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돌봄] 가족 돌보다 내 건강과 노후까지 흔들리지 않으려면

80~90대 부모를 돌보는 자녀가 이미 50~70대인 경우가 많고, 아픈 배우자를 돌보는 사람 역시 노인인 경우가 많다. 부모를 돌보느라 근무시간을 줄이고 자신의 병원 진료를 미루기도 한다. 돌봄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의 건강과 생활도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는 “돌봄을 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이 함께 늙고 약해지는 이중 취약성”이라고 설명했다.
가족 돌봄을 어디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지금의 돌봄 방식이 위험해지고 있다는 신호는 무엇이며, 가족끼리는 어떻게 부담을 나눠야 할까.
80대 부모를 돌보는 자녀도 60대다

부모를 돌보는 중장년 자녀 자신도 나이가 들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힌다. 50~70대가 되면 고혈압이나 관절질환 같은 만성질환이 생기고 근력과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부모를 일으켜 세우고 부축하거나 목욕과 이동을 돕는 일은 몸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나이 든 부부가 서로 돌보는 노노 케어에서는 이 문제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장숙랑 교수는 “노노(老老) 케어는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보는 사람이 동시에 노화하고 취약해지는 구조”라며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연쇄적인 돌봄 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내가 남편의 식사와 약을 챙기고 병원에 동행했는데 아내마저 아프면, 남편의 돌봄뿐 아니라 두 사람의 생활 자체가 어려워진다. 돌봄자의 건강 악화가 곧 새로운 돌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중장년 자녀도 마찬가지다. 퇴직을 앞두거나 소득이 줄기 시작하는 시기에 부모 돌봄이 겹치면 자신의 노후 준비에도 영향을 받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45~64세 중년층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가족 돌봄 부담이 있으면서 노후 준비도 하지 못한 집단이 전체의 12.5%로, 이들은 사회불안을 느끼는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장 교수는 “부모 돌봄 때문에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일을 그만두면 현재의 소득 감소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다음 세대의 돌봄 빈곤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자도 피곤하다면, 돌봄 방식을 점검할 때
가족 돌봄자는 자신이 지쳤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더 아픈데 자신의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기 어렵고,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진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생활에서 조금씩 나타난다.
장 교수가 꼽은 돌봄 소진 신체적 신호는 △충분히 자도 풀리지 않는 피로와 수면장애 △지속적인 두통·근육통이나 체중 변화 △고혈압·당뇨 같은 만성질환 악화 등이다. 낙상이나 어지럼증도 놓쳐서는 안 될 변화다.
마음과 행동도 달라진다.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거나 화를 내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한다. 불안과 무기력, 죄책감이 심해지거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이 생활이 언제 끝날까’라는 생각에 빠진다. 친구를 만나지 않고 외출과 취미를 모두 포기하는 것 또한 신호다. 식사와 수면이 불규칙해지고, 술이나 수면제에 의존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돌봄을 받는 사람과의 관계가 달라졌다면 주의 깊게 봐야 한다. 부모나 배우자에게 자주 고함을 치거나 거칠게 대하게 되고,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 ‘나도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반복된다면 이미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을 수 있다. 장 교수는 도움을 요청하는 시점이 소진 이후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완전히 지친 다음에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지금의 방식으로 앞으로도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똑같이’보다 한 사람에게 집중되지 않게
돌봄에 대해 가족이 부딪히는 이유 중 하나는 ‘공평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까이 사는 가족은 병원 동행을 맡고, 멀리 살면 비용이나 금융·행정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 시간을 똑같이 나누는 것만이 공평한 분담은 아니다. 장 교수도 “가족 돌봄은 똑같이 나누는 것보다 한 사람에게 부담이 고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가족마다 거주지와 직업, 경제적 여건, 건강상태가 다른 만큼 돌봄 시간만 계산하기보다 전체 부담을 놓고 역할을 나누는 편이 현실적이다. 병원 동행과 평소 연락, 비용 부담, 응급 상황 대응 등을 정하고, 주돌봄자를 두더라도 혼자 책임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일상적인 판단은 주돌봄자가 하되 수술이나 시설 입소, 큰 비용 지출은 가족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 부모의 상태나 가족의 형편이 달라지면 역할도 다시 조정한다.
장 교수는 가족회의가 ‘누가 무엇을 맡을지’를 정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건강할 때 치매안심센터나 행정복지센터에서 받을 수 있는 도움과 응급 상황일 때 연락할 곳을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다. 부모에게 지금 집에서 계속 살고 싶은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괜찮은지, 어떤 상황에서 시설 이용을 생각할 수 있는지도 미리 물어두면 나중에 가족이 부모의 뜻을 짐작해 결정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돌봄을 나눌 가족이 없는 경우도 있다. 외동 자녀거나 형제자매의 건강·경제적 사정으로 사실상 혼자 부모를 돌보기도 하고, 자녀 없이 아픈 배우자를 돌보는 노인도 있다. 장 교수는 “가족에게 주어진 돌봄 자원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가족 밖의 도움을 일찍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응급 상황일 때 친지나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정기적인 생활 지원은 공적 서비스를 활용하는 식으로 돌봄을 나눌 수 있다. 매일 해야 하는 일, 정기적으로 필요한 일, 갑자기 생기는 일을 구분해보면 어디에 도움이 필요한지도 보인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적을수록 행정복지센터나 치매안심센터 등 지역에서 연락할 곳을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돌봄자도 돌봄의 대상이다
부모나 배우자를 돌보는 일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가까이 있는 가족이 가장 먼저 변화를 알아차리고 병원에 데려가며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가족이 한계까지 버틴 뒤에야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순서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장 교수의 생각이다.
“가족이 어디까지 감당하고 사회가 어디서부터 감당해야 하는지 나누기 어렵습니다. 모든 돌봄에 사회가 처음부터 함께해야 합니다.”
그는 돌봄자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으로 ‘돌봄을 나누는 것’과 ‘휴식’을 꼽았다. 잠을 충분히 자고, 식사를 거르지 않고, 자신의 진료와 약 복용을 미루지 않는 것도 돌봄을 계속하기 위한 조건이다. 특히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모두 거절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가족•친지•이웃과 작은 역할이라도 나누고, 이용할 수 있는 공적 지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 좋다. 장 교수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이제는 한 명의 어르신을 돌보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부모를 잘 돌본다는 것이 자신의 건강과 직장, 노후를 포기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일은 아니다. 돌봄을 나누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돌보는 사람의 생활도 함께 지켜야 한다. 그래야 가족의 돌봄도 오래갈 수 있다.
도움말 장숙랑 중앙대학교 적십자간호대학 교수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쳤다. 노인 보건과 건강형평성, 지역 통합돌봄을 중심으로 돌봄의 공백과 불평등을 줄이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와 한국건강형평성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가족의 간병 및 의료 부담을 덜기 위한 지역사회 돌봄 체계와 공공성 강화를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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