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규의 心冶데이트]
몇 달 전, 어느 술자리에서 그녀와 처음 마주쳤다. “반갑습니다. 윤승희입니다” 하고 인사하는 멋진 중년 여인의 인사에 “아니 그럼 당신이 ‘제비처럼~’의 그 윤승희 씨?” 하며 한량 이봉규의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명색이 나도 TV 출연 꽤나 한 방송인이지만, 이 왕년의 섹시가수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청소년기에 윤승희의 광팬이던 내가 환갑 나이에 그녀를 코앞에서 마주쳤기에 ‘꿈이야 생시야~’하는 기분이었다. 둘째는 내 기억으로 분명 나보다 최소한 5~6세 이상은 나이가 위였던 스타였는데 ‘어찌 이토록 젊고 섹시하나?’ 하는 감탄이었다. 감히 나이를 묻지 않았다. 아니 내가 실망할까봐 일부러 묻지 않았다. 윤승희가 히트할 당시의 시대와 내 나이를 얼추 계산해보니 그녀는 최소한 60대 중후반 정도는 되었다. 그런 여성이 이토록 섹시해 보이다니 나로서는 무척 드문 감정이었다.
1년 8개월의 짧고 굵은 가수활동
특별히 한량 이봉규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 당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남학생에게 윤승희는 최고의 섹시 스타였다. 여배우로는 당시 학생으로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어린 임예진이 청초하고 깜찍한 매력으로 남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윤승희는 피 끓는 청춘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섹시한 누나였다. 그 윤승희와 수차례 만나 얘기를 나눈 뒤에 한 첫 질문이 “그동안 뭐하셨어요?”다. ‘제비처럼’으로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그녀가 홀연히 브라운관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1년 8개월 동안 짧고 굵게 활동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그녀는 곧바로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노래를 하기로 남편과 약속을 했지만 임신하고 애 키우느라 자연스럽게 공백기가 길어졌다. 15년 정도 노래를 듣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노래를 들으면 노래하고 싶어서 튀어 나갈까봐 일부러 노래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를 버릴 정도로 남편이 좋았는지 궁금했다. 결혼과 남편 얘기로 화제를 옮겼다. 친한 언니가 남편을 소개해줬다. 세칭 소개팅으로 몇 번 만나 식사하고 데이트를 하던 중에 남편에게 갑자기 납치 당했다. 키스하면 결혼해야 되는 줄 알았던 당시 문화 때문에 결혼할 수밖에 없었다. 인기 절정의 윤승희가 갑자기 브라운관에서 사라지니까 기자들이 취재하려고 난리가 났었다. 건설업을 해서 재력도 있고 터프한 남편은 기자들에게 술을 사주거나 밥을 사주면서 “윤승희는 내 꺼다!”라며 나쁜 기사를 못 쓰게 설득했다. 지금이야 어림도 없지만 당시 그 정도는 통했던 시절이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생활. 10년 정도 알콩달콩 살다가 남편 사업이 부도가 났다. 이후 자연스럽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유행하는 ‘졸혼’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뭐든지 유행의 첨단을 걷는다”라고 애써 웃으며 안경을 닦는 표정이 복잡해 보인다.
신나게 놀다가 지치면 내게 오라
현재 남편은 부산에서 살고 윤승희는 서울에서 살며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통화한다. 친구 같은 사이다. 남편은 “내가 그동안 실컷 놀면서 할 짓 못할 짓 다하며 살았으니까 너도 신나게 놀다가 지치면 내게 오라!”고 말한다. 그녀의 남편은 이봉규보다 더 한량으로 살았나보다. 윤승희는 “억울하다”며 자신의 인생을 정리한다. “애들 다 키우고 남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니까 어느덧 늙어버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가, 곧바로 “이제는 애인 같은 친구가 필요하다. 괜찮은 노인네 있으면 소개해 달라!”며 애써 차분해진다. 그녀의 외모와 어울리려면 연하의 남성이 맞을 것 같아서 물었더니 “나이는 많아도 마인드가 젊고 코드가 맞으면 된다. 요즘 그런 남자들이 많은데 내 주위에만 없다”고 심각하게 토로한다. 외로운 사람들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어느덧 노년의 나이로 접어든 왕년의 섹시 스타 윤승희에게도 스며든다. ‘졸혼’으로 남편과 헤어져 살지만 그 좋아했던 가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둔 세월이 억울하고 야속해서 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된다. “내 성격이 전형적인 혈액형 O형의 성격으로 낙천적이라 그나마 지금까지 잘 버티고 살아왔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진작 죽었을 것. 파란만장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결혼과 함께 사라진 추억 속 윤승희
건축업도 했고 그동안 별별 장사 다 해봤다.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해 가수로 인기절정을 누리다가 생활전선의 여장부로 살면서 단맛 쓴맛 다 본 인생이다. 부산에서 해운업을 하던 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행방불명되며 집안이 무너졌고, 이후 서울 이모의 집으로 올라와 살던 중 한 의상실 사장님의 권유로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다. 1975년 12월에 TBC에서 방영된 각 분야별 노래자랑 성격의 프로인 ‘가요올림픽’에 모델 대표로 출연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작곡가 이봉조 선생이 윤승희의 노래 실력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저 친구는 모델하고 붙이지 말고 전영록하고 붙여라!”고 주문했던 것. 그 결과 10 대 0으로 전영록을 간단히 제압하고 서라벌레코드사에 스카우트되면서 가수 인생이 시작된다.
데뷔한 지 1년 6개월 만에 ‘제비처럼’이 크게 히트하면서 대형 가수로 발돋움할 때 갑자기 결혼과 함께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팬들은 그저 추억 속 스타의 섹시하고 아름다웠던 모습만을 기억하지 그들 삶의 흔적은 제대로 알 수 없다. 중년을 넘어 노년까지 꾸준하게 활동하는 가수들도 많지만 젊은 시절 반짝 하고 활동을 중단해 팬들의 추억 속에서만 남아 있는 연예인들이 꽤 된다. 윤승희를 비롯해서 남성 듀엣 어니언스의 이수영, 여배우 정윤희 등이 대표적이다. 팬들 입장에 그들 삶의 궤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단지 추억 속의 연예인이기에 더 그리운 것일까? 아니면 팬들 스스로 나이를 먹어가고 청춘 시절이 그립기에 추억을 떠올리며 당시의 노래와 스타를 대입시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걸까? 아무튼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사라진 스타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노래주점에서 마이크를 들고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불렀던 노래가 바로 윤승희의 ‘제비처럼’이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과 지나간 일들을 돌이키며 그리워하는 ‘추억’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이 노래를 주인공 송강호에게 부르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부르는 ‘제비처럼’은 극중 인물의 심리 상태와 너무도 잘 어울렸다.
노래 ‘제비처럼’이 주는 메시지
꽃피는 봄이 오면 내 곁으로 온다고 말했지 노래하는 제비처럼 언덕에 올라보면 지저귀는 즐거운 노래 소리 꽃이 피는 봄을 알리네 그러나 당신은 소식이 없고 오늘도 언덕에 혼자 서 있네 푸르른 하늘 보면 당신이 생각나서 한 마리 제비처럼 마음만 날라가네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
꼭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는 형사의 집념은 어느새 범인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한다. 묘하게 ‘제비’라는 단어도 범인의 이미지와 오버랩 된다.
‘제비’는 몸매가 날씬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비유한 말이지만 당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른바 ‘제비족’을 연상케 해서 아름답지만 야비한 이미지다. 실제로 윤승희의 ‘제비처럼’도 당시 사회적 경종을 울리기 위해 가사를 지었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물 찬 제비’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제비족’의 야비한 이중적 느낌으로 한 시대를 강타한 노래가 ‘제비처럼’이다. 가사 마지막 부분에 “당신은 제비처럼 반짝이는 날개를 가졌나 다시 오지 않는 님이여~”를 고쳐 윤승희 인생 3막에서는 팬들에게 “다시 오는 님이여~”가 되길 고대한다. 위에서 설명한 부정적인 의미의 ‘제비’가 아닌 흥부전에 나오는 긍정적인 의미의 ‘제비’ 말이다. 몇 년 안에 ‘70대 섹시 가수 윤승희’의 대박 씨앗을 가져다주는 ‘제비’가 오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