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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해제와 부서진 우산

기사입력 2016-11-30 10:32

야간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시절 통금이 해제된 크리스마스는 젊은이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통금해제 크리스마스이브 인파에 밀리고 진눈개비에 눌려 아내에게 선물할 우산은 이미 부서져버렸지만 그래도 선물은 선물이었다.

야간통행금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실시되던 야간통행금지는 1982년 민심회유책으로 해제할 때까지 엄격하게 시행되었다. 위반자는 파출소에 연행되어 즉결재판을 받고 과태료를 납부해야 했다. 밤 11시가 되면 귀가전쟁이 벌어졌다. 대중교통이 끊기면 택시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도심 광화문·을지로·충무로는 늘 귀가 인파로 뒤덮였다.

통금시간의 거리에서는 야경원의 호루라기 소리만 요란할 뿐 사람 한 명 찾을 수 없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통금해제는 그야말로 별천지와 다름없었다.

통금해제 체험

젊은 시절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날, 필자는 퇴근 후 근처에서 근무하는 몇몇 친구와 광화문 네거리에서 만났다. 그날은 마침 눈까지 내려 눈꽃에 취한 우리는 저녁식사에 반주까지 곁들였다. 결국 술기운이 불을 붙였다. “통금해제를 체험하자!” 누군가의 제안에 “옳거니!”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연년생 아이들이 어려서 외출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그만 깜박 잊고 말았다. 코트 주머니에는 아내에게 줄 예쁜 우산이 들어 있었다.

당시에는 미니스커트 입고 꽃무늬 우산을 든 미녀들이 방송 화면에 자주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양산 겸용 접이식 우산은 숙녀들의 소지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부서진 우산

수천·수만의 인파 구경이 통금해제 체험의 전부였다. 자정이 넘어도 귀가전쟁이 없는 것 말고는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초저녁에 내리던 눈이 자정 무렵 진눈개비로 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날씨가 안 좋아 대중교통이 거의 끊겨 걸어서 귀가를 해야 했는데, 걸어가는 동안 통금해제로 몰린 사람들과 부딪치고 진눈개비에 젖었다. 도리 없이 아내에게 주려고 산 우산을 펴들고 말았다. 그래도 집에 도착했을 때는 물에 빠진 생쥐 모양새가 되었다. 우산을 살펴보았다. 비에 젖은 천은 말짱하였는데 살은 이미 구부러지고 부러져서 선물이 아니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물건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산을 아내에게 쑥스럽게 내밀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우산 덕분에 걸어서 무사히 집에 왔다. 다음에 더 좋은 선물할게!”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진눈개비 피하는 우산으로 사용하면 되지! 살 몇 개 고치면 새것과 똑같겠네!” 천사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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