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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백록담을 향하여

기사입력 2016-07-07 16:01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한라산을 향하여 꾸역꾸역 오르고 있다. (김종억 동년기자)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한라산을 향하여 꾸역꾸역 오르고 있다. (김종억 동년기자)
▲한라산 백록담에서 세 부부가 인증샷. 맨 우측이 필자 부부다. (김종억 동년기자)
▲한라산 백록담에서 세 부부가 인증샷. 맨 우측이 필자 부부다. (김종억 동년기자)
▲한라산 백록담 표지석. (김종억 동년기자)
▲한라산 백록담 표지석. (김종억 동년기자)

제주도에는 가끔 갔지만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을 못보고 내려오기를 여러 번, 기어코 이번에는 백록담을 보고 오기로 하고 2박3일의 제주도 여행을 계획했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렇 듯, 다람쥐 채바퀴 돌 듯 돌아가는 세상에 늘 퍽퍽하고 지루하기만 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군 시절의 동기인 3부부가 의기 투합하여 꽃향기가 그윽한 5월의 어느 날 제주도로 떠났다. 2박3일 중, 한라산 등반은 두 번 쨋날로 정했다.

상판악에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한라산 등반!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잠속으로 빠졌들었는데…. 또드락 뚝딱! 또드락 뚝딱… 고요한 아침공기를 깨고 거실 쪽에서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가 아련하게 귓전을 울렸다. 눈을 번쩍 떠보니 창문너머로 환하게 동이 터오고 아직은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아낙들의 조용하면서도 부지런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덕분에 아침식사는 걸쭉한 전복죽으로 영양을 보충하였는데, 각자가 한라산 등반을 대비하여 두세 그릇씩을 뚝딱 비워 든든하게 속을 채웠다.

해발 1950m의 한라산 정상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는지 걱정은 태산이면서도 웬 먹을거리를 그리도 많이 준비하였는지? 돼지고기 수육에 홍어회와 양념장류, 각종 나물류, 그리고 금세 지은 밥을 바리바리 배낭에 넣고 그것도 모자라 막걸리에 물까지 챙겨 넣고 보니 배낭무게만 해도 어깨가 묵직하기 그지없었는데, 설상가상 무거운 카메라까지 목에 걸고 보니 아득하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랴! 한창 젊은 시절에는 웬만한 고지는 단숨에 뛰어오르던 역전의 용사들이 아니던가?

한라산 백록담까지 오르기 위해서 성판악코스를 택했는데 성판악코스는 편도 9.6km 이며 보통 걷는 시간만 4.5시간을 잡아 왕복 19.2km로 총 9시간을 걸어야만 하는 험난한 코스였다. 다행히 코스자체가 완만하다고 하여 한결 마음은 놓였지만 그래도 마음은 놓이지를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한라산 등반길, 다행히도 비가 그친 산길에는 시원한 나무그늘과 신선함이 묻어났고 싱그러운 숲속에서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와 상쾌하게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완만한 등산로라고 하지만 제주도 특유의 울퉁불퉁 돌계단으로 이어져 걷기가 만만하지가 않았다.

일행 중, 최 박사는 무릎이 좋지 않아 전 날부터 걱정을 했다. 한라산 등반을 하기 위해 두어 달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집근처 야트막한 산을 연습 삼아 오르곤 했다는데 딱 2시간만 걸으면 무릎에 신호가 와서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등반이 시작되자 제일 앞에서 씩씩하게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 산비둘기 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지고 가끔은 까마귀가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환영을 해주었는데, 일행과 뒤질세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아낙들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제주도 특유의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삼나무 숲이 나오는데 삼나무 숲을 지나니, 해발 1,140m에 위치한 속밭대피소가 나왔다. 세 부부가 조금씩 떨어져 오르고 있었으니 숨도 고를 겸 선두에서 오르던 팀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일행들과 합류하기로 하였다.

1차 휴식! 달콤한 휴식이었다.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면서 재충전을 하였다.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속박대피소에서 1차 휴식을 취한 후 본격적인 오름이 시작되었다.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과 중간 중간을 이어주는 데크… 그래도 싱그러운 숲내음과 선들 한 바람, 그리고 환영이라도 하 듯 울어주는 산새소리를 동무삼아 꾸역꾸역 오르고 있었다.

이 시기에 한라산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진달래를 볼 수 있다고 하는 소리를 반신반의 하면서 혹, 멋진 진달래꽃밭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하였다.

육지에서는 이미 져버린 진달래꽃을 정말 볼 수 있을까?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능선에서 보았던 붉고 화려한 꽃잎을 상상하면서 오르다 보니 드디어 진달래 밭에 도착하게 되었다. 진달래 밭 대피소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2차 휴식을 취했다.

데크에 다리를 쭉뻗고 털썩 주저앉아 초콜릿을 먹고 있는 최박사의 모습은 마치 몇날며칠 전투를 하다가 지쳐서 휴식을 취하는 곤궁한 병사의 그 모습이라면 과장일까? 물한모금 마시고 다시 기운을 내서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선 길에서 저 멀리 옅은 구름에 둘러싸인 한라산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스라이 구름에 닿은 길에는 울긋불긋 등산객들이 행렬을 지어 올라가고 있었는데, 평일임에도 산을 찾는 이들이 이토록 많을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는 60대의 시니어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다가 잠시 뒤돌아보면 짙푸른 녹음이 길게 드리워진 산자락 밑, 서귀포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 끝에는 일렁이는 검푸른 바다가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수령(壽齡)을 짐작할 수 없는 주목(朱木)이 등산로 양옆으로 이어져 있고 그 중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폐목(廢木)이 되어 고고하게 바람을 견디어 내는 주목도 있었다. 한라산 정상에 가까워오자 가파른 등산로는 테크로 계속 이어졌고 물밀 듯 불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아! 드디어 백록담이 지척에 보인다.

아! 한라산 백록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미리 백록담에 도착한 필자는 속속 도착하는 동료들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입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곤한 몸을 이끌고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띤 채 드디어 해냈다는 기쁨으로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마지막 계단에 올라서는 동료들을 일일이 환영하며 사진을 찍었다.

인증 샷을 위해 백록담 표지석 아래로 길게 줄이 이어졌는데,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불던지 황급히 배낭에서 바람막이 옷을 꺼내 입었다. 5월임에도 불구하고 변화무쌍한 날씨가 필자 일행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허둥지둥 인증 샷을 마치고 말로만 듣던 백록담을 보러 조금 위로 올라섰다. 초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천둥치듯 불어대는 가운데 백록담을 조망(眺望)할 수 있었으니 역시 변화무쌍한 한라산은 그 높이가 백두산 다음가는 산중의 산인가보다.

바로 밑 양지바른 테크에 배낭을 풀고 가져간 음식들을 꺼내놓으니 이보다 더한 진수성찬이 있으랴! 돼지고기 수육에 홍어, 그리고 막걸리를 곁들인 삼합이 갈증 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올라오면서 고생담을 비롯한 온갖 이야기꽃을 피우며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던 중에 홀로 쓸쓸하게 앉아서 비스킷을 먹고 있는 외국인 청년을 보게 되었다.

세 남자들은 모두 그를 데려다가 음식을 좀 나누어먹이자고 의견을 모으니 마님들께서는 먹던 음식을 어떻게 권하느냐고 반대의 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언어구사가 무난한 최용호박사가 다가가서 몇 마디 나누고는 그를 우리 자리로 데리고 왔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고 주도해 온 우리들의 캡틴 海松 김금섭 대장의 사위가 미국인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아이들도 미국의 콜로라도주 덴버에 살고 있기에 혹여 마음이 더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자신의 이름을 ‘마이클’이라고 소개한 그 외국인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은 스페인 청년이었다. 이것저것 챙겨주니 먹기도 잘하였는데, 아마도 몹시 시장했던 모양이었다. 헌데 그 녀석, 막걸리는 물론 돼지고기 수육을 된장에 꾹 찍어 잘도 먹어댔다.

막걸리 한 잔 쭉 들이키던 마이클이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났다며 데크에 벌렁 나가 자빠졌는데, 어찌하랴! 모두가 달려들어 털이 북슬북슬한 그 녀석의 다리를 붙잡고 마구마구 주물러 주었더니 괜찮아 졌다고 하였다. 입식문화에 익숙한 그가 데크에 다리를 포개고 앉아서 음식을 먹다보니 쥐가 난 모양새다. 어쨌거나 밥과 반찬은 물론이고 이것저것 잘 먹으면서 여간 고마워하던 그가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하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 친구를 데려다가 음식을 나누어 먹인 것은 어찌 보면 보잘 것 없는 작은 배려이지만 참 잘한 일인 듯싶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우리가 낮선 외국에 여행을 갔을 때를 생각하면서 작은 관심과 배려의 차원에서 나눔은 역시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몇 번이고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그 스페인 청년을 보내고 나니 내려올 일이 꿈만같았다.

드디어 해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터, 육십 고개를 넘어 이제 내리막길에 가속을 붙일 시기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한라산 등반. 그 하산 길에서는 피로가 온 몸을 엄습했다. 아침 여덟시에 시작한 한라산 등반은 오후 6시 30분에 모든 동료들이 성판악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므로 써 장장 10시간 30분의 고단한 여정이 끝났다. 고단한 가운데서도 모두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언제 또다시 이 곳을 찾을까마는 명산중의 명산 제주도 한라산을 당당하게 정복했다는 은근한 자부심이 샘솟았다. 거기에다가 날씨까지 좋아서 멋진 백록담을 볼 수 있었으니 얼마나 상쾌한지 모르겠다.

우리 인생에 있어 더 이상 젊은 시절은 돌아올 수 없으나 늘 긍정적인 사고로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라산 백록담. (김종억 동년기자)
▲한라산 백록담. (김종억 동년기자)
▲필자 부부가 백록담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종억 동년기자)
▲필자 부부가 백록담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종억 동년기자)
▲스페인 청년 마이클과 함께. (김종억 동년기자)
▲스페인 청년 마이클과 함께. (김종억 동년기자)
▲스페인 청년 마이클과 함께. 가운데가 필자. (김종억 동년기자)
▲스페인 청년 마이클과 함께. 가운데가 필자. (김종억 동년기자)
▲올라왔으면 내려가는 것이 인지상정. (김종억 동년기자)
▲올라왔으면 내려가는 것이 인지상정. (김종억 동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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