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로 ‘학습’한 노인 세대의 모습은 사실일까?

출근 시간,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안. 경로우대 무료 이용을 둘러싼 논쟁은 세대 갈등이 드러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3월 24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중동발 에너지 위기에 따른 교통 수요 분산 대책을 논의하던 중, “출퇴근 시간에 노인들의 대중교통 무료 이용을 제한하는 방법을 연구해보라”고 말했다.
발언 이후 관련 보도와 댓글이 쏟아졌고, 논쟁은 제도 논의를 넘어 특정 집단을 향한 감정으로 번졌다. 출근길의 불편은 어느 순간 ‘노인 문제’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노인혐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혼잡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어느 순간 ‘사람의 문제’로 바뀌었다.
대중교통의 공간은 나눌수록 줄어드는 자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구조적 원인보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먼저 문제로 지목하기 쉽다. 국무회의와 비슷한 시기, “출퇴근 시간의 9호선 급행 지하철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SNS 글이 화제가 됐다. 어린아이를 향한 이 발언은 다른 세대, 특히 약자를 향할 때 더욱 쉽게 감정을 노출하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노인에게 어떤 프레임을 씌우고 있나
이러한 전환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노년학’ 제46권 2호에 실린 최보람·민소영·정문식의 ‘빅데이터를 활용한 노인혐오 뉴스 분석: 토픽모델링을 중심으로’ 연구는 1998년부터 2024년까지 네이버 뉴스 3만3727건을 분석해 노인을 둘러싼 담론을 10개의 토픽으로 도출했다.
그중 하나가 ‘이중의 시선, 노인 보호/노인 부담’이다. 노인은 보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부담의 대상으로 반복 호명되며, 이 외에도 ‘경쟁자, 청년 vs 노년’, ‘비용 프레임’, ‘조롱의 대상’, ‘가족 내 소외’ 등의 토픽이 함께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이 프레임들이 고정된 인식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연금이나 재정 논의에서는 ‘부담’ 프레임이, 일상적 접촉에서는 ‘조롱’이나 ‘경쟁’ 프레임이 강화된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처럼 즉각적인 불편이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부담’과 ‘경쟁’의 프레임이 빠르게 전면에 올라온다. 노인은 개인이 아니라 ‘불편을 유발하는 집단’으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는 접촉의 방식이다. 핵가족화와 개인화가 진행되며 우리는 다른 세대를 직접 경험하기보다, 뉴스 제목과 댓글, 짧은 영상 등을 통해 먼저 만난다. 이미 형성된 이미지 위에서 실제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접촉은 이해가 아니라 기존 인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쉽다.
‘고령친화환경’도 관계가 없으면 소용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식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같은 학술지에 실린 정순둘·박민선·김신희의 ‘고령친화환경이 노인의 세대연대인식에 미치는 영향’ 연구는 그 경로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 연구는 2025년 1~2월 전국 15개 지역에서 만 65세 이상 600명을 대상으로 대면조사를 실시해 세대 인식 형성 과정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고령친화환경이 조성되어도 노인이 실제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세대교류 경험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사회활동 자체도 세대연대인식을 직접 바꾸지 못했다. 활동이 긍정적인 세대교류 경험으로 연결될 때에만 비로소 인식 변화가 발생했다.
즉, ‘환경 → 사회활동 → 긍정적 세대교류 → 인식’이라는 순차적 경로가 확인된 것이다. 고령친화환경이 세대교류로 직접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 사회활동 역시 단독으로는 인식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점은 중요한 함의다. 결국 인식을 바꾸는 것은 접촉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갈등과 혐오 줄이는 현실적인 해결책은?
문제는 이러한 경험이 일상에서 거의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의 세대 간 접촉은 병원, 복지시설, 돌봄 현장처럼 역할이 비대칭적인 공간에 집중돼 있다. 이 구조에서는 한쪽은 도움을 주고, 다른 한쪽은 받는 관계로 고정된다. 상호성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반면 경험이 교환되는 구조에서는 관계의 성격이 달라진다. 기술을 배우고 가르치거나, 경험을 나누고 협력하는 과정에서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로 인식된다. 이러한 접촉이 반복될 때, 집단 이미지로 소비되던 대상은 구체적인 개인으로 전환된다.
두 연구를 종합하면, 세대 간 관계를 바꾸는 조건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세대가 분리된 공간에 머무는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 노인과 청년이 구분된 시설에만 머무는 구조에서는 접촉 자체가 줄어든다. 둘째, 단순한 공존이 아니라 서로에게 역할이 부여되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교류 경험이 축적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지속되는 관계가 서로를 향한 인식을 바꾼다.
출근길 지하철의 혼잡은 분명 해결해야 할 현실의 구조적 문제다. 그러나 그 불편이 특정 세대를 향한 감정으로 굳어지는 순간, 문제의 본질은 흐려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혜택을 줄이거나 유지하는 선택 이전에, 서로를 어떤 구조 속에서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노인혐오는 갑작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반복된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결과다. 그렇다면 그 반대 역시 설계를 통해 가능하다. 서로를 ‘이미지’가 아니라 ‘경험’으로 만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필요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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