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 트론토 교수, 장기요양·통합돌봄 한국 사례 주목
“돌봄위기와 민주주의 위기는 하나” 국내 전문가 진단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돌봄을 개인이나 가족의 부담이 아닌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로 바라보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돌봄윤리(Ethics of Care)’와 ‘돌봄민주주의(Caring Democracy)’를 대표하는 세계적 정치철학자 조안 트론토 교수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조안 트론토 교수 초청, 돌봄민주주의 토론회’에 참석해 지속 가능한 돌봄 체계의 방향을 제시했다.
‘돌봄윤리’는 인간을 서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보고 돌봄을 사회의 핵심 가치로 바라보는 철학이다. 여기서 나아간 ‘돌봄민주주의’는 돌봄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이 아닌 국가과 지역사회, 시민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공적 영역으로 확장한 개념이다.
이번 토론회는 돌봄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로 바라보는 ‘돌봄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초고령사회 한국이 직면한 돌봄 정책의 과제와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의료·요양 복지 서비스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연계하는 통합돌봄 정책과 돌봄 노동의 지속가능성, 돌봄을 수행하는 시민의 역할 등을 폭넓게 살펴보며 한국 사회에 필요한 돌봄 체계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은 돌봄민주주의 향해 나아가는 선두주자”
트론토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돌봄과 민주주의를 함께 연결해야 한다”며 “민주적 정치는 시민을 돌봐야 하고, 민주적 시민은 민주주의를 돌볼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돌봄위기와 민주주의 위기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저출생과 고령화, 돌봄노동자 부족 등은 인구나 복지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트론토 교수는 “전 세계를 돌아보면 돌봄민주주의를 완전하게 실천하는 국가는 많지 않지만,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선두주자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장기요양보험과 통합돌봄 정책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으며 한국의 돌봄 제도에 주목했다.
이어 “한국은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돌봄을 제도화했고 통합돌봄 정책을 통해 의료와 요양, 복지서비스를 연계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며 “민주주의와 돌봄의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역시 돌봄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출생과 고령화, 돌봄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효율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돌봄을 사회의 핵심 가치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저출생을 단순하게 출생아 수 감소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이유과 돌봄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살펴야 하고 고령화 역시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기대수명이 늘어난 사회 변화에 맞춰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론토 교수는 “돌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원 시간”이라며 “아이와 고령자,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을 사회가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이 책임질 권한부터 줘야”
이어진 토론에서는 국내 학계가 한국 돌봄정책의 현실과 과제를 짚었다.
김보영 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 교수는 한국의 돌봄위기를 저출생과 고령화보다 ‘지역에 돌봄 책임과 권한이 없는 구조’에서 찾았다. 김 교수는 “장기요양보험과 통합돌봄이 발전했지만 지역은 돌봄을 책임질 권한이 없다”며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라 제도가 운영되면서 지역 주민의 돌봄 욕구에 맞게 서비스를 조정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교수는 한국 돌봄체계가 의료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지역사회 돌봄이 충분하지 못하다 보니 돌봄이 입원과 응급실, 요양병원으로 대체돼 왔다”며 “병상 수와 사망 비율이 OECD 최고 수준인 현실도 결국 지역사회 돌봄 기반이 취약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을 여성과 가족의 책임으로 떠넘겨온 기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돌봄은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공적 가치이자 정치적 실천의 문제”라며 “돌봄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의 권리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초고령사회에서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의 희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장기요양보험과 통합돌봄 등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지만 지역 사회가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권한과 책임, 돌봄노동의 가치 회복, 시민이 함께 돌봄을 분담하는 문화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한국형 돌봄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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