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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가꿨더니 마음에도 싹이 텄네

기사입력 2020-10-02 08:00

[플랜테리어로 마음의 근육을 심다] PART2. 마음을 치유하는 홈가드닝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 가사노동으로 반복되는 하루. 아이 셋을 키우는 한 주부의 일상이다. 한때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못해 우울증까지 겪었던 그녀. 기분 전환 겸 수강해본 ‘홈가드닝’ 수업이 인생을 바꿀 줄 누가 알았을까. 맨손으로 흙을 만지는 순간 매력에 푹 빠졌다는 그녀는 1년 만에 50여 개 식물로 집을 가꾸는 ‘플랜테리어 마니아’가 됐다. 이제는 더 나아가 관련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는 주부 정지예(47)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온 가족이 생활하는 거실. TV를 설치하지 않아 가구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온 가족이 생활하는 거실. TV를 설치하지 않아 가구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홈가드닝 수업으로 펼쳐진 초록빛 인생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한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 안 곳곳에서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는 식물들이 반긴다. 성인 키 정도 되는 길쭉한 키다리 식물부터 손바닥 크기의 ‘초미니’ 식물까지 종류도 제각각이다. 이 모든 생명을 돌보는 식물의 어머니(?)는 주부 정지예 씨. 가리키는 식물마다 생소한 이름을 줄줄 읊는 정 씨의 모습에서 프로의 향기가 느껴졌다. 식물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됐단다. 지난해 봄,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동네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아이를 낳고 개인 시간 하나 없이 살다 보니 우울증이 도졌어요. 답답한 마음에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사를 왔지만, 그것도 잠시더라고요. 결국 생활은 집 안에서 하는 거니까요. 그러다 ‘홈가드닝’ 클래스를 듣게 됐는데, 그런 기분 아세요? 공이 바닥을 치고 튀어오르는 것처럼 벅찬 느낌이요. 텃밭을 가꾸고 흙을 만지는데 딱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거실 선반 위 테라리엄을 배치해 인테리어 효과를 더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거실 선반 위 테라리엄을 배치해 인테리어 효과를 더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은 정 씨는 그날 이후 집 안에 새 식구를 하나둘 들였다. 그 개수가 점점 많아져 집 안에서 차지하는 부피가 커질 무렵, 공간과의 조화를 자연스레 고민하기 시작했다. 식물과 어울리는 화분을 고르고, 그에 걸맞은 아기자기한 소품을 배치했다. 우울한 기운이 감돌던 집 안은 한 폭의 정원처럼 변해갔다. 그와 동시에 건조하게 말라 있던 정 씨의 마음속에도 푸릇한 새싹이 돋았다.

“말 그대로 치유가 됐어요. 겨울에 키우던 식물 잎이 다 떨어져 가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뿌리가 살아 있더라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심었죠. 봄부터 서서히 잎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여름이 되니까 앙상하던 애가 숲처럼 무성해지는 거예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살아내는 식물을 보면서 저 역시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원예용품과 미니 온실 등으로 주변을 꾸며 분위기를 한층 더 싱그럽게 만들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원예용품과 미니 온실 등으로 주변을 꾸며 분위기를 한층 더 싱그럽게 만들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식물을 키울수록 새로 알고 싶은 점이 많아진다는 정 씨는 지난해 가을 심도 있는 공부를 위해 경기도에서 주관하는 조경가든대학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식물과 정원 관리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과 실습을 배우는 과정으로, 경기도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다. 현재는 방 한 칸짜리 작업실을 마련해 식물과 관련한 작은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취미로 시작한 활동이 일자리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적은 비용으로 몇 배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게 플랜테리어 같아요. 추운 계절에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장점이고요. 저도 그렇지만 남편도 취미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식물 키우기 시작한 뒤로 많이 즐거워해요. 좋아해주는 덕분에 분갈이는 남편한테 다 시켜요.(웃음) 같은 취미를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죠.”


▲거꾸로 자라는 행잉플랜트 크리소카디움을 램프에 매달아 유니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거꾸로 자라는 행잉플랜트 크리소카디움을 램프에 매달아 유니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작은 변화만으로 새롭고 산뜻하게

정 씨의 집은 남동향으로 어두운 편은 아니지만, 거실에 베란다가 없고 창밖에 햇빛을 가리는 어닝이 설치되어 있어 식물을 키우기에 최적의 공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식물이 사계절 내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분양하기 전 식물이 거주하는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먼저 확인하기 때문. 관리하는 식물의 수를 50여 개 이상 늘리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 장식품이 아닌 살아 있는 생명인 만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기르겠다는 주의다.

“무리하는 순간 취미가 아니라 노동이 될 수도 있어요. 본인도 스트레스를 받을 거고, 관리에 점점 소홀해지겠죠. 그러면 식물도 힘들거든요.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거니까 욕심내서 들여오고 싶지는 않아요. 물론 100 개가 넘는 식물도 능숙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분들은 더 많이 키워도 되죠.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요. 저는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아요.”


▲욕실 세면대 옆 필레아페페. 화분 받침을 화장품 트레이로 활용했고, 그 위에 마사토와 이끼를 깔아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더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욕실 세면대 옆 필레아페페. 화분 받침을 화장품 트레이로 활용했고, 그 위에 마사토와 이끼를 깔아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더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식물을 자주 분양하지도 않고, 인테리어에 큰 비용을 들이는 것도 아니지만 정 씨의 공간은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시시각각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작은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다는 그녀의 비결은 ‘있던 것’ 활용하기. 정 씨는 키우던 식물도 하나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재탄생시킨다. 분갈이를 하다 떨어진 작은 필레아페페 줄기를 휑한 욕실 세면대 옆에 올려두거나, 삼겹살을 구워먹고 남은 로즈마리를 유리병에 담아 놓는 식이다.

가든 소품도 집 안에 굴러다니던 것을 색다르게 이용하는 편이다. 사용하지 않는 수납장 한 칸은 세로로 세워 작업실의 화분대로, 화분 받침은 핸드 워시 등 욕실 용품과 소형 식물을 놓을 수 있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한다. 몸집이 커졌지만 분갈이를 해주기 애매한 식물은 화분째 철제 바스켓이나 유리 용기에 옮겨 담는다. 시중에 판매하는 소품을 마구잡이로 배치하는 대신 집에 있는 물건을 활용하면 한층 더 자연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


▲이케아에서 구매한 세면대(왼쪽)를 화분대로 활용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이케아에서 구매한 세면대(왼쪽)를 화분대로 활용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이케아나 H&M 홈등 대중적인 브랜드 제품을 구매할 때도 있다.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실용성이 높다는 것이 그 이유. 정 씨는 이케아에서 산 싱크대를 거실 화분대로 사용한다. 분갈이용으로 구매했으나 예상보다 높고 넓어서 화분을 올려두기에 더 알맞았다고. 정 씨의 빛나는 응용력은 거실을 한층 더 이색적으로 만들었다. 물이 나오지 않는 싱크대와 식물의 조합, 꽤 멋스럽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녀만의 독특한 영감은 어디에서 나올까? 정 씨는 아마존 등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구매한 원서를 보며 주로 아이디어를 얻는다. 국내 서적도 좋지만, 조경 역사가 깊은 서양 서적을 참고하면 훨씬 넓은 안목을 기를 수 있다는 것. 영어를 읽지 못해도 책 속에 실린 사진을 보며 응용해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정 씨는 여러 서적 중에서도 ‘어반 정글’(Urban Jungle), ‘에버그린’(Evergreen)을 추천했다.


▲정지예 씨의 작업실. 작업실 내부 다용도실은 커튼으로 가리고 행잉플랜트를 달았다. 이케아에서 구매한 페그보드에 좋아하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H&M 화분(오른쪽)으로 스타일링을 더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정지예 씨의 작업실. 작업실 내부 다용도실은 커튼으로 가리고 행잉플랜트를 달았다. 이케아에서 구매한 페그보드에 좋아하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H&M 화분(오른쪽)으로 스타일링을 더했다.(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우연한 기회로 ‘인생 취미’를 찾은 정 씨처럼, 브라보 독자들도 작은 계기부터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코로나블루’로 갑갑하고 울적한 마음이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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