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옥분과 수다, 남궁옥분 가수다]
백 년이 넘었을 재봉틀!
엄마가 물려받아 쓴 세월~
1923년생이신 엄마의 연세로 볼 때
엄마 손때가 묻은 재봉틀의 나이가
미루어 짐작건대 최소 70년은 됐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엄마 신경균 여사의
손때 묻은 유품이자
제 어린 시절 장난감이기도 했던 손재봉틀….
골동품 시장에서
높은 가격도 아니고
흔히 만날 수 있는 재봉틀이지만
제겐 돈으로는 환산되지 않는 보물이기도 하고
대를 물린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발재봉틀 있는 집이
양손을 쓸 수 있어서 부러웠던 적도 있었고
전기미싱이 나왔을 때
완전히 밀리는 게 아닐까 하면서도 변함없이 사랑했던 재봉틀!
하지만
초저녁 잠 많은 우리 엄마를
잡아두었던 나쁜 녀석!
왼손잡이 우리 엄마를 배려하지 않은 채
오른 쪽에 돌리는 게 있어서
길들이느라 고생하셨을 걸 생각하니 괘씸한 녀석!
수많은 밤
일에 지쳤는데도 옷가지를 고치고 만드느라 쉴 시간까지 빼앗아가며 잡아두었던
인정머리 없는 녀석!
재봉틀 앞에서 꾸벅꾸벅 졸며
쪽잠 자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합니다.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만들어내시던 엄마의 손재주는
고스란히 제가 물려받았지요.
그러하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재봉틀이기도 하답니다.
재봉틀에 대해 떠오르는 희미한 제 첫 기억은
5~6세 무렵입니다.
작은 나무뚜껑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바쁠 때도 언제나 쉬는 손을 제게 주셨던…
혼자 낑낑대는 저를 밀어주셨던 기억!
조금 커서는
엄마 앞에 앉아서 넘어오는 옷감을 잡아서 삐뚤어지는 걸
도와드린 일~
그러다 보니
고추북에
복잡하게 실 꿰는 것도 일찍 터득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저도 가끔 재봉틀을 사용해
인형 옷도 만들어 입히고
운동회 때는 광목으로
덧신을 만들어서 신곤 했답니다.
광목 덧신이라 하니
무슨 임진왜란 때 얘기 같겠지만
아마도 제 또래 분들은 이 같은 추억이 있으시리라!
이렇게
늘
곁에 두고
엄마를 느낄 수 있는
재봉틀은 저도 애용했던지라
제 추억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멀쩡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재봉틀은
일 년에 고작해야
한두 번 돌려주지만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제 차방에서 벌거벗은 채 앉아 빛나는,
우리 엄마 숨결이 담기고
추억이 담긴
남들에겐 그저 고물로
보일지라도
제겐 보물입니다.
엄마는 오늘
재봉틀과 함께 이렇게
제게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