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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독수리를 위해 삽니다

입력 2025-08-27 10:07

한갑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

▲한갑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주민욱 프리랜서)
▲한갑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주민욱 프리랜서)

파주 장단반도 일대는 국내 최대 독수리 월동지다. 매년 이르면 10월께 700여 마리 독수리가 몽골에서 한반도로 날아온다. 하지만 탈진하거나 독극물에 중독돼 기력을 잃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을 구조하고, 손수 먹이고, 회복될 때까지 돌보는 이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독수리 아빠’라 부른다. 바로 한갑수 한국조류보호협회 파주시지회장이다.

“독수리 구조요? 그냥 좋아서 하는 거죠.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파주는 북한과 가까워 사람의 출입이 상대적으로 적고,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 좋은 지형이다. 장단반도 일대는 자연 그대로의 습지와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독수리들이 월동지로 삼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 한갑수 지회장은 감악산 기슭에 위치한 조류 방사장에서 독수리를 돌본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는 독수리의 상태부터 확인한다. 밤새 무사했는지, 컨디션은 어떤지, 사소한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먹이는 주 1회 제공한다. 언제든 목욕할 수 있도록 넉넉한 물도 마련해뒀다.

“밥 먹을 때도 독수리들이 걱정돼 CCTV를 설치해놨어요. 몸이 안 좋은 애가 혹시라도 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바로 달려가야 하거든요. 저는 이제 독수리의 날갯짓이나 움직임만 봐도 어디가 아프고 얼마나 힘든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는 독수리가 최적의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다. 올해처럼 찜통더위가 이어지는 여름에도 이곳 독수리는 끄떡없다.

“17년 전에 제가 직접 심은 등나무 덕분이에요. 여름엔 정말 더운데, 여기는 바람도 잘 통하고 시원해서 독수리들도 잘 버팁니다. 사람도 새도 그늘이 있어야 살 수 있죠.”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오토바이 수리공, 독수리를 품다

한갑수 지회장은 본래 조류와는 관계없는 일을 했다. 파주에서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던 그는 1997년 2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장면과 마주했다. 임진강변에서 29마리의 독수리가 독극물에 중독돼 집단 폐사한 현장이다.

“당시 파주 지역 명예 환경감시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출장 나갔다가 우연히 독수리 떼죽음을 발견하고 신고했어요. 그곳이 독수리 월동지라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려지게 됐죠. 워낙 동물을 좋아했던 터라 무섭거나 두렵다기보단 ‘얘들을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당시에는 조류 구조에 대한 지식도, 시스템도 전무했다.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는 근처 농장에서 나오는 돼지·닭·소의 폐사체를 직접 가져와 독수리들에게 먹이로 주었고, 그렇게 독수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구조 경험도 있고 지식도 있지만, 처음엔 전혀 몰랐어요. 책보다 현장이 먼저였죠. 사람들에게 묻고, 부딪히고, 직접 해보면서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처음엔 전부 제 돈으로 했어요. 먹이도 직접 구했고, 공간도 직접 마련했고요.”

지금은 국가유산청과 파주시로부터 일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최근 몇 년 사이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서 독수리 구조 활동은 더 큰 벽에 부딪혔다.

“예전엔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법이 바뀌어 사람 먹는 고기만 써야 해요. 비용이 훨씬 많이 들죠. 그런데 예산은 오히려 줄었어요. 생명을 살리는 데는 최소한의 재정이 필요한데, 지금은 그 기본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는 멸종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제243-1호)이자,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인 독수리를 지키는 일이 단순한 취미나 자원봉사가 아님을 강조한다. 한 개인의 헌신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수리들이 돌아올 수 있는 자연을 지키는 것은 곧 우리의 생태를 지키는 일이에요. 이건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다시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독수리를 구조했다고 해서 평생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한갑수 지회장은 구조한 독수리를 세심히 보살핀 뒤, 이듬해 3월이 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이를 ‘방사(放飼)’라고 한다. 무조건 날려 보내는 게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을 때 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매번 이별을 반복하지만 슬프지 않아요. 오히려 다시 날 수 있으니 기쁘죠. 다치지 말고 날아가서 잘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것밖에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독수리를 보호하다 보니 독수리 자체에도 관심이 커졌다. 그의 열정은 국경을 넘어섰다. 독수리를 따라 2000년대 초 몽골로 향했고, 20여 년간 8개국의 조류 전문가들과 협력해왔다.

그들은 독수리에게 위성 위치 확인 장치(GPS)와 윙태그(Wing Tag)를 부착해 생태와 이동경로를 추적한다. 윙태그는 플라스틱 꼬리표로, 번호와 색상을 조합해 개체를 구별할 수 있도록 만든다. 망원경이나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해 구조나 관찰할 때 유용하다.

이를 통해 한갑수 지회장은 독수리의 서식지 유형, 육로 이동경로, 재방문 패턴 등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특히 GPS 데이터는 독수리가 바다를 건너지 않고 압록강·두만강을 따라 이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GPS와 윙태그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생명의 궤적입니다. 저는 수십 년간 축적해온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어요. 그 데이터는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며 생명과 자연의 흐름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기록입니다. 독수리의 삶, 생태, 이동에 관해 제가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는 2017년 몽골 정부로부터 ‘자연환경 우수인’ 훈장을 수훈했다. 몽골과 한국을 오가며 이동 철새인 독수리를 보호하고, 양국 간 생태 협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생명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시작한 일이 이제는 생태 보전의 최전선에 서게 만들었다.

“저는 박사도 아니고, 연구원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이 생명들을 덜 이해하는 건 아니잖아요. 가끔 ‘네가 뭘 알아?’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책이 가르쳐주지 않는 걸 독수리들이 제게 알려줬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현장 과학이죠.”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가족에겐 늘 미안한 아빠

한갑수 지회장은 방조장 한켠에 ‘독수리 홍보관’도 만들어놓았다. 독수리 사진, 다양한 국가에서 수집한 자료 등이 벽에 빼곡히 걸려 있다. 독수리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 활성화도 꿈꿨다. 그러나 인건비를 감당할 여력이 안 돼 계속해서 추진할 수 없었다.

이처럼 그는 독수리 아빠로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왔다. 하지만 외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의 곁엔 언제나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처음 구조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늘 그와 함께했다. 한 쌍을 이뤄 함께 국가를 넘는 비행을 하는 독수리처럼, 부부는 몸도 마음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세 딸은 그런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며 손발을 보탰다.

“딸들이 독수리를 좋아해주고, 저를 도와줘서 참 고마웠어요. 같이 청소도 하고, 먹이도 주고 했죠. 요즘은 손주들까지 독수리를 좋아해주더라고요. ‘할아버지, 독수리 보러 갈래요’라며 졸라요. 가족이 도와줬기에 여기까지 왔죠.”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늘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표현이 서툰 성격 탓에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지만, 그는 알고 있다.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왔는지.

“좋은 것 못 사준 것보다 추억을 많이 못 만든 것이 아쉽더라고요. 독수리를 두고는 어디를 갈 수가 없었죠. 가족끼리 휴가 한 번, 여행 한 번 제대로 못 갔어요. 그런데 아무도 불평하지 않더라고요. 정작 딸들에게는 아빠 노릇을 못 한 게 아닌가 싶어요.”

2019년, 그는 건강 악화로 갑작스레 쓰러졌다. 그리고 사흘 만에야 눈을 떴다. 당시 삶의 끝을 떠올릴 만큼 위중한 상태였다.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다름 아닌 독수리들이었다.

“아무래도 염라대왕이 독수리 돌보라고 다시 보내준 것 같아요.”

건강을 회복해 다시 독수리 아빠가 된 그. 말은 농담처럼 했지만, 강인하던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세월이 흐를수록 독수리를 향한 애정은 더욱 짙어졌지만, 그의 몸은 예전 같지 않다. 매년 반복되는 이별 앞에서도 담담하던 그는 이제 자신이 먼저 떠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눈앞의 독수리들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기력을 되찾은 독수리가 힘차게 하늘을 나는 순간, 누구보다 환하게 웃는 그다.

“독수리를 지켜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여태껏 이 일을 해온 것도 모두 제 의지였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시작한 일도 아닙니다. 독수리는 제게 자식 같은 존재예요. 끝까지 책임져야죠. 눈 감는 그날까지 아빠의 역할을 다해야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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