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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아이들의 마지막 산타클로스

기사입력 2016-12-05 11:23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딸 둘을 키웠는데 3년 터울이었다. 누구나 그러하듯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으로 자라게 하고 싶었다. 크리스마스엔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끼리도 서로 선물을 나누며 감사와 사랑을 확인하곤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인디언 핑크 스웨이드 천을 잘라서 손바느질로 고리가 달린 버선을 두 개 만들었다. 버선엔 각자의 이름을 흰 실로 수놓고 테두리 마감 스테치도 한 땀 한 땀 공을 들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한 달 전쯤부터 이층 침대에 걸어두었다.

아이들이 서로 다투거나 양보나 배려가 부족할 때는 크리스마스에 올 산타할아버지를 불러내 긴장을 시키곤 했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해마다 필자가 몰래 넣어주는 선물을 기다렸다.

그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이들은 평소 갖고 싶은 물건 이름을 적어서 버선 속에 넣으면 산타할아버지가 보시고 선물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기대에 가득 차 삐뚤빼뚤 글씨를 쓰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필자는 아이들 몰래 메모지를 꺼내 보곤 혼자 나가서 선물을 사고 포장도 했다. 그리곤 커다란 장바구니에 숨겨 집으로 돌아온 후 살짝 안방 장롱에 숨겼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엔 기대에 들떠 잠도 자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자다가도 부스럭 소리만 나면 혹시 산타할아버지가 오셨나 하고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날 늦게 귀가한 남편이 현관 벨을 누르자 그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비어 있는 버선 속을 보며 거의 울상이 되어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이 착하지 않아 선물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본 남편이 기발한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이미 일어났으니 선물을 넣을 기회는 놓쳤고 다른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남편은 버선 속에 몰래 메모지를 넣었다. 아빠가 썼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왼손으로 쓴 글씨의 메모지였다.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산타할아버지다. 거실 두 번째 서랍장을 보아라.’

아이들은 울다가 깜짝 놀랐다. 흥분한 아이들은 거실로 도토리처럼 굴러갔다.

‘흐음, 잘 찾았구나! 착한 아이들아.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아라.’

아이들은 피아노 뚜껑을 열려고 또 뛰었다.

‘이것도 잘 찾았구나! 이번엔 세탁기를 열어보아라.’

아이들은 다용도실로 뛰었다. 그리곤 환성을 터뜨렸다. 세탁기 속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 보따리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물을 다소곳이 들고 거실로 돌아온 아이들 얼굴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듯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음 날 학교와 유치원에서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마치 커다란 비밀이라도 알게 된 듯 울먹이며 내게 안겼다.

“엄마, 아이들이 그러는데 산타할아버지는 없대요. 맞아요?”

지난 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받던 행복했던 순간을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모두 그런 할아버지는 없다고 해서 자기만 있다고 우겼다는 것이다. 순간 당황한 필자는 고민하다가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 한동안 절망하며 슬퍼했다.

그 후로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은 사라졌지만,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누던 따스한 기억을 잊지 않았다. 용돈을 모아 조몰락거리며 서로의 선물을 준비했다. 서로에게 산타가 되어준 것이다. 그렇게 동화 속 마지막 산타할아버지는 떠났지만 그 아름다웠던 크리스마스이브는 영원히 아이들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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