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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기사입력 2017-04-04 15:21

바둑은 필자의 친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로부터 배운 바둑은 언제부터인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시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필자와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바둑 급수가 유단자 수준에 이르렀다. 바둑계에는 바둑을 만 판만 두면 1급 수준에 이른다는 속언이 있으니 어쩌면 필자가 그동안 만 판을 넘게 두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도 같다. 어느 날 바둑대회장에서 직장 선배 한 사람이 말했다. “바둑을 두는 시간만큼은 늙지 않는다.” 필자에게는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자고로 바둑을 두는 신선은 도끼자루 썩는지 모른다고 했으니 말이다.

바둑을 두면서 필자는 가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일상의 어떤 기획력과 협상력 및 사고의 힘을 키우는데도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인생의 재미를 부여해주며 필자를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삶의 귀한 시간들을 바둑을 두는 데 너무 많이 빼앗겨 인생의 다른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들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바둑을 알면서 만들고 싶었던 바둑손익계산서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판단 기준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치의 대소를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친구와의 관계에서 손익계산서를 따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과거 직장 상사이자 선배였던 분과 겨루었던 바둑대회의 한 대국이 잊히지 않는다. 만방에 가까운 불계로 필자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승패와 관계없는 한 집짜리 패가 걸렸다. 필자는 거의 끝난 바둑이라 생각으로 무심코 패를 받았는데 이것이 자충수가 되어 대마의 사활을 가름하는 패가 되었고 상대가 받아줄 만한 패가 없어 결국 선배의 대마는 살고 오히려 필자의 대마가 죽어 역전패를 당하게 되었다.

바둑 십계명인 위기십결 중 신물경속(慎勿輕速, 바둑을 둘 때는 가볍게 막 두어서는 안 되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돌을 놓아야 한다)을 소홀히 여기다가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꼼수를 두었다고 상대를 힐난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필자는 이를 부정적인 측면으로 보기보다는 전체적인 국면을 읽지 못하고 정확하지 못한 필자의 판단 때문에 졌다는 생각을 하면서 선배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이를 기회로 앞으로 바둑을 둘 때 아무리 유리한 국면이라 해도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런데 알고 다짐한다고 삶이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반상에서도 같은 실수가 자고 나면 또 반복되는 것이 너무나 우리 삶과 비슷해 더욱더 그 세계를 알고 싶다.

일본의 한 프로기사는 갑자기 바둑 두는 것을 중단했다고 한다. 바둑을 둘 때마다 상대가 실수를 하거나 잘못 두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자신이 바둑 두는 사람으로서 자세가 바로 서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삶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늘 공존해 있으므로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고 살아야 할 것이다. 상대의 실수로 내가 이기는 것을 기대하는 마음은 도리는 아니나 한 번쯤 역경 속에서 승리를 맛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삶은 누구에게나 이런 면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시니어 세대도 끝까지 차분하게 반면을 주시하면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막판 뒤집기로 인생이 대역전의 드라마 같은 연출도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바둑을 두시는 분들에게 필자만의 바둑대회 승리비법을 전수해주고 싶다. 쉽게 기억되도록 ‘3확승’이라는 제목을 붙여봤다. ‘3’은 한 판의 바둑을 두면서 적어도 세 번 정도 계가를 하라는 의미이고, ‘확’은 바둑돌을 놓을 때 자신과 확신이 드는 곳에 두라는 의미이며 ‘승’은 불리할 때 마지막으로 승부수를 띄워 마무리를 지으라는 의미다.

바둑은 필자에게 항상 긍정적인 자세와 존경받을 수 있는 삶을 살도록 가르쳐주고 있다. 오랫동안 갈고닦은 삶의 지식을 후세들에게 전수하고 봉사하며 산다면 세상은 더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필자는 오늘도 인생의 축소판인 바둑을 두면서 삶의 깊이를 생각하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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