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교통부장관’을 꿈꾸는 개그우먼 반전 매력의 프리티우먼 이성미

기사입력 2017-08-03 08:42

이봉규의 心冶데이트

그녀는 상상했던 이미지 그대로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었다. 내일모레가 환갑인데 이토록 귀엽다니,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희한한 여인이다. “일단 오늘 하루만 남편을 존경하자!” 그렇게 각오하고 사니 평생의 꿈이었던 현모양처가 저절로 되었다고 말하는 개그우먼 이성미. 한여름 오후의 데이트는 분명 귀여운 여인과 시작했는데 끝날 무렵에 보니 작은 거인과 앉아 있었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그 나이에 몸무게가 40kg도 안 나간다. 뭇 여인들에게 몰매 맞기 싫은지 실토했다. “안 먹어서 이래요~ 일할 때 많이 먹으면 졸리고 느긋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져 할 수 없이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고 자백한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성미 또래의 여인들을 할머니로 생각했다. 지금은 필자 이봉규도 60이 되고 보니 이 또래의 보통 여인들이 할머니까지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섹시한 향기가 나는 여인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이성미는 여름철 농익은 살구처럼 귀엽고 섹시하다. 날씬하고 자그마한 체구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다. 한량 이봉규가 잠깐 정신줄을 놓았다. 프로의식을 되찾아 몰아치듯 인터뷰를 시작했다. “100세 시대에 사랑의 이모작을 위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이봉규의 다짜고짜 도발에 그녀는 “기운이 있어야 그런 모험이나 상상도 하죠!”라고 말한다. 한숨도 살짝 묻어나온다. 희극인답게 개그처럼 위장했지만 그 속내를 살짝 들출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때는 션과 정혜영 커플이 부러웠다. 왜 나는 션 같은 남자를 못 만났을까?” 스스로 푸념도 해봤지만 결국 “내가 정혜영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답을 내렸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고 지금의 남편에게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성미 남편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연예기획사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면서 국제대학교 조교수다. 처음 만났을 당시 남편은 이성미의 열애설을 취재하러 왔다가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다. 인터뷰하고 얼마 후 남편은 “결혼할 생각 없으세요?”라고 물으며 적극적으로 대시했다. 그녀의 반응을 엿본 남편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저랑 결혼할 생각 없으세요?” 하며 정신없이 파고들었다. 나름 차분한 이성미는 “연하이고 게다가 기자는 싫다”고 잘라 말했지만 싫지는 않았기에 일각의 여지는 남겼다. “부모님께 허락을 먼저 받아와라!” 하며 돌려보냈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 남편은 이틀 뒤 찾아와서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았다”며 “6개월과 1년 뒤 언제 결혼하고 싶냐?”고 이성미를 다그쳤다. 남편의 불도저식 박력에 이성미는 항복했고 4개월 뒤 결혼에 골인했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우리는 ‘묵은지 부부’

한 이불을 덮고 산 지가 어느덧 25년이 넘었다. 한때 결혼생활이 살짝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잘 극복하고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권태기 시절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남편과 거리를 두기 위해 캐나다에서 7년을 살기도 했다. 두 살 연하인 남편을 약간 무시하는 교만함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후 생각을 바꿔 자신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맞추기로 마음먹었더니 부부관계가 확 달라졌다. 남편한테 전화가 오면 이성미 휴대폰에 ‘존경하는 남편’이라는 글자가 뜬다. “일단 오늘 하루만 존경하자!” 그렇게 각오하고 사니까 술술 풀리더라는 것.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린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개구질 것 같은데 의외다. “아직도 방귀를 안 텄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성미의 꿈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현모양처다. ‘묵은지 부부’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냄새도 나고 매력은 없지만 깊은 맛이 있는 부부관계”라고 ‘묵은지 부부’에 관해 설명한다. 그녀의 현모양처 꿈이 이뤄진 것은 자식들의 평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엄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뭐 같니?”라는 이성미의 질문에 아이들이 “하나님, 집, 가족”이라고 대답해서 너무 고마웠다고 술회한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평생 꿈인 ‘현모양처’가 됐구나 하며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 이성미는 어린 시절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에 현모양처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녀를 버리고 떠나 새엄마 밑에서 컸다. 새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또 다른 새엄마와도 살았다. “엄마가 네 명이나 된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이 여유로워졌지만 어릴 적 자신이 겪은 불행을 남편과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깊은 각오가 그녀의 가족을 행복하게 이끌었을 것 같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아이들의 성적표를 본 적이 없다

너무 여유로워진 걸까? 가끔 자식들이 말을 안 들을 때는 개그맨답게 “이것들이 새엄마랑 안 살아봐서 이래!” 하며 다그칠 때도 있단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고2 딸은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한다. 이성미는 “도둑질 아니면 뭐든지 자식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은근히 지원사격이다. 그러면서 선배 입장에서 “딸의 성격이 대범해 연예인을 해도 잘할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린다(악성 댓글에도 견딜 수 있는 성품이라야 연예계에서 버틸 수 있다). 이성미가 자식들에게 무턱대고 관대한 것만은 아니다. 큰딸이 대학 1학년 때 입학을 보류시키고 1년간 알바를 시켰다고 한다.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밀크셰이크를 만드는 등 이런저런 알바를 하던 중 시간당 3만원 이상을 주겠다는 고액 알바광고 전화가 걸려왔다. 자세히 물으니 “아저씨들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된다”는 꼬임이었다. 세칭 룸살롱,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로부터의 유혹이었다. 엄마와 모든 것을 숨김없이 상의하는 딸이었다. 그때도 엄마와 상의했기에 딸이 어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100% 아이들을 믿는다. 믿는 만큼 아이들도 다 얘기한다”며 딸 자랑을 하는 이성미에게 이봉규가 태클을 걸었다. “글쎄~ 진짜 다 얘기할까? 그 나이 때는 엄마에게 숨기고 싶은 일도 발생하고 상상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도발했더니 그녀는 “우리 가족은 각자 결정하는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다. 걱정은 지들이 하는 거지 엄마는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여태껏 아이들의 성적표를 본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말도 한다. “흙에서 자란 아이는 용기로 크고, 아스팔트에서 자란 아이는 오기로 자란다”는 말을 20세 때 어디선가에서 듣고는 가슴에 새기고 아이들을 키울 때 금과옥조로 삼았다. 이성미의 집에는 아이들을 위한 ‘용돈 항아리’가 있다. 항상 5만원 정도 비치해놓는데 아이들이 알아서 꺼내간다. 그녀의 ‘믿음 가정교육’에 상당한 공감을 느꼈다. 귀여운 여인 그리고 작은 거인 아름다운 얘기만 하고 인터뷰를 끝낼 한량 이봉규가 아니라서 전매특허 질문을

훅~ 던졌다.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용서할 수 있나?” 몇 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것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금방 “그런데 아이들 때문에 바람은 피우지 않을걸!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로 맹세했거든” 하며 마무리 짓는다. 그녀의 표정에 강한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이대로 물러날 이봉규가 아니다. “아내로서 부족한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의외의 답변을 한다. “다정하거나 살갑지 않다. 애교도 없고 사랑 표현도 못한다.” TV 화면에 비치는 그녀의 평소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그렇다면 이성미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몸부림치는 백조처럼 귀엽게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말을 들어서일까? 인터뷰하는 동안 그녀의 태도가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다는 점을 감지했다. 현모양처 이외의 앞으로의 꿈을 물으니, 교통부장관을 하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밝힌다. 뉴스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운전이 제일 무섭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살리고 싶다고 부연 설명한다. 교통부장관이 어려우면 사복경찰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체구는 작지만 사회봉사에 대한 포부는 무척 크다. 지금은 ‘CH 114’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교회를 찾아주는 사이트인데 올 9월에 오픈할 예정이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한 달에 1만 명 정도나 된다니 믿기 힘들다. 이성미는 이들이 안타까워 이 같은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어릴 시절과 젊은 시절 한때의 불행을 슬기롭게 승화시킨 이성미는 현모양처의 평생 꿈을 이룬 것을 넘어 지금은 남 도울 생각에 골몰하며 살고 있다. 인터뷰 시작 때는 귀여운 여인이었는데 끝날 무렵에는 그녀가 작은 거인으로 오버랩된다.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사진 이혁 forrein@naver.com)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기사

  • 대한민국은 세계인의 초고령화 실험실, “노인 혐오 경계해야”
  • 2025년 초고령사회, 新노년층 등장… “73세까지 근로 원해”
  • “돌봄 골든타임 앞으로 5년” 천만 노인, 어떻게 감당할까?
  • [2025 노후 트렌드⑤] 노후 소득이 달렸다, ‘연금빌리티’

브라보 추천기사

브라보 테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