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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정착 성공사례(8)] “장태 들고 망태 챙겨 호두 털면 자루 한가득 쌓이는 행복”

기사입력 2014-04-06 18:33

30년 직장 퇴직 후 고향마을로 돌아온 경북 봉화의 윤석은 씨

이번 귀농정착 성공사례는 30년 직장 퇴직 후 고향마을로 돌아온 경북 봉화의 윤석은 씨에 대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발간한 귀농·귀촌 수기모음집 ‘촌에 살고 촌에 웃고’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포스코 입사 31년 만에 퇴직하고 돌아온 고향마을. 300년 넘게 조상 대대로 살아온 봉화로 연어가 모천으로 찾아가듯 서둘러 돌아왔다. 집안의 종손으로 고향을 지키겠다는 부부가 선택한 것은 호두와 대추. 10년 전부터 묘목을 심고 준비해온 이들은 이제 자연이 그러하듯 자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농사짓는다.

◇정년퇴직 10년 전부터 틈틈이 귀향 준비

2년 전 고향마을로 귀농했다. 군대 제대 후 2년가량 아버님 밑에서 농사일을 돕다가 1980년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에 입사해 2010년 정년퇴직했다. 연어가 태어난 모천으로 돌아오듯 나도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내 고향 봉화로 돌아왔다.

퇴직준비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시작했다. 다행히 고향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약 5000평 가량의 논과 밭이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 날 때 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하는 농업교육도 열심히 받았다. 우리 내외는 무언중 종손으로서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휴가는 항상 고향에서 보냈다. 동네어른들 찾아뵙고 이것저것을 묻고 배워 가면서 농사 지식을 쌓아 나갔다. 하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않았다. 봉화 지방에 맞는 과수종목 선택이 문제였다. 다양한 종류의 과수 묘목 중 마땅한 과수 종목을 선택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과수란 한번 심으면 최소 10년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고심과 고심을 거치고 여러 사람들의 자문을 받아 내린 결론은 호두와 대추였다. 먼저 2002년 포항산림조합에 가서 2년생 호두나무 묘목 200주를 사서 1500평 밭에 심었다 이듬해 또 200주를 사서 심었다.

그런데 어린 호두나무 묘목을 상부 약 20cm씩 자른 후 심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유는 단지 승용차 트렁크에 싣기 좋고 운반이 편리하다는 것이었는데 호두나무는 봄에 가지를 자르면 죽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나무 전체가 말라죽는 이유를 알아보려 호두 집산지인 전라북도 무주와 충청북도 영동의 호두 농가를 찾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워가지고 돌아왔다.

호두나무가 다른 종류의 수목과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하절기를 제외하고 나뭇가지를 자르면 나무수액이 계속 흘러나와 말라죽는다는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나무 상순을 이동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지를 자른 후 심어 놓고 직장이 있는 포항으로 내려간 것이다.

2003년 심은 호두나무 200주 모두가 말라 죽었다. 어쩔 수 없이 이듬해 다시 1주당 1만원씩 주고 200주를 다시 심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막대한 시간과 경비를 낭비했다.

◇최소 10년 내다보고 선택한 호두와 대추

같은 해 3월 하순경 대추나무 묘목 1주당 7000원씩 2년생 묘목 100주를 구입해 심었다. 그날 어린 대추나무를 정성스럽게 심어 놓고 포항으로 내려가서 모 라디오 방송에 2년간 나무에 얽힌 사연을 투고했더니 사연이 방송에 많은 지인들로부터 격려의 전화를 받았다. 이때 정년퇴직 후 고향 봉화로 귀농 한다고도 소개됐다.

직장생활 하면서 매달 한 두 번씩 휴일에 호두와 대추나무를 찾았다. 다행히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골집이 비어있는 상태여서 밤이던 낮이던 찾아와 피곤한 몸을 고향의 품에 안길 수가 있었다.

지금은 약 4000여평의 밭에 호두나무 400주, 대추나무 100주와 겨울에 냉해를 입는 과수묘목을 제외하고 우리 가족이 사철 맛있게 먹을 수 있게 약 14종의 과실나무 100주도 함께 심었다. 제법 농장규모가 큰 편이다.

재래식 농기구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각종 기계식 농기구를 차례로 구입하고 포항과 봉화를 차로 몇 시간씩 달려와서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수입이 없는 농사를 짓다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었다. 다행히 직장에서 월급이 나와 이런 생활이 가능했다.

논농사는 직접 경작할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밭농사인 호두와 대추 농사만 지었다. 세월은 무척 빨랐다. 정말 쏜살같이 흘러서 내가 고향 땅 언덕 위에 호두와 대추를 심은지 7년 만에 천년만년 다닐 줄 알았던 직장에서 나왔다. 입사 31년만에 푸른 근무복과 안전화를 벗어서 회사에 반납하고 우리 부부는 아무런 미련없이 새로운 인생 2막을 위해 2011년 봄 봉화로 돌아왔다.

하지만 농촌 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치 만은 않았다. 우선 경제적으로 전보다 어려워지고 몸이 아파도 차로 30분 넘게 읍내로 가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도 아침저녁으로 하루 왕복 2회 다니는 시내버스뿐이었다. 읍내에 볼일이라도 생기면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직장에선 퇴직했지만 고향마을에선 아직 청춘

직장에선 정년퇴직했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젊은 측에 속한다. 그러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큰일이 생기면 먼저 앞에 나서야 한다, 동네 어르신 모두가 옛날부터 인연이 있던 분들이고 부모님 같은 분들이다. 따라서 마을 감투도 억지춘향식으로 벌써 몇 개 가지고 있다.

사소한 전구 하나 교환하는 것부터 수도꼭지 물 새는 일까지 소소한 일도 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농사일 중간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귀농 첫해이던 2011년은 호두와 대추 등을 밭 5000여평에 농사지어 얻은 수익금이 2000만원이 채 안 됐다. 비료와 농약 등 기본 금액을 제외하고 나면 손에 직접 떨어지는 돈은 1000만원가량이다. 그래도 다른 귀농자보다는 훨씬 유리한 편에 속한다, 벌써 10년 전부터 미리 시작했으니 말이다,

고향 봉화에는 많은 귀농자들이 산다. 귀농해 성공한 분들도 많지만 반대로 실패해서 다시 유턴한 분들도 계신다. 나도 직장에서 받던 봉급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돈을 위해 부부가 함께 눈이오나 비가 오나 들판에서 일을 했다.

2년차인 지난해는 과수 묘목이 고사하거나 빈터에 여러 종류의 작물을 심은 뒤 2모작 즉 후작으로 양배추를 심기로 하고 모종을 예쁘게 포트에서 길러 7월 말경 200여평 본밭에 이식을 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3일도 되지 않아서 말라 죽는 등 모두 세 차례나 옮겨 심어야 했다. 다행히 8월 14일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광복절 하루 동안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우리 부부는 하루 온종일 비를 맞으면서 양배추 모종 이식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농사는 돈 보고 짓는 게 아니라 건강 보고 한다

2012년에는 음력 윤달이 있어 추석명절이 1개월 늦었다. 다행히 집 위치가 국도 36번 도로변에 있어 추석휴가차 집에 내려온 여식에게 멍석 깔고 앉게 하고 호두를 직접 판매하면서 짭짤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결산을 해보니 전년도 보다는 약 30% 정도 수익이 높았다. 뭐 높다고 해도 아직 순수익 2000만원에 턱걸이 하는 정도다,

그래도 돈만 보고 농사를 지으면 어렵다. 육체적으로는 힘들고 수익금도 얼마되지 않아서다.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 수년전 직장 다닐 때는 회식자리가 빈번했는데 당시 소주 1병만 마셔도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어려웠다. 지금은 달라졌다. 소주 2병 가량 마셔도 다음날이면 이른 아침 끄떡없이 일어나 들로 나간다. 그만큼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산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작년 농사도 예전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호두와 대추 농장 주변에 붉은 들깨와 참깨 농사를 했다는 정도다. 참깨는 약 100평, 붉은 들깨도 100평가량에 심었다. 참깨농사는 제법 잘 됐다. 5월 상순경 밭 두둑위에 멀칭 비닐을 한 후 전후좌우 12cm 간격으로 평균 6~7개 가량의 참깨종자를 심고 그 위에 채로 친 모래를 살짝 뿌렸더니 거짓말 같이 참께 종자가 90% 이상 발아했다.

사실 비료도 종자 뿌리기 전 흉내만 낼 정도로 약하게 살포했는데도 참깨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대풍이다. 참깨는 1.2kg 한 되에 2만5000원씩 약 60kg가량 팔았다.

붉은 들깨 농사도 조금 지었다. 붉은 들깨는 기초 한약 재료로 들어간다. 먼저 붉은 들깨를 이식할 밭 가까운 곳에 밀식으로 뿌린 후 약 1개월가량 지나면 10cm 가량 자란다. 비 오는 날 들깨모종을 솎아서 약 50cm 거리에 2포기씩 한곳에 심으면 된다.

이식 후 45일 가량 지나면 붉은 들깨 모종에도 빨간 꽃이 피기 시작하고 키도 약 70~80cm정도 자란다. 꽃이 피기 직전 수확해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건조기에 건조시키면 600g 1근에 3000원씩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집은 호두농사가 첫째다.

귀농을 결정했다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라는 것은 없다. 그곳이 고향이어도 마찬가지다. 300년 넘게 봉화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와 텃새나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인데도 항상 어른들에겐 고개 숙이고 잇다.

도시에서는 돈을 보고 일했다면 여기서는 다른 가치를 보고 일해야 한다. 미리 준비했고 집안에서 물려받은 전답이 있으니 자본도 연고도 없이 귀농한 사람과는 계산법부터가 다르지만 돈을 보고 농사짓는 게 아니라는 말에는 충분히 동감한다.

◇ 윤석은 씨의 귀농이야기

△귀농 전 거주 지역: 포항

△귀농 전 직업: 포스코

△귀농 결심동기: 정년퇴직 후 귀향

△귀농 선택작목: 호두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경주시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교육, 봉화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교육

△귀농연도: 2011년

△귀농시 나이: 만 57세(정년퇴직 이듬해)

△귀농지 선택사유: 고향

△귀농시 영농기반: 5000여평

△귀농 초기자금: 3억(집 건축비용 1억원, 농사초기비용 5000여만원 사용)

△현재 영농규모: 5000여평

△연간 수익: 20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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