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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

기사입력 2017-03-22 09:56

세상에 있는 재미난 일에는 물구경, 불구경, 싸움구경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사실 남 흉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입만 움직이면 되는 흉보기는 앞의 재미거리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상사한테 엄청 얻어맞고, 위로하는 동료들과 뒤에서 상사를 욕하면 동료의식도 생기고 속이 좀 풀린다. 돌아가며 상사의 험담을 집어내다 보면 분위기는 어느새 초상집에서 화기애애한 잔칫집으로 바뀐다. 분위기 전환용으로 제 격이다. 흉은 남들하고 같이 보아야 제 맛이다. 혼자 흉을 보면 자기만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같이 흉을 보면 내 생각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고민하지 않아도 안심이 된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구체적 대상이 있어야 흥이 나지만 혹시 없어도 스무고개처럼 풀어가며 세상의 흉을 볼 수도 있다.

여자들은 모여서 남자들의 흉을 본다.

‘짐승 같다. 단순하다. 어린애 같다. 철이 안 든다.’

남자들도 모여서 여자들 흉을 볼 것이다. 뭐라 할까?

‘변덕이 심하다. 비위 맞추기 힘들다. 잔소리가 많다.’

그러나 흉보는 자리에는 빠지면 안 된다. 빠지는 사람이 그날 입으로 치는 축구공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기 쉽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 역사학 교수인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말했다. 동료 교수들과 학교 휴게실에 모이면 역사학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교수들의 뒷담화를 한다고 했다. 흉은 보통 사람들만 보는 것이 아니다.

부러운 사람이나 나보다 잘 난 사람을 대상으로 흉을 보면 자신의 열등감, 시기심이 해소되는 좋은 점이 있다. 기죽어 지내던 것을 복수하고 쌓인 체증을 내려가게 하는 것이다.

또 나보다 못난 사람에게는 그동안 답답했던 것을 쏟아내며 맘껏 우월감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내가 본 것이 얼마나 편협한 일부분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전체를 볼 수 없다면 어느 한 부분이 전부라고 확정 짓는 일은 얼마나 위험한 오류인가.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오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슴이 오그라드는 창피함을 느끼게 된다.

그 동안의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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