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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외출이 가르쳐줬다

기사입력 2017-05-30 09:49

어느덧 3년 전 일이다. 그해에 작은 딸이 마침내 취업을 했는데 그동안 애쓴 엄마에게 보답을 한다며 함께 홍콩 여행을 가자고 했다. 필자도 내심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직장에 얽매어 있던 터라 오붓하게 모녀간의 여행을 즐기라며 응원했다. 걱정하는 아내에게는 자신만만하게 "괜찮아, 염려 말고 잘 다녀와"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와 딸이 여행을 떠난 날 당장 저녁밥과 국 끓일 일이 걱정이었다. 세탁기와 난방기 작동법, 화초에 물주기 등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필자가 가사 무능력자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딸내미와 오붓한 여행을 즐기고 있을 아내에게 국제전화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전화를 걸고 말았다. 식사 문제는 어찌어찌 적당히 해결했지만 세탁은 1주일을 버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걸어 겨우 사용법을 알아낸 필자는 겨우 세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내 덕분에 지금까지 얼마나 편안한 일상을 보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매 끼니 정갈한 식탁을 차려내는 아내의 수고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직장생활을 하는 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여기면서 아주 가끔씩 아내를 도와준 것을 대단한 일로 생각하며 살아온 필자였다.

아내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웠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새삼 아내에게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생각에 고마움이 새록새록 가슴을 적셔왔다. 그날 이후 필자는 권위주의적 태도와 남녀의 역할분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내려놓고 새로운 부부의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아내가 홍콩에 가 있던 1주일 동안 필자는 밥 짓기, 세탁기와 청소기 돌리기, 빨래 정돈 등을 제대로 실습하며 배웠다. 당시 딸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의 강평까지 들으며 필자는 "아직도 늦지 않았다. 백세시대에 부부의 가사협동 없는 행복한 가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전에는 하지 않았던 집안일들을 자연스럽게 한다. 1주일간 아내가 집을 떠나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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