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탐방]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집을 입고 기억을 걷다

한국현대미술 작가 서도호의 예술세계
집이란 무엇일까.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일까, 오래전 떠나온 곳일까. 아니면 그곳에서 함께했던 사람과 기억까지 포함해야 비로소 ‘집’이 되는 걸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서도호’ 개인전은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서울에서 성장해 뉴욕과 런던 등 여러 지역을 오가며 활동해온 서도호는 지난 30여 년 동안 집과 이동, 기억과 정체성,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는 초기작부터 대표작, 최근 프로젝트까지 드로잉·조각·영상·설치 등 500여 점을 통해 그의 작업 세계를 폭넓게 보여준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살아온 집의 복도, 문과 방 등의 공간 요소를 반투명한 천으로 옮겨온 작업이다. 서울·뉴욕·런던·베를린 등 여러 도시의 공간이 한 전시장 안에서 이어지고 겹쳐진다. 서도호는 ‘집’을 고정된 장소가 아닌 기억과 이동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공간으로 해석했다.
작가에게 가족이 생긴 뒤에는 ‘부성’이라는 좀 더 개인적인 경험도 작업에 스며들었다. 가족이 입던 옷을 다시 몸에 걸치며 마치 서로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거대한 설치작품과는 또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특히 MMCA 스튜디오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업들은 보호하고 사랑하면서도 언젠가는 놓아줘야 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관람할 때는 전시실 밖도 놓치지 말자. 5전시실을 나오면 여러 도시의 공간을 연결한 22m 길이의 ‘둥지/들’을 직접 걸어볼 수 있다. 그리고 2층 MMCA 스튜디오까지 올라가 보자. 서도호의 가족과 부성에 관한 사적이고 내밀한 작업을 보고 나면 앞서 만난 ‘집’이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였음을 느끼게 된다.
온라인 예매가 빠르게 매진될 만큼 화제가 된 전시지만, 화려한 설치보다 오래 남는 것은 의외로 근원적인 질문이다. 수많은 집을 지나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집이란 무엇이었을까. 전시장을 나와서도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 소개
서도호(1962년 서울 출생)는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간과 기억, 이동과 정체성,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탐구해 온 작가다. 특히 투명한 천으로 집과 건축 공간을 재현하는 작업을 통해 장소와 기억, 거주와 이동의 의미를 독창적으로 풀어내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한 이후 세계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집’을 기억과 관계, 이동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확장해 해석해 왔다.
주요 작품

‘쫓아오는 집’, 2023, STPI 수제 종이에 실
서도호는 종이 위에 선을 그리는 대신 실을 종이 속에 삽입해 드로잉을 만든다. 집의 형상은 실이라는 촉각적인 선을 만나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넘나든다. 떠나온 뒤에도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따라오는 ‘집’처럼, 그의 작업에서 집은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몸과 기억을 따라 이동한다.

‘러빙/러빙(Rubbing/Loving) : 서울 집’, 2013~2022, 닥지에 흑연, 스테인리스 철사, LED 조명
서도호가 어린 시절 살았던 성북동 한옥의 벽과 문, 창호, 기둥에 종이를 밀착한 뒤 흑연으로 문질러 집 전체를 떠낸 실제 크기의 작품이다. 한지를 거의 1년 동안 붙인 후 떼어냈으며, 작업 과정 영상도 시청할 수 있다. ‘문지르다(Rubbing)’와 ‘사랑하다(Loving)’의 닮은 발음처럼, 작가는 집의 표면을 쓰다듬으며 공간을 기억하고 기록했다. ‘아버지와 자신의 자화상’이라고 표현한 이 집에는 가족과의 시간이 켜켜이 새겨져 있다.

시드 뱅크
3전시실로 들어가기 전 복도의 시드 뱅크에는 유년기의 조각과 드로잉, 대학 시절 작업과 앨범 디자인 등 본격적인 작가 활동 이전의 다양한 흔적이 모여 있다. 지금의 서도호를 만든 ‘씨앗’을 들여다보는 공간으로, 훗날 집과 이동, 기억과 관계로 발전할 관심사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싹트고 있었음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앨범과 유재하 추모 앨범 재킷 디자인도 눈에 띈다. 故 전태관·유재하는 작가의 초·중학교 동창으로 그들과 교류하며 음악과 시각예술의 접점을 넓혀갔다.

‘사랑의 기억(래코드 협업)’, 2026, 모직·나일론 의류
수묵 추상의 거장인 아버지 서세옥이 입던 코트 안쪽에 가족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를 달고, 그 안에 가족과 관련된 추억의 사물을 담은 신작이다. 몸을 감싸는 옷은 작은 ‘집’이 되고, 주머니는 사랑과 기억을 가장 가까이 품는 공간이 된다. 공간과 이동을 이야기하던 서도호의 시선이 가족과 부성애라는 가장 사적인 경험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멀리서는 하나의 거대한 패턴처럼 보이는 벽면 ‘Who am we?’에는 작가의 고교 졸업 앨범 속 수많은 얼굴이 숨어 있다. 그 아래 ‘바닥’에는 약 18만 개의 작은 PVC 인물들이 유리판을 함께 떠받치고, 관람객은 그 위를 걷는다. 과연 ‘나’라는 한 사람은 어디까지 독립된 존재일까. 두 작품은 개인과 집단, 그리고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의 관계를 질문한다.
‘서도호’ 전시 정보기간 2027년 2월 9일까지
관람 시간 월·화·목·금·일 : 10:00~18:00 / 수·토 : 야간 개장 10:00~21:00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관람 요금 8000원(65세 이상 무료)
사전 온라인 예매 권장, 현장 관람권은 당일 회차별 선착순 판매
전시 해설 매일 12시·14시·16시(선착순 30명 무료)
전시실 내 QR코드로 오디오 가이드(무료)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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