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미다’ 20주년 “팬들께 감사”… ‘여배우의 사생활’로 제2의 전성기
이제는 개인의 선택이라지만 20·30대 결혼, 40대 자녀 양육 등 나이에 따른 사회적 통념이 잔존해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예지원은 나이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1991년 데뷔 이후 일에 매진하며 연애나 결혼 생각이 없었다는 그는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사랑을 찾아 나선 모습을 보였다. 20년 전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푼수 캐릭터 최미자를 연기했던 배우는 어느덧 사랑에 진심인 성숙한 여인으로 바뀐 터였다.
사랑할 수 있을까?
깊어가는 가을날 화보 촬영을 진행했는데 어떠셨나요?
저는 화보 촬영을 좋아합니다. 복고풍 콘셉트의 화보를 찍고 싶다는 로망이 늘 있었는데, 이번에 소원 성취를 했네요. 스튜디오가 영화 ‘화양연화’를 모티브로 한 점도 너무 좋았어요. 괜히 장만옥이 된 기분도 들었고요.(웃음)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쉬는 날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어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님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 청년, 동호’의 내레이션을 맡았거든요. 영화 상영 자리에 50명 정도의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김동호 전 위원장님을 존경하는 마음 하나로 참석했어요. 그리고 주말에는 속초국제영화제에 갔다 왔습니다. 저는 워낙 GV(관객과의 대화)를 즐기는 편이라 영화제 참석을 좋아해요. 제가 고생해서 찍은 영화를 심도 있게 보고 얘기해주는 관객과의 만남은 축복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인으로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셨네요.
영화인이기도 하지만, 최근 방송에도 출연했으니 방송인이기도 하죠. ‘공개연애-여배우의 사생활’(이하 ‘여배우의 사생활’)*은 지방에서 촬영했잖아요. 집을 떠나 먼 지역에서 출연진들과 같이 먹고 자면서 촬영하는 것을 저는 작품이라고 얘기해요. 예전에는 영화만 예술이라고 했다면, 지금은 방송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죠.
*TV조선에서 8월 20일부터 9월 24일까지 6부작으로 방송됐다. 40·50대 여배우 예지원, 오윤아, 이수경이 운명적 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여배우의 사생활’ 얘기가 나왔네요. 순수하고 천생 여자 같은 모습에 많은 시청자가 놀랐어요.
저 원래 순수해 보이지 않나요? 하하. 정말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이 나온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이번에 시청자들이 유독 놀라셨을까요? 저야말로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놀랐죠. 5박 6일 촬영하면서 설렘도 물론 느꼈지만, 친한 동생들과 시골살이를 하면서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어요. 시청자들도 연애 예능보다는 힐링 예능으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울 때 저희 프로가 때마침 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최종 커플이 된 (이)동준 씨를 포함해서 모든 출연진과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연애를 안 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죠.
10년까지는 아니지만 오래됐죠. 과거에는 연애라는 것을 내 삶의 가치로 두지 않았어요. 물론 외로울 때도 있었죠. 그런데 연애를 해도, 결혼해서 자식을 키워도 외롭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원래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욱이 저는 세상만사에 호기심이 많고, 예술을 좋아하고, 여러 취미활동을 하다 보니 연애를 생각할 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통기타, 룸바와 차차차 등을 배우고 연습하고 있답니다.
연애를 넘어 결혼하길 바라는 시청자가 많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렸을 때는 일찍 결혼하고 싶었지만 못 했죠. 살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결혼을 일찍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여배우의 사생활’ 촬영이 끝나고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슬퍼지더라고요.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여자로서의 삶을 바쁘다는 이유로 너무 놓고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후회의 감정은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마음의 문이 조금은 열린 것 같기도 하네요.
‘올미다’ 그후 20년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빼놓을 수 없는 필모그래피죠.
진짜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한 작품이죠. ‘올드미스 다이어리’(이하 ‘올미다’)*는 하늘이 배우 하라고 제게 주신 선물 같아요. 방영 당시 시청자의 관심도는 지금 ‘여배우의 사생활’로 받는 것과 비슷했어요. 시청자들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에 많이 공감한 것 같아요. 그때도 아날로그 감성이 통했다고 봐요. ‘올미다’ 멤버들은 제게 또 다른 가족이에요. 배우들, 감독님, 작가님 모두 잘 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너무 좋고 기뻐요.
*2004년 11월부터 1년간 KBS2에서 방영된 232부작 일일 시트콤이다. 올드미스 라디오 DJ 최미자의 일과 사랑을 그렸다.
그러고 보니 벌써 20주년을 맞았네요.
공식 팬카페 ‘올미다 사랑방’ 팬들과는 매년 한 두 번씩은 만나고 있어요. 이제는 화장도 안 하고 모임에 나갈 정도로 서로 편한 사이죠. 팬들이 늘 같은 자리에 있어 줘서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20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배우들이 참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극 중 최미자는 노처녀 캐릭터로 설정됐는데요. 출연에 앞서 우려된 지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극 중 최미자의 나이는 서른두 살이었어요. 그때는 그 나이면 노처녀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은 아기죠. 당시 저는 서른한 살이었고요. ‘올미다’에 출연한 이유는 한국판 ‘브릿지 존스의 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어요. 노처녀 캐릭터로 인한 걱정은 극 초반에만 살짝 했던 것 같아요. 극이 전개되면서 시청자들이 많이 좋아해주시니 그저 감사한 마음만 들었죠.
‘올미다’부터 ‘여배우의 사생활’까지, 대중의 응원을 많이 받기에 악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댓글을 잘 안 보긴 하는데, 가끔 보면 악플이 있긴 하죠. 주변 사람들이 그 정도면 없는 수준이라고 하더라고요. 대중이 저를 좋게 봐주시는 이유는 아무래도 미자 덕분인 것 같아요. 옆집 언니같이 친근하잖아요. ‘또 오해영’, ‘이번 주 아내가 바람을 핍니다’ 등의 캐릭터도 그 연장선에 있죠. 주변에 아는 사람과 저를 겹쳐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나이, 숫자보다 중요한 건
올해 중년 여성의 애환을 그린 뮤지컬 ‘다시, 봄’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어요.
제가 배우 중에선 막내지만,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어요. 그리고 오래전부터 뮤지컬 작품을 워낙 하고 싶었던 터라 출연하게 됐죠. 그동안 여러 걱정에 뮤지컬을 못 했거든요. 실제로 해보니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노래, 춤, 연기 모두 박자가 딱 맞아야 해요.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극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다행히 훌륭한 배우들 덕분에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다음 작품에서는 실력이 늘어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죠?
그렇다면 스스로 중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50대라는 나이로 보면 중년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중년이라서 ‘다시, 봄’에 출연한 것도 아니었죠. 젊었을 때 엄마 연기를 한 적도 많고, 지금 갑자기 교복을 입고 연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원래 배우는 나이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역할을 연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같아요.
나이는 숫자라고 생각하고 그저 받아들일 뿐이죠. 한해 한해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점점 건강관리의 필요성을 느껴요. 몸이 무겁지 않아야 활동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식사를 건강하게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해야죠. 스스로 나를 칭찬해주려고 합니다. 50대는 지금까지 잘 살아왔지만 무엇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잖아요. 그러한 생각을 떨쳐내고 나만의 삶을 살고자 합니다. 동년배들에게 이러한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꼭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삶의 목표와 지향점이 궁금합니다.
요즘 저의 가장 큰 바람은 영화와 드라마 시장이 예전처럼 회복되는 거예요. 예술을 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관심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가족과 친구들을 자주 보려고 합니다. 당연히 내 옆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수록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껴요. 삶이란 나뿐만 아니라 주변도 챙기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Bravo Question - 나에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송민우 프리랜서)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연인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애, 친구와의 우정 등 다양한 사랑이 존재하죠. 사랑이란 혼자 할 수 없고, 관계에서 파생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관계에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따르죠. 돌이켜 보면 선후배·동료 배우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스태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받은 것들에 대해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