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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열의 역사의 그 순간] 탄넨베르크 전투 - 정보 수집과 해석

기사입력 2015-08-26 14:28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하는 작업과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정보 수집행위와 분석/판단능력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외우고 계산하는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천재라 한다. 그런데 인간의 암산능력은 컴퓨터를 이기지 못하고 암기할 것도 컴퓨터에 다 저장되어 있다. 오늘날 천재는 정보를 분석/판단하며 실천 의지를 가진 인물일 것이다.

분석과 판단, 실천능력은 ‘국가 대사’인 전쟁에서 특히 중요하다. 이번 이야기는 1904~1905년 러일전쟁 중 만주전역(戰役)을 관찰한 한 독일 장교가 이때 들은 이야기 수준의 정보를 10년이 지난 1914년 1차 세계대전에서 활용하여 탄넨베르크 전투(Battle of Tannenberg)라는 역사적 대승리를 거둔 사건에 관한 것이다.

독일(통일 이전 프로이센) 군부, 특히 총참모부의 전쟁에 관한 연구와 작전수립 능력이 탁월한 것은 알려져 있다. 독일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제국, 그리고 러시아라는 강대국들에게 포위당해 있어 이들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전쟁개념이나 작전 계획 수립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왔기 때문이다.

우리와 관련하여, 근대 한일 관계에서 ‘한반도가 일본열도의 심장을 겨눈 비수’라는 개념도 1885년 일본의 육군대학에서 강의한 클레멘스 메켈(Klemens Meckel) 대령이 언급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핵심적 안보관이다.

독일 참모부가 낳은 천재적 장교 중 하나가 막스 호프만(Max Hoffmann, 1869~1927) 중령으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1914년 당시 45세였으며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그의 경력 중 눈에 띄는 것은 러일전쟁 중 무관 참관인(observer)으로 일본의 만주군 주력인 제1군을 따라 러일전쟁을 직접 관찰했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전개를 돕기 위해 1차 대전 초기 독일의 작전계획에 대해 약간 언급할 필요가 있다. 독일이 프랑스-러시아와의 양면 전쟁에 대비해 마련한 슐리펜(Schlieffen) 계획은 잘 알려져 있다. 그 핵심은 ‘우익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영토가 넓고 교통망이 미비하므로 동원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독일군을 7 대 1의 비율로 서부전선에 집중하여 6주일 내에 프랑스군을 격파한 후 동쪽(러시아)으로 예봉을 돌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예상을 깨고 2주 만에 동원을 완료, 주력군을 신속히 동프로이센으로 진격시키자 독일 8군이 이를 저지하지 못하고 사령관은 전선을 폴란드 중부 비스툴라 강까지 후퇴시키려 한다. 이에 베를린 사령부는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rburg) 장군과 에리히 루덴도르프(Erich Ludendorff) 장군을 사령관과 참모장으로 임명한다. 이 두 장군은 1차 대전이 낳은 독일의 영웅이다. 힌덴부르크는 바이마르 정부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한 인물이며 루덴도르프는 전쟁 말기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의 총공세를 지휘했다.

전쟁 개시 3주째인 8월 말 새 사령탑이 도착하기 전 절체절명의 시기 동프로이센 독일군을 지휘한 인물이 부참모장인 호프만 중령이다. 동프로이센을 공격한 러시아 1군 사령관은 렌넨캄프(Paul von Rennenkampf) 장군이며 2군 사령관은 삼소노프(Alexander Samsonov) 장군이다. 렌넨캄프 장군은 러일전쟁에서 여러 전투를 지휘했으나 특히 만주의 운명을 결정 지은 선양(瀋陽)전투(1905년 2~3월)에서 일본군에 패배하여 지휘권을 잃는다. 삼소노프 장군은 선양전투에서 러시아군의 측면을 보호하여 명성을 얻는다.

9년 뒤 이 두 장군은 공교롭게도 러시아군의 주력부대를 지휘하는 소임을 맞게 된다. 렌넨캄프의 1군은 북동 방면에서, 삼소노프의 2군은 서남방향에서 동프로이센으로 진격하여 독일 8군을 포위하는 작전이었다. 당연히 전투의 승패는 양군이 서로 긴밀히 연락을 취하는 협동작전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렌넨캄프가 적절한 시기에 지원하지 않았다면서 선양전투의 실패 책임을 두고 선양역 플랫폼에서 서로 따귀를 때리면서 싸웠다는 것이다. 호프만 중령은 만주에 있을 때 이 이야기를 들었다.

힌덴부르크가 신임 사령관으로 임지에 도착했을 때 독일 8군은 호프만 중령의 지휘 아래 전투에 돌입하고 있었다. 호프만은 암호화되지 않은 러시아군의 교신을 쉽게 도청하여 1군과 2군이 상호 지원이 쉽지 않은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걸 파악한다. 게다가 선양역 사건으로 두 사령관이 협력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독일군은 각개격파에 들어가 8월 말 먼저 수적으로 우세한 삼소노프 2군을 섬멸한다. 삼소노프는 고군분투하면서 1군에게 다급한 전문으로 구원을 요청하지만 렌넨캄프의 1군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15만 러시아 군 중 1만이 겨우 탈출했으며 삼소노프는 도주과정에서 권총으로 자살한다. 렌넨캄프 장군도 패전으로 지휘권을 박탈당한다. 그는 1918년 볼셰비키 혁명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이것이 1차 대전 초기 독일이 동부전선에서 거둔 유명한 탄넨베르크 전투이다.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소수의 병력으로 상대방을 격파한 한니발의 칸나에(이탈리아)나 나폴레옹의 오스텔리츠(현재 슬로바키아의 슬라프코프)에 비교될 수 있는 지휘관의 천재성이 발휘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전투에 늦게 참여한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라는 두 전쟁 영웅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전략적 측면에서 탄넨베르크는 독일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승리였다. 러시아군의 신속한 동원을 우려한 베를린 총참모부가 서부전선의 정예부대를 동부로 이동시켰는데, 이 부대가 철길에서 한창 달리고 있을 때 전투가 끝나 버린 것이다. 반면 주 무대인 서부전선에서는 독일군이 파리를 눈앞에 두고 투입할 예비 병력이 모자라 마르느 전선에서 진격이 저지당했다. 이후 전쟁은 지루한 참호전으로 변하며 자원이 부족한 독일의 패배로 연결된다.

종전 후 호프만은 회고록에서 탄넨베르크 전투의 공을 가로챈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 장군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사관생들을 전장에 안내하면서 “봐라, 이곳은 힌덴부르크가 전투 전에 잠잔 곳이고, 이곳은 전투가 끝난 뒤 잔 곳이며, 이곳은 전투 중 잠잤던 곳이다”라고 말했다. 정보의 수집만이 아니라 그 해석/판단과 실천의지의 중요성을 보여준 역사의 한 사례이다.


△ 구대열 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대 영문과 졸, 한국일보사 기자, 런던정경대 석ㆍ박사(외교사 전공).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통일학연구원장 등 역임. 저서<삼국통일의 정치학><한국 국제관계사 연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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