시커매진 휴지를 길바닥에 버렸다. 그 뒤로도 자동차 이곳저곳을 닦은 휴지를 길바닥에 버렸다.

신호대기를 기다리던 70대의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휴지를 길바닥에 버리는 택시기사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가 더 이상 못 참고 기사에게 한마디 한다. “이보시오 기사 양반! 길바닥에 그렇게 휴지를 함부로 버리면 어떡합니까? 길바닥을 자기 집 안방처럼 깨끗이 써야 될 사람이!” 손님이 없어 심드렁해 있는 택시기사에게 70대의 할아버지 말은 울고 싶은데 마침 때려주는 따귀 한 대였다. 결국 싸움의 도화선이 되었다. “아니 할아버지 이 길이 할아버지 길입니까? 내가 낸 세금으로 고용한 청소부가 있고 그 사람들이 청소를 다 해주는데 웬 참견입니까?” 할아버지의 다음 말이 걸작이었다. “자동차 운송사업을 하는 사람은 길바닥이 영업장인데 누구보다 더 길바닥을 깨끗이 관리할 의무가 있지 않소! 우리 같은 일반인이 길바닥에 사과 상자 하나라도 내어놓으면 금방 교통순경이 뛰어와서 호각을 불고 야단을 치는데 택시기사 당신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놓은 길에서 택시라는 큰 영업 물체를 자유자재로 몰고 다니며 돈벌이하지 않소! 길바닥이 장사하는 사람들로 보면 점포나 마찬가지인데 자기 점포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 봤소? 사무실에 청소부 있다고 사무실 바닥에 휴지 버리는 사람 봤소?”라며 일장 훈시를 했다.

택시기사도 지지 않고 한마디 했다. “우리가 길바닥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이용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공짜로 길바닥을 사용하는 것 아닙니다. 길바닥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택시 수입금 일부를 세금으로 내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용료가 아닙니까! 식당에 가서 밥 먹고 밥값 내면 됐지 내가 먹은 밥그릇이라고 설거지까지 해주고 나와야 합니까! 내가 낸 세금인 도로이용료로 국가에서 청소부를 고용해 도로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도로 청소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쓰레기도 좀 버려야 청소부를 고용하는 이유도 되고 결국에는 최대의 복지가 고용인 고용 창출도 일어납니다.” 택시기사가 다소 볼멘소리로 항의를 하고는 휑하니 차를 몰고 가버렸다. 싸움은 서로 간에 찝찝한 감정만 남기고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났다.

이 일은 필자에게 숙제를 안겨주었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길이 언제까지나 깨끗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계절 따라 가로수 꽃잎도 날리고 낙엽도 저절로 쌓인다. 바람 따라 먼 곳의 쓰레기가 날아오기도 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도 먼지는 쌓이는 법이니 길을 청소할 사람은 언제나 필요하다. 산에 나무가 있는 한 산불감시요원이 필요하고 길이 있는 한 길을 청소하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산불감시요원이 있다 해서 산불을 내도 되고 청소부가 있다 해서 어질러도 된다는 말은 또 맞지 않는다.

산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 산불을 더 조심해야 하듯 길을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길을 아끼고 깨끗이 사용해야 한다. 집안 청소는 식구가 먼저 해야 하고 동네 청소는 동네 사람이 우선해야 한다. 운전기사가 길을 청소할 의무까지는 없다 해도 남들보다는 더 길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길바닥이 영업장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이 자꾸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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