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나만의 낙원을 꿈꾸었다, 그러나…

기사입력 2020-09-11 08:00

[박원식이 만난 귀촌 사람들] 충북 보은군 산외면으로 귀농한 김열홍 씨

안녕, 시골아, 드디어 내가 너에게 왔노라! 그에겐 그렇게 흐뭇한 인사말을 읊을 겨를이 없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사업을 하다 귀농한 김열홍(60) 씨. 그의 귀는 얇은 귀였나? 그는 “농지며 집이며 거저 쓸 수 있으니 몸만 오라”는 지인의 달짝지근한 권유를 받고 설레어 달려 내려간 참이었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니 상황이 영 달랐단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믿었던 사람에게 된통 당한 셈이다. 그러나 열홍 씨는 부아를 가라앉히고 얌전히 눌러앉기로 작정했다. 속인 건 지인이지만 홀린 건 나 자신이지 않은가, 내가 나에게 속은 꼴이지 않은가, 남 탓할 것 없다! 그냥 그렇게 여기고 후루룩 상황을 넘어서기로 했던 모양이다.

약간 요상한 귀농 시발이었다. 진즉부터 시골살이에 뜻을 두었기에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왕 내친김에 한바탕 열심히 뛰어보기로 다짐하자 새삼 흥미가 동했던가보다. 한 방 얻어맞고서야 귀농에 본격적인 발동이 걸렸던 거다. 이렇게 뒤늦게 엄청 진지해진 열홍 씨, 일단 도시에 있는 부동산을 싹 처분해 7억 원쯤의 귀농자금을 만들었다. 그건 그가 믿을 만한 가장 유력한 ‘실탄’이었다.

돈을 일컬어 ‘요물’이라고도 하고 ‘웬수’라고도 하지만, 그는 비장하게도 ‘실탄’이라 부른다. 내가 쥔 자금이 떨어지면 성벽을 넘어 거침없이 돌진해오는 세파의 기총소사에 대응할 길이 없다는 인식에서다. 그래 실없이 실탄을 낭비하지 않고 가급적 효율적이고도 참신한 전투에 임하기로 결심한 병정처럼, 열홍 씨는 최대치의 슬기를 발휘해 자금을 잘 운용하기로 하고 귀농열차를 집어탔던 것이다.

그 결과는? 귀농 10여 년이 흘렀으나 아직은 알 수 없다. 그건 그의 목숨이 다하는 날에 따져볼 사안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귀농생활에 인생의 모든 것을 쏟기로 결정했으며, 실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다고 자부하기 전에 도출되는 대차대조표는 잠정적인 결과물에 해당하거나 무의미한 문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생이란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3도 화상을 입으며, 또는 자주 뒤집어지며 익어가는 빈대떡과 이웃사촌. 용을 쓰더라도 엎치락뒤치락, 삶이란 굴곡과 파란으로 점철되는 꽤나 허무맹랑한 레이스라는 걸 그도 잘 알지 않겠는가. 일희일비하지 않고 갈 때까지 가보리라! 이게 열홍 씨의 생각인 것 같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의 추세라는 게 있을 텐데, 한마디로 오랫동안 주로 죽을 쑤었다.

“귀농에 만족하느냐고 내게 묻지 마라. 그 답을 나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웃음) 때론 만족스럽다가도 때론 힘겨워 불만스럽다. 이곳에 자리 잡은 게 11년 전인데 5~6년 동안은 수익이 아예 나질 않더라고. 해마다 적자였지. 그럼에도 투자를 계속해왔다. 규모를 키우는 게 난관을 돌파할 길이라 판단하고서였다. 그러면서 ‘실탄’을 꽤나 허비했다. 다행스럽게도 4~5년 전부터는 ‘똔똔’이거나 약간의 흑자가 나고 있다.”

그는 처음 한동안 고추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완전한 실패를 보고 2000평 규모의 사과농장을 조성해 공을 쏟기 시작했다. 10여 마리에 불과했던 한우도 70여 마리로 늘려 사육하고 있다. 실로 모처럼 쏠쏠한 흑자를 본 작년의 경우, 사과로 올린 매출액이 5000만 원 정도. 이 가운데 60%쯤이 순수익이란다. 한우 사육에서도 비로소 자금회전이 시작되고 있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뭐 하나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자칫 적자를 보는 일에 도통하기 십상인 게 농업이다. 그렇다고 꼭 그러라는 법이 있겠나. 매사가 썩 이상하게 돌아갔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성난 얼굴로 현실을 돌아보길 거듭했으며, 활로를 찾기 위해 몸과 머리를 아낌없이 써왔던 것 같다. 염소 털처럼 허옇게 쇤 그의 턱수염은 분투의 소산일 게다. 그 결과 서광이 들이쳤나?

“이제 웬만히 자리가 잡혔다고 볼 수 있다. 그간 애환이 많았다. 뭐 하나 생각대로 되는 게 없었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나날들이었지. 공연히 거액의 자금만 날리기도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귀농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내려왔다는 데에 있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준비한 건 오직 자금뿐이었나?

“그렇다. 호밋자루 한 번 손에 쥔 경험이 없는 문외한이 겁 없이 농사에 덤벼든 꼴이었다. 뭐든 잘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거든. 이게 오산이었다. 기술 없이 농사에 뛰어들었으니 노력을 해본들 쉽게 풀릴 일이 아니더라. 뒤늦게 농업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웠다. 1년 과정의 한우대학도 수료했다.”


귀농은 왜 했지? 목적이 뚜렷했다면 사전 준비도 부실하지 않았을 거 같아 묻는 얘기다.

“조용한 시골에 나만의 작은 낙원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낭만적인 꿈이었다. 경치 좋은 곳에 원하는 집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농사 노동으로 떳떳한 시간을 보내고, 가끔 하루 이틀쯤 자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뭐 그런 소박한 기대가 있었으나 아직 낙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사실 인간사에 낙원이 어디 있겠나. 감상적으로 살 일이 아니더라.”


농사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도시를 떠나지 않았겠지. 사업이 괜찮게 돼 가만 있어도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상황이었거든. 그런데 인생에는 돈벌이보다 중한 게 있지 않던가? 내 마음이 흘러가는 곳에 살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이게 좋은 인생이지 않을까. 난 귀농을 통해 한결 나은 삶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귀농보다 귀촌이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텃밭 농사 정도나 하며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귀촌 말이다. 당신은 독신이다. 7억 자금이면 놀면서 슬슬 까먹어도 평생을 살 수 있을 게 아닌가.

“아하. 특정한 직업 없이 지내는 무위도식은 내 적성에 맞지 않다. 일과 맞부딪쳐 뭔가 보람을 끌어낼 게 없는 생활에 무슨 활기가 있겠나, 무슨 재미가 있겠나.”

비록 고행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농업이 지닌 매력과 흥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더라는 얘기로 들린다. 그에겐 피땀 흘려 생산한 사과가 팔리지 않아 숭숭 썰어 소 사료로 주는 식의 환장할 만한 혼선이 잦았다. 그러나 농사는 어디까지나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자유 직종이라는 것, 이상과 자질을 마음껏 실험하고 교정할 수 있는 인생교실이라는 것, 게다가 정년이 없어 무기력한 노년을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등등, 열홍 씨는 농사가 지닌 긍정적 속성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가령 농산물이 안 팔리더라도 남 탓을 할 게 없다. 모든 게 나의 능력, 기술, 전문성의 여부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이지. 그러고 보면 농사란 가장 자립적인 형태의 직업이다.”

그는 ‘모든 게 나의 문제’라는 걸 자주 자신에게 세뇌하며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자기학습의 효과는 커 그를 좀체 실의에 잠기게 하지 않는다. 농사로 맞닥뜨리는 난관이 이를테면 어떤 외부의 흉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으로 한숨과 낙담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는 힘과 깡을 끌어내는 것 같다. 저 잘난 농업정책의 협찬이나 선한 이웃의 과도한 헌신을 기대하는 따위도 그의 본성에 맞지 않아 남세스럽게 여길 따름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진격에 취한 캐터필러

그런데 열홍 씨가 직면한 넘어야 할 산은 농사만은 아니라는 점을 얘기해야겠다. 그의 콩팥은 좀 서러운 콩팥이다. 기능을 상실한 탓에 그는 1주일에 사흘은 신장 투석을 한다. 월, 수, 금, 3일간은 거의 종일 병원에 누워 혈액을 걸러낸다.

“나이 들면 누구나 한두 가지 질병은 다 가지고 산다. 그저 내 복대로, 내 팔자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병원에선 의사에게 맘 편히 투석을 맡기고, 집에선 몸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일에 묻혀 산다.”


동네 이웃들은 당신을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라 칭찬한다.

“무슨 그런 과한 얘기를.(웃음) 남들은 수백 마리의 소도 기르고, 수만 평 규모의 사과밭을 경영하기도 한다. 난 그 반의반도 못 따라가고 있잖은가. 농사일에도 아직 서툴러 사실 그냥 시간만 때우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콩팥에 문제가 생긴 건 언제부터?

“40대 초반에 이상이 왔다. 플라스틱을 다루는 공장을 운영한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래 한동안 일을 놓고 쉬었으나 결국은 신장이식을 받게 되었지.”


공기 좋은 시골에 살며 중한 병을 고친 이들도 있다.

“귀농하자마자 어쩔 수 없이 과도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치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식받은 콩팥을 달고 산 지 12년 만에 완전히 망가지더군. 투석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게 형제 하나가 콩팥을 주겠다고 했으나 사양했다. 나 좋다고 형제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시골에 들어와 병을 고친 사례는 나도 좀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병은 좋아질 병이 아니거든. 계속 끝까지 투석해야 하고 식이요법도 충실해야 한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그런 건강 상태로 열심히 농사를 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 ‘강철 인간’이라 불러도 무방하겠군.

“난 어릴 때 지금보다 훨씬 지독한 고난을 겪었다. 먹을 게 없어 사나흘씩 굶기를 자주 했고, 심지어 20일간 물만 마시며 견디기도 했지. 아마 그런 경험들이 나를 꽤나 강하게 만들고 독립적인 근성을 길러준 게 아닐까. 난 지금도 알몸으로 어디에 던져져도 밥을 벌어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웃음)”


자신을 완벽하게 통치하는 인간 유형? 열홍 씨는 차돌처럼 야무지다. 불편한 몸 상태에 희한하게도 거의 무심하거나 태연하다. 간혹 표정이 딱딱해지기도 하지만, 그건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사람의 버릇일망정 병세에 상심하는 징후로는 보이지 않는다. 피로, 두통, 요통 등 신장투석에 따르는 불편이 자심할 터이지만, “난 그런 거 몰라!” 하는 투로 유유한 게 아닌가.

그는 신장 투석을 시작하며 유능한 일손 하나를 고용했다. 축사며 과수원을 혼자 건사하기엔 역부족이라 동원한 인력이다. 도시에서 내려온 이 일손은 귀농 지망생으로 향후의 귀농을 위한 예행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 셈이다. 열홍 씨로선 신통치 않은 재무구조에 월급이 나가 부담이야 되겠지만 한숨 돌릴 수 있었을 게다. 이렇게 그는 동갑내기 직원과 둘이 5년째 동거하며 일을 한다. 오직 끔벅거리는 눈으로 언어를 발하는 소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사과나무들이 간혹 청원하는 민원을 접수해 해결해준다. 그 와중에 그가 남몰래 해온 일이 또 하나 있다. 과수 농가들에게 쓸모가 많을 그 뭔가 새로운 도구들의 개발에 열을 내왔던 것인데 2017년, 마침내 ‘가지 유인(誘引) 철 클립’을 발명해 특허를 받았다.

“과수 농사에서 가지 유인 작업은 가장 중요한 과정의 하나다. 가지들을 적절히 늘어뜨리거나 구부려줘야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지. 그동안 흔히들 콘크리트로 만든 추(錐)나 플라스틱 물병을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아 유인을 해줬다. 내가 만든 ‘철 클립’은 획기적으로 간소하고 효율적이다. 현재 농가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주민욱 프리랜서 minwook19@hanmail.net)


창의(創意)의 산물이구나.

“도시에서의 오랜 전공이 기계설비였다. 농사를 짓더라도 전공을 살려 만든 장비나 기구를 도입하자는 생각이었지. 내겐 다종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으며 나름 연구를 해왔다. ‘가지 유인 철 클립’은 개발이 실현된 한 가지일 뿐이다.”


‘철 클립’ 매출액은 어느 정도?

“출시 이후 약 30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제 막 알려지고 있는 과정이라 차후의 매출 상승을 예감한다. 소비자들과 만나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특허를 내고 홍보를 하는 등 그간 1억 정도를 투자했지만 충분히 회수가 가능할 거라 본다.”


당신의 귀농 역시 결국은 안정적인 행복을 누리기 위한 방편이겠지?

“소들의 순한 눈망울, 새벽이슬을 매단 사과나무, 눈부신 아침 햇살, 이런 것들이 주는 짜릿한 전율이 행복의 감정일까. 한 사람의 월급을 주고, 나 먹고살 형편은 되고, 이 역시 행복이겠지. 그러나 행복은 순간에 왔다가 순간에 사라진다는 걸 안다. 과욕 없이 시간을 소중하게 쓰고 싶다. 몸 아픈 사람들에겐 시간이 한결 귀하다. 시간을 선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난 그쯤의 인간이길 바란다.”


비록 시련이 많지만, 지금 살아가는 방식,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홍 씨는 별 유감이 없다. 아까운 시간을 선용해 현재보다 더 나아가고자 하는 갈증. 이건 뜨거운 목마름이다. 그렇기에 건강상의 한계나 노동의 과중함마저 그는 곧잘 무시하는 것 같다. 진격에 취한 캐터필러처럼.


김열홍 씨가 주는 Tip

•귀농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자. 기술 습득 없이 농업에 나섰다간 십중팔구 실패하기 때문이다. 시골 농가에 일꾼으로 1~2년쯤 취직해 살며 농사를 익힌 뒤 귀농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똑똑한 인재다.

•집부터 먼저 잘 지을 거 없다. 자금을 아껴 써야 살아남는다. 근사한 집을 지었더라도 나중에 팔 일이 생겼을 경우엔 낭패를 볼 수 있다. 좀체 팔리지 않는 게 전원주택이니까.

•깊은 산골의 집성촌으로 귀농하면 텃세에 시달릴 수 있다.

•귀농을 하면 일단 베풀며 어수룩하게 처신하라. 술자리, 회의자리 등에 적극 동참해 사교를 하라. 잘만 사귀면 원주민들이 결국엔 귀농인의 조력자가 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기사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삶이 곧 힙합” 춤주머니 아저씨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땀으로 지병 없애고, 복근 남겼죠”
  • 패션부터 여행까지… 소비시장 주도하는 욜드족
  • [브라보가 만난 욜드족] “커피 내리는 현장 남고자 승진도 마다했죠”

브라보 추천기사

브라보 테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