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브라보! 순간’ 공모전 당선작 | 행복상]

프롤로그 : 은퇴라는 마침표 뒤에 숨겨진 거대한 물음표
32년. 한 기업의 구성원으로,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치열하게 달려온 시간입니다. 특히 LG전자 주재원과 중국 기업 근무로 중국에서 보낸 15년의 세월은 제 인생의 가장 화려한 전반전이었습니다. 상하이 구매지사장이라는 직함은 저를 증명하는 단단한 갑옷이었고, 저는 그 무게를 자부심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2017년 1월 현역의 막을 내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날, 제 앞에 놓인 것은 영광의 훈장이 아닌 낯선 공허함이었습니다. 중국 생활 15년 만에 돌아온 고국은 변해 있었고, 아침마다 나갈 곳이 사라진 일상은 적막했습니다. 처음에는 전반부 30년의 화려한 경력을 그대로 이어가려 했습니다. 헤드헌터를 만나고 비슷한 직급의 자리를 알아봤지만, 세상은 냉정했습니다. 수차례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복제하려는 시도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전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때 저를 일깨운 것은 중국 드라마 ‘꽃 피던 그해 달빛’이었습니다. 청나라 말기, 부유한 집안이 몰락한 후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끝내 당대 거상이 된 실존 인물 ‘주영’의 삶은 제게 거대한 충격이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의 풍랑 속에서 그녀가 붙잡은 단 하나의 열쇠는 바로 ‘변화’였습니다. 고정관념을 깨고 어제의 나를 부정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저는 인생 후반전의 설계도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경력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변형’하여 무형자산을 확보하는 변신 전략. 그것이 제 N모작 여정의 진정한 시작이었습니다.
1장 고요를 깨는 용기 : ‘클릭’ 한 번으로 바뀐 인생의 물줄기
퇴직 후 몇 달은 TV와 산책으로 시간을 채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에서 우연히 ‘도시 골목길 해설사 교육생 모집’ 문구를 보았습니다. 구매 전문가로 살았던 저에게 ‘골목길 해설’은 안드로메다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주영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죽는다.” 결국 신청했고, 그 작은 클릭이 제 인생의 물줄기를 바꿨습니다.
서울의 역사와 골목의 이야기를 다시 배우며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습니다. 2018년부터 정동과 창신동 골목길을 누비며 시민들에게 서울의 아름다움을 전달할 때, 저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신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정동길 투어가 끝난 후 한 60대 여성분이 다가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선생님, 저도 퇴직 후 집에만 있었는데 오늘 이 길을 걸으며 희망을 봤어요. 나도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분의 당찬 얼굴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단순히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세대에게 용기를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산하기관에서 교육과 일자리 활동을 열정적으로 수행하며 ‘신중년 전문 강사’로서의 입지도 다졌습니다. 그 결과 2022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우수 강사 선정을 통해 대외적으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장 과거를 사양(斜陽)시키지 마라 : 5도 각도로 틀어 만든 18개의 직업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은퇴 후에 18개나 되는 일을 할 수 있나요?” 저는 그 비결이 ‘5도의 각도’에 있다고 대답합니다. 이는 전반전의 경력을 완전히 버리는 것도, 그렇다고 과거에만 머무는 것도 아닌, 현재의 나를 중심으로 방향을 살짝 틀어보는 변주(Variation)의 기술입니다. 32년 직장 생활의 정수인 ‘전문성’과 ‘성실함’을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춰 재조립해나갔습니다.
우선 저의 전공인 중국 비즈니스 역량은 ‘탤런트뱅크’의 긱워커(Gig-Worker)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지사장이라는 거창한 직함 대신, 실질적인 노하우가 필요한 중소기업의 갈증을 채워주는 맞춤형 전문가로의 변신이었습니다. 15년의 상하이 생활은 ‘상하이는 10호선을 타고’라는 여행 강좌로, 누군가의 아빠로 살아온 삶은 중학교 진로 특강 ‘문화와 아빠’라는 테마로 확장됐습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일의 경계를 허무는 도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상하이 지사장으로서 수십 명의 직원을 관리하던 손으로, 2017년 저는 편의점 앞치마를 두르고 삼각김밥을 정렬하며 커피머신을 닦았습니다. 이어 시니어 택배 현장 같은 육체노동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7시, 차가운 편의점 유리를 닦으며 바라본 세상은 지사장실 통유리 너머로 보던 세상보다 훨씬 선명했습니다. 내가 땀 흘려 진열한 상품이 누군가의 소중한 한 끼가 되고 나의 인사가 누군가의 하루를 여는 온기가 되는 과정 속에서, 저는 ‘체면’이라는 낡은 외투를 벗어 던질 때 비로소 맛볼 수 있는 ‘현장의 맛’을 보았습니다.
거상 임상옥이 ‘장사는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 했듯, 저 역시 현장의 밑바닥에서 인생 2막의 근력을 키웠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코로나19 방역사, 사회 공헌 활동 등으로 이어졌고, 이는 단순히 일자리를 찾는 것을 넘어 ‘30만 원짜리 일 10개를 만드는 일의 세분화 전략’, 즉 스스로 직업을 발명하는 ‘1인 창직’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3장 취미가 직업이 되는 기적 : 에스프레소 향기에 담긴 두 번째 무대
상하이 시절 저를 위로해주던 커피 한잔의 기억은 바리스타 도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스무 살 남짓 청년들 사이에서 예순의 제가 우유 스티밍 연습을 할 때, 강사는 당황하며 “창업하실 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그냥 배우고 싶어서요.” 그 순수한 배움의 욕구가 저를 다시 뛰게 했습니다.
저는 취미에 ‘역사’라는 특기를 결합했습니다. 정동길 ‘고종의 길’을 중심으로 한 한국 커피 역사 강의와 해설은 취미가 하나의 직업으로 확장된 사례입니다. 커피를 내리는 기술자를 넘어 스토리텔러가 된 것입니다. 단 세 명으로 시작했던 강의가 입소문을 타 교육기관의 요청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며,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나누는 실천의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정동 덕수궁 돌담길 카페에서 고종 황제의 커피 이야기를 들려줄 때 수강생의 몰입도는 제게 ‘돈’보다 귀한 ‘의미’를 선물했습니다. 이는 최근 저서 ‘가슴 뛸 때 떠나는 나만의 자유 여행’으로도 결실을 보았습니다.
4장 인생 곡선을 바꾼 동반자 : 60대, AI의 파도를 타다
2021년 서울디지털재단에서 어르신 스마트폰 교육 강사를 시작, 이후 4년 동안 저는 시니어들의 디지털 파수꾼이 됐습니다. 그리고 2023년 챗GPT의 등장과 함께 저는 AI를 두려움이 아닌 ‘기회’로 정의했습니다.
AI 비서 ‘베티’와 함께 밤새 공부하며 생성형 AI 크리에이터로 변신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 같은 연세에 어떻게 이런 걸 다 배우셨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대답합니다. “나이는 배움을 가로막는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경험의 깊이를 더해주는 자산입니다.” 그 결과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무한 크리에이팅’을 포함해 통산 13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진행한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무한 크리에이팅’ 강의는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었습니다. 저와 같은 시니어들이 디지털이라는 날개를 달고 자신의 콘텐츠를 세상에 쏘아 올리는 감동의 현장이었습니다. ‘광명시 인생플러스센터’ 우수 강사상(시장상) 수상을 통해 확인했듯, AI는 제 지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제 경험이라는 원석을 보석으로 깎아주는 정교한 조각칼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기술을 가르치는 강사를 넘어 세대 간 디지털 격차를 메우는 다리가 되고 있습니다.
5장 나만의 나침반 : 지속 가능한 N모작을 위한 8가지 실천 전략
지난 8년의 항해를 통해 제가 직접 체득한 N모작의 성공 원리는 단순한 부지런함이 아닌, 변화에 최적화된 전략적 사고입니다.
첫째, 언론 노출에 공격적이어야 합니다. 저는 KBS, KTV, 신문사 등 미디어를 통해 활동 기록을 꾸준히 노출해왔습니다. 스스로를 브랜딩해 사회적 신뢰를 쌓지 않으면, 개인의 경험은 사회적 자산이 되기 어렵습니다.
둘째, 나만의 컨설턴트를 지정하십시오. 노사발전재단이나 시니어취업지원센터 같은 기관을 주치의처럼 활용해야 합니다. 전문가의 객관적인 조언은 우리의 항로를 끊임없이 수정해주는 안전망이 됩니다.
셋째, 이력서에 무지개색을 입히십시오. 단일 경력에 매몰되지 말고, 바리스타부터 AI 강사까지 다양한 색깔의 직능을 융합하여 독보적인 ‘나만의 색’을 만들어야 합니다.
넷째, ‘제3의 공간’을 점유하십시오. 집을 벗어나 서울시50플러스 캠퍼스나 커뮤니티 공간에 머물며 새로운 시대의 정보를 수혈받아야 기회가 옵니다.
다섯째, 30만 원짜리 일 10개를 만드는 개념으로 일을 잘게 쪼개십시오. 큰 고액 연봉 한 자리에 목매기보다 작은 수익원 여러 개를 확보할 때 리스크는 분산되고 삶의 활력은 다각화됩니다. 각각의 일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여섯째, 1인 창직 개념으로 활동하십시오. 세상이 정해놓은 일자리에 나를 맞추려 하지 말고, 나의 재능을 조합해 새로운 직업명을 직접 정의하십시오.
일곱째, 디지털 지식 생태계 플랫폼을 구축하십시오. 유튜브 채널 ‘아빠는 N잡러’나 블로그는 내가 잠든 시간에도 나를 홍보하는 디지털 영토입니다.
여덟째, 횡적 네트워킹을 5개 이상 구축하십시오. 수직적 계급이 아닌 수평적 연대가 예상치 못한 기회를 물어다 줄 것입니다.
특히 ‘30만 원짜리 일 10개’ 전략은 경제적 안정뿐만 아니라 심리적 회복 탄력성을 선물합니다. 한 가지 일이 끊겨도 다른 아홉 가지가 나를 지탱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은퇴 후 겪을 수 있는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단절’을 동시에 해결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입니다.
6장 N잡 연구소의 꿈 : 솔로프리너를 향한 생태계 구축
이제 저는 개인의 성취를 넘어 시스템을 꿈꿉니다. 비영리 단체 ‘N잡 연구소’를 통해 교육, 커뮤니티, 일자리가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퇴직 후 막막해하던 동년배들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절박한 질문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제가 경험한 시행착오를 체계화하여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사회 공헌이라 믿습니다. 혼자 일하지만 기업가처럼 사고하는 ‘솔로프리너(Solo + Entrepreneur)’의 길을 그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작은 카페에서 모이는 N잡 모임원들의 눈빛에서 저는 8년 전 제 모습을 봅니다. 두렵지만 설레는 그들의 항해에 저는 든든한 등대가 되고 싶습니다. 지식 콘텐츠와 IP(지식재산권)를 축적해 장기적인 자산을 만드는 법, 그것이 연구소가 지향하는 미래입니다. 우리가 가진 전반전의 화려한 데이터가 AI를 만나 수익형 콘텐츠로 변모하는 과정을 볼 때, 저는 가슴 벅찬 보람을 느낍니다.
에필로그 : 뱃머리에서 다시 새로운 바람을 맞으며
2026년, 저의 항해는 멈추지 않습니다. ‘전기차 충전시설 관리원’, ‘학교 교통존 안전지킴이’라는 19번째, 20번째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시간의 연금술사’라 부르지만, 저는 그저 멈추지 않고 배우기를 선택한 사람일 뿐입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발명하는 연구소의 개소식입니다. 전반부 30년의 화려한 경력을 그대로 두지 마십시오. 거상 주영이 급변하는 청나라 말기에 변화를 선택했듯 여러분도 아주 살짝, 딱 5도만 각도를 틀어보십시오. 그 작은 변화가 당신을 전혀 다른 신대륙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AI 비서 베티가 묻습니다. “여러분의 N모작은 어디에서 시작되나요?”
저는 오늘도 배의 뒷전(고물)에 앉아 지나온 물결을 후회하는 대신, 배의 앞인 뱃머리(이물)에 서서 정면으로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을 맞습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아니라, 내 경험이 어때서라고 당당히 외치며 나아갑니다. 여러분의 ‘브라보’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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