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월드컵

탄식 소리와 잠 못 이루는 불면의 밤은 길어지고 애간장 졸이는 일을 요즘 자주 만난다. 바야흐로 지구촌의 축제, 월드컵 열기가 온 누리에 가득한 축구의 시간이 왔다. 선수라면 누구나 간절히 뛰어보기를 원하는 꿈의 무대에 심장이 터질 듯 야수처럼 달리며 화려한 발재간을 자랑한다. 사각 무대에서 상대를 압박하고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된 몸을 이끌고 달린다. 이마가 깨져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거친 몸싸움을 두려워 않는 진짜 수컷들의 당당한 위용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리모컨만 누르면 손흥민, 호날두, 네이마르, 심지어 황희찬이 뛰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축구 리그까지 중계되고 있다. 신들의 전쟁, 고급스러운 경기를 접하다 보니 높아진 눈높이에 국내 축구는 동내 조기 축구팀 실력으로 보인다. 선진 축구에 비해 실력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축구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축구는 패스, 연결을 통해 상대 골문에 차 넣은 골로 실력을 평가받는다. 하지만 공을 잡으면 우리나라는 전진을 잘 못 하고 뒤나 옆으로 자주 공을 돌린다. 앞으로 나가는 패스는 정교하지 못해 자주 맥이 잘린다.

거대한 골리앗을 넘어뜨린 다윗의 이야기는 박제된 전설이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다. 더는 신격화된 이야기가 아닌 오늘도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다. 고대 전투의 전형인 1:1 싸움은 칼과 창을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는 힘 좋은 사람이 우승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골리앗은 “어서 이리와 나와 한판 붙자"라고 호기롭게 소리쳤다. 하지만 45kg이나 나가는 갑옷을 입어 행동이 둔한 골리앗의 코앞까지 다가가 들짐승들을 쫓으려 매일 훈련한 물매를 돌려 정수리를 맞추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다윗은 피 튀기는 치열한 살생의 전투가 아닌, 고정된 표적에 사격 훈련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다. 누구나 이길 수 있는 싸움을 뿐이다. 그나마 3m가 넘는 거대한 골리앗의 외양에 오금이 저려 누구나 싸울 생각을 못 한 것이다. 다윗은 적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담대하게 나가 민족을 구하고 나중에 왕좌까지 오르는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세상은 거대하고 잘난 골리앗의 전유물은 아니다. 거대한 골리앗도 창조적 전략이 있다면 하찮은 물맷돌 한 방으로도 보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독일과의 3차전에서 한국의 패배를 예상했지만, 반대로 2:0 승리를 거뒀다. 엘라의 계곡에서 물맷돌 하나로 거대한 골리앗을 넘어뜨린 다윗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독일도 그 누구도 별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