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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지어드린 새 옷

기사입력 2017-04-27 14:34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가시게 되면 우리는 어떤 옷을 입혀드려야 할까? 물론 수의를 입고 가시지만 때가 되면 갈아입으실 다른 옷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버지께서 당시에 공부만 하던 5남매를 이 세상에 남겨두시고 1976년 엄동설한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으니 올해로 만 41년이 된다. 중국의 천자가 쉬어갔다는 천자봉 아래 명당자리에 아버지를 모셨지만 그동안 산소의 봉분이 무너져 내려앉아 땜질하듯 손을 봐도 소용이 없어 전문업체에 의뢰해 지난 주말에 봉분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잔디만 사서 3형제가 새로 단장을 해보려 했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막내 여동생에게 전문업체에 견적을 의뢰해보라고 했더니 60만원이나 견적이 나와 내심 깜짝 놀랐다. 견적을 받은 막내아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무튼 그런 일을 해보지 않아 전문 업체에 의뢰하기로 하고 계약금 10만원을 먼저 보냈다.

그런데 막상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전문업체가 아니면 힘든 일이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새로 단장된 봉분을 보면서 60만원이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셋째 아우와 서울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점심도 먹지 못하고 함께 작업을 했다. 새로 만들어진 봉분이 너무 예뻐서 배도 고프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새로 옷 한 벌 사서 입혀드리는 기분이 들어 마냥 좋았다. 한편으로는 너무 늦게 해드리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있었다.

오전 8시 반부터 경상도에 사는 여동생 둘(넷째와 막내 동생)도 달려와 함께 작업을 했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아내가 준비해준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인사를 드렸다. 새로운 봉분 앞에서 인사를 드리니 너무 감계가 무량했다. 몸이 안 좋아서 이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한 둘째 아우와 아내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카톡으로 사진을 찍어보냈더니 다리가 아파 집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아내와 아우는 기분이 참 좋단다.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울컥 샘솟듯 솟았다. 울산에서 직장을 다닐 때 필자와 아내는 20년 가까이 성묘를 함께 다녔다. 그때마다 필자가 낫질을 잘 못했는데 시골 일을 좀 해본 아내가 대신 낫질을 해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고마웠다. 그랬던 아내가 다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하니 그 고왔던 색시가 집안일을 너무 해서 건강이 나빠진 것 같아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다.

비석에는 3형제 이름과 손자 재흥이의 이름만 새겨져 있다. 두 누이동생이 그것을 보더니 왜 자신들의 이름이 빠졌냐고 물어와 난처했다. 좀 서운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왜 빠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오래전 일이고 경황이 없었던 때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손자들도 많이 태어났으니 이제 비석도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다음번에는 두 여동생의 이름과 매제들 이름까지 반드시 명기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고마운 마음에 산을 내려오면서 아우들에게 남녘 바다가 조망되는 멋진 찻집에서 차를 샀다. 산소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막내는 매제와 함께 우리 형제들을 맛있는 횟집으로 초대해 저녁식사를 푸짐하게 대접했다. 좋은 동생들을 두어 필자는 정말 행복했다. 특히 예쁘고 착한 두 여동생을 우리에게 곁에 두고 가신 부모님께 새삼스럽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귀갓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머위 대와 향내 나는 나물과 막내 여동생 농장에서 생산한 대추까지 한아름 선물로 받았다. 필자도 두 여동생들에게 앞으로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셋째 아우와 필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족의 행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의 행복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자기 탓으로 돌려야 얻어진다는 이야기였다. 서울은 먼 길이었지만 도란도란 대화를 하면서 오니 지루하지 않았다.

돌아가신 분에게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옷은 봉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봉분이 예쁘고 아름다우면 후손들 기분도 좋아지기 때문일까? 60만원 투자로 아버진 새 옷도 입혀드리고 우리 형제들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시간은 새 옷을 지어 입으신 아버지께서 고마워서 우리 형제들에게 보내주신 감사의 표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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