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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선물로 '운젠지옥'

기사입력 2018-09-17 10:32

올여름 일본은 연이은 자연재해로 홍역을 치렀다. 서일본 지역에 그야말로 물 폭탄이 쏟아져 한바탕 난리더니 초대형 태풍으로 오사카공항이 물에 잠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태풍이 지나가자마자 홋카이도에 진도 7의 강진이 몰아쳐 삼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때에 일본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가사키는 안전하겠냐는 눈초리를 뒤로 하고 올해 두 번째 초저가 여행을 감행했다. 나가사키 근방에 있는 운젠지옥이 목적지였다.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다. 제아무리 인간이 준비하고 대비를 철저하게 한다 할지라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위대함은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운젠지옥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1991년, 50만 년 동안 활동해온 거대한 화산이 폭발해 마을을 집어삼켰다. 2500채 가옥이 소실되고 마을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버렸다. 화산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마을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운젠을 인기 있는 온천 여행지로 만들어 놓았다.

▲운젠지옥(최은주 동년기자)
▲운젠지옥(최은주 동년기자)

운젠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인천에서 나가사키까지 1시간, 나가사키공항에서 운젠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아사햐야에서 갈아타야 했다. 나가사키 공항에서 아사하야 터미널까지 1시간, 아사하야에서 운젠까지 1시간 30분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섰는데 운젠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넘었다.

버스가 굽이굽이 산길을 돌다가 동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기사에게 운젠지옥을 순례하려면 어디서 내려야 하냐고 물으려는데, 입에서는 그저 ‘지코쿠(지옥)’라는 외마디만 나왔다. 두 손으로 뽀글뽀글 물이 끓는 형상을 만들어 보이며 지코쿠를 외치자 기사는 웃으면서 그곳 일대 어디서 내려도 된다고 했다. 부리나케 짐을 챙겨 내리면서 ‘지옥’, ‘지옥’을 거듭 외치는 내 모습을 그려보니 웃음이 났다.

운젠지옥은 냄새로 먼저 다가왔다. 버스에서 내리니 진한 유황내가 진동했다. 땅 밑에서 뿜어 나오는 증기와 열기가 일대를 뒤덮고 있었다. 차도건 인도건 틈이 있는 모든 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운젠지옥으로 가는 길을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운젠지옥 산책로(최은주 동년기자)
▲운젠지옥 산책로(최은주 동년기자)

인근 주차장에서 받은 지도를 들고 운젠지옥 순례를 시작하였다. 30여 개의 화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슉슉’ 발밑에서 물이 솟는 소리가 마치 압력솥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와보면 이곳에 왜 지옥온천이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금방 이해가 간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고통으로 가득 찬 지옥엘 간다고 말할 때 떠오르는 바로 그 모습이었다.

펄펄 끓는 물과 땅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달걀이 썩는 것과 같은 진한 유황냄새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옥과 너무나 비슷해 몸서리가 쳐졌다. 그런데 이곳을 진짜 지옥으로 만든 건 약 350년 전 있었던 종교탄압이다.

에도시대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신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펄펄 끓는 물에 산 채로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여 서서히 목숨이 끊어지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운젠지옥이라 불렸다는 설도 전하는데, 야트막한 동산 위에 30여 명의 신자순교비가 있다. 지금까지 들었던 지옥의 소리가 그들의 비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운젠지옥을 걷는 내내 유황 냄새가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깊게 들이마시면 폐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유황내를 깊이 받아들이는 심호흡을 하며 걸었다. 야트막한 언덕길이라 걷는 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척박한 땅에도 나무가 자라고 새가 울었다. 운젠지옥 주변은 가스와 지열 때문에 억새나 철쭉, 적송 등 악조건을 견디면 살아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식물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식물들이 힘겹게 뿌리 내린 그 땅에서 새들이 울고 사람들도 산책을 즐겼다.

▲지열로 익힌 달걀과 운젠의 명물 레몬사이다(최은주 동년기자)
▲지열로 익힌 달걀과 운젠의 명물 레몬사이다(최은주 동년기자)

산책 후에 어여쁜 고양이와 눈맞춤을 하며 지열로 삶은 달걀과 운젠의 명물인 레몬사이다를 마셨다. 운젠지옥은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일지 몰라도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삶의 터전이다.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극복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들은 화산 폭발이라는 대재앙을 축복으로 바꾸어 놓았다. 오바마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산길을 돌아가면서 인간은 왜소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운제지옥이 내게 들려준 값진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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