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으로 채운 해외 한달살기] 오래 배우고 제대로 말하는 법

영어를 오래 배웠어도 외국인 앞에만 서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분명 아는 단어인데도 막상 말하려면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한다. 그럴 때마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굳었나”라며 스스로를 탓하기 쉽다. 시니어 영어 학습의 가장 큰 장벽은 나이도, 기억력도 아니라는데, 왜 한마디도 선뜻 내뱉지 못하는 걸까. 10년 넘게 시니어 영어 학습자를 가르쳐온 장수경 꽃청춘영어 대표를 만나 설명을 들어봤다.
시니어의 말문이 막힌 이유
젊은 세대와 시니어는 영어를 배우는 이유부터 다르다. 10~20대가 진학이나 취업, 시험 점수를 위해 영어를 ‘공부’한다면 시니어에게 영어는 새로운 사람과 세상을 만나는 통로에 가깝다. 해외에 사는 자녀와 자유롭게 대화하고 싶거나, 훌쩍 커버린 손주와 영어로 이야기 나누고 싶어 시작하는 이들이 많다. 가족여행에서 나만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던 순간이 답답해 배움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문제는 상당수 시니어가 학창 시절 영어를 ‘눈으로 읽고 머리로 해석하는 과목’으로 배웠다는 점이다. 문법과 독해는 익숙하지만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듣고 말하는 훈련은 거의 해보지 않은 데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 만에 영어를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장수경 대표는 시니어의 말문이 막히는 이유에 대해 “알파벳이나 기초 단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영어를 입 밖으로 꺼내본 경험 부족”이라고 진단했다. 말이 바로 나오지 않으면 기억력 저하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이는 생각과 입의 속도가 아직 맞지 않는 자연스러운 적응 과정이다. 실제로 사용할 만한 문장을 여러 차례 소리 내어 말하다 보면 반응 속도는 조금씩 빨라진다. 오히려 시니어에게는 젊은 학습자가 갖기 어려운 강점이 있다. 삶의 경험과 연결해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 스스로 선택한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힘이 있다.
장 대표는 시니어 학습자의 가장 큰 무기는 연륜에서 나오는 끈기라며 “누가 시켜서 시작한 공부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오래 이어간다”고 이야기했다. 외국어 학습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나이라는 숫자보다, 낯선 것을 계속 시도하고 반복하는 태도라는 설명이다.
눈으로 읽고 이해하는 데는 익숙해도, 그 문장을 직접 입 밖으로 뱉어본 적 없는 학습자에게 빠른 프리토킹을 요구하는 수업은 오히려 장벽이 된다.
“처음 기관의 문을 두드려 시작할 때는 ‘틀려도 괜찮은 분위기’인지 눈여겨보세요. 그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고 나면, 굳게 닫혀 있던 입이 비로소 열리기 시작할 테니까요.”

단어장 대신 짧은 문장을 소리 내 반복해야
영어 말문을 트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습관은 단어와 문장을 여러 번 쓰며 외우는 방식이다. 시험을 준비할 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필요한 순간 입으로 말하는 능력과는 거리가 있다.
효과적인 방법은 문장의 기본 뼈대를 먼저 입에 익힌 뒤, 필요한 단어만 바꿔 넣는 것이다. “Do you have any~?”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소리 내어 말한 다음, 빈자리에 ‘water’나 ‘time’처럼 자신이 실제로 쓸 법한 단어를 넣어보는 식이다. 문장 전체를 새로 조립하려 애쓰지 않고, 익숙한 구조에 단어 하나만 갈아 끼우면 되니 부담이 훨씬 적다. 문법을 분석하거나 우리말을 완벽히 번역하려 하면 오히려 말의 속도가 늦어진다.
대화문을 연습할 때도 연습장에 단어를 반복해 쓰는 대신, 대화가 벌어지는 장면을 떠올리며 대본을 큰 소리로 읽어보는 낭독이 효과적이다. 식당에서 주문하는 문장이라면 실제 손님이 된 것처럼 메뉴를 고르고, 길을 묻는 표현이라면 낯선 거리에서 행인에게 질문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문장을 구체적인 상황과 연결하면, 단순히 글자를 외울 때보다 실제로 꺼내 쓰기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발음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도 없다. 영어는 정확한 발음을 평가받는 언어가 아니라 뜻을 전달하는 도구다. 상대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말하고 표정과 손짓을 함께 쓰면 소통은 충분히 가능하다. 학습 시간도 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 일정한 시간에 공부하고, 그사이 짧게 입으로 복습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건강관리와 가족 일정, 다른 취미까지 포기하며 영어에 매달리면 쉽게 지쳐 중단하기 쉽다. 머리가 아니라 입과 몸이 문장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오래가는 핵심이다.
‘빨리 잘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말문을 닫게 한다
장 대표가 그간 시니어 학습자들을 만나면서 확인한 장벽은 ‘영어’ 자체보다 조급함과 자책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영어가 몇 달 만에 유창해지길 기대했다가 생각만큼 말이 나오지 않으면 ‘역시 나이 들어서 안 된다’고 결론 내리더라고요. 또 함께 배우는 사람이 자신보다 빨리 대답하면 위축되기도 하고요. 30년 동안 영어로 말하지 않은 사람이 3개월 만에 막힘없이 대화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죠.”
그가 추천하는 영어 학습의 성공 비결 첫 번째는 정해진 학습 시간을 빠뜨리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다. 한 번에 많은 것을 외우고 며칠 쉬는 것보다, 적은 양이라도 정기적으로 반복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틀리게 말했을 때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참 머뭇거리더라도 끝까지 문장을 말해보고, 상대가 알아들었다면 그것으로 우선 성공이라 여기는 태도 역시 필요하다. 틀리지 않으려는 학습자는 알고 있는 표현만 반복하지만, 틀려도 말하는 학습자는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계속 넓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젊은 학습자와 함께 공부하는 자리라면 비교의 기준을 바꿔보는 것이다. 젊은 사람은 단어를 빨리 떠올리고 문장을 빠르게 말할 수 있지만, 시니어에게는 오랜 직업 경험과 가족 이야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말의 속도는 느려도 대화에 담을 내용은 훨씬 풍부하다. 젊은 학습자를 경쟁자가 아니라 자녀나 조카 또래의 대화 상대로 바라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한 번 더 말해보기
장 대표는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잡을 필요는 없다”면서 “‘오늘 수업에서 내 의견을 말해본다’처럼 작고 구체적인 목표가 적당하다”고 강조했다. “I think~”, “In my case~”처럼 자신의 생각을 꺼낼 수 있는 문장 하나를 준비해 짧게라도 말해보고, 말한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성취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언어가 부족할수록 비언어적 소통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상대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I see”, “Really?” 같은 짧은 반응을 건네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복습은 새로운 내용을 계속 늘리기보다 잊을 만할 때쯤 다시 소리 내어 말해보는 방식이 좋다. 3주 동안 새 표현을 배웠다면 4주째에는 진도를 멈추고 그동안 익힌 문장을 상황별로 꺼내본다. 일상 속에서 영어를 만날 기회를 조금씩 늘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카페에서 주문해보거나, 거리에서 우연히 들은 단어를 저녁에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혼자 하기 막막하다면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할 사람을 정하거나, 화상영어 모임처럼 ‘말할 기회’가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장수경 대표는 시니어 영어 학습의 목표는“‘원어민처럼 말하기가 아니라 어제보다 한 문장을 더 입 밖으로 꺼내기”라고 밝혔다. 틀릴 가능성을 감수하고 먼저 입을 여는 순간, 영어는 비로소 자신의 언어가 된다. 지금이 다시 시작하기에 가장 이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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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말 장수경 꽃청춘영어 대표유아 영어교육 전문가로 일하다가 2015년 시니어 영어교육의 필요성을 깨닫고 50대 이상 시니어 맞춤 영어 프로그램인 ‘꽃청춘영어’를 론칭했다. 기초 발화 중심의 회화 수업과 단계별 교재, 커리큘럼까지 직접 개발했고, 현재는 전문 지도사 자격증 과정까지 개설해 시니어 학습자들을 위한 시장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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