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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부터 엔딩플랜까지, 죽음준비의 빈틈을 잇다

입력 2026-10-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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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정준 메모리올 대표… 초고령사회 장례 관행과 제도 사이서 산업 찾아

▲이정준 메모리올 대표.(이준호 기자)
▲이정준 메모리올 대표.(이준호 기자)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니라 늘 곁에 있다. 우리 사회도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서면서 장례와 묘소 관리, 유품 정리와 상속 등 웰다잉 관련 수요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가족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막막한 일이다. 장례를 치르는 사흘 동안 장례 방식과 장지 등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를 서둘러 결정하는 유족도 많다. 이정준 메모리올 대표는 충분한 준비 없이 선택의 기로에 서는 가족들의 현실에 주목했다.

그가 이 분야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신한카드 재직 시절 추모공원 관리비의 자동이체를 검토하면서였다. 카드 납부 고객에게 묘소 헌화 혜택을 제공하려 했지만, 일을 맡길 업체를 찾기 어려웠다. 지역의 영세 사업자들은 있어도 금융회사가 지속적으로 협업할 규모와 체계를 갖춘 곳은 드물었다.

직접 서비스를 만들어보려 휴직한 그는 헌화보다 이미 유료 수요가 있던 벌초 대행으로 눈을 돌렸다. 다만 추석에 수요가 몰리는 벌초만으로 회사를 꾸리기는 어려웠다. 복직해 사업의 가능성을 더 살피던 그는 사내벤처를 거쳐 2024년 메모리올을 독립법인으로 출범시켰다. 안정된 직장을 떠난 데에는 필요한 서비스를 발견했다는 확신과, 도전하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자는 판단이 있었다.

“퇴직하고도 30년, 길면 40년을 더 살 수 있는데 그 기간에 뭔가를 해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지금 해보는 게 낫겠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했죠. 더 빨리 시작해야 안 되더라도 다시 다른 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현재는 ‘조상님복덕방’을 통해 벌초 대행과 이장·개장을 맡고, 추모공원 추천과 방문 동행으로 사업을 넓혀가고 있다. 묘소 관리에서 시작해 죽음 전후의 준비를 돕는 쪽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현장에서는 처음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과 마주했다.

“묘소요? 빨간 대문 집 뒤에 있어요”

벌초 대행의 첫 과제는 묘소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집과 달리 주소만으로 찾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산 하나가 한 번지인 경우도 있어요. GPS 정보를 수집하는데 그것부터 어려워하시죠. 그냥 ‘빨간 대문 집 뒤에 가면 있다’고 설명하세요. 원래 하던 분이 돌아가셨다며 부탁하시는데, 저도 해드리고 싶지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초반에는 작업하시는 분들이 한두 시간씩 헤매기도 했어요.”

의뢰인과 작업자 중에는 고령층이 많아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까지 고려해야 했다. 앱을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한 건이라도 하고 싶고, 어르신이 부탁하시니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고객도 ‘신청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겠구나’를 알게 해야 하더라고요. 그냥 해드리면 내년에도 같은 방식으로 하세요. 위치 정보가 없으니 다른 작업자에게 맡기면 또 헤매야 하고, 그러면 작업자들도 일을 안 하려고 해요.”

“발인 때 장지 처음 보는 상주, 후회 많아”

묘소를 관리하는 일에서 새로운 장지를 추천하는 일로 넓혀가자 다른 어려움이 생겼다. 여러 시설을 안내하고 동행해도 결정을 미루는 고객이 있었다. 미리 알아보는 가족에게는 당장 선택을 서두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대표는 장지를 바로 정하기보다 여러 시설을 둘러보며 자신의 뜻을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하고자 추모공원 투어를 구상했다.

“장례를 치르는 사흘 안에 장지를 정해야 하는데, 정작 상주는 발인 때 처음 가보는 경우가 많아요. 생각했던 장소가 아니어도 되돌리기 어렵잖아요. 후회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미리 준비하면 좋겠다는 취지로 버스 투어도 해보고 있어요.”

이 대표는 참여자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여러 추모공원을 둘러보며 죽음준비를 생각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다고 전했다.

장례 서비스 진출을 고민하게 된 것도 고객의 선택을 보면서다. 벌초 고객이 묘를 정리할 때 이장·개장과 장지 추천까지 이용하리라 예상했지만, 이미 장지를 정한 뒤 개장만 의뢰하는 경우가 있었다. 장지 선택을 도우려면 장례 단계에서 가족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구상하는 것은 기존 장례 서비스와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보다 장례의 규모를 간소화하면서 추모의 의미는 더욱 깊게 하는 서비스다.

“결국 장지 선택은 장례 과정과 연결돼 있거든요. 그래서 장례 단계부터 고객을 만나는 서비스를 고민하고 있어요. 기존 상조업체들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보다는 무빈소나 가족장처럼 작은 장례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형식과 규모는 줄이더라도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경험은 더 깊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메모리올이 진행한 추모공원 투어에 참가한 시민들이 시설 내부를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메모리올은 장지를 미리 살펴보고 자신에게 맞는 장례 방식을 고민할 수 있도록 추모공원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메모리올 제공)
▲메모리올이 진행한 추모공원 투어에 참가한 시민들이 시설 내부를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메모리올은 장지를 미리 살펴보고 자신에게 맞는 장례 방식을 고민할 수 있도록 추모공원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메모리올 제공)

묘소 관리 부담 줄이고 싶어도 제도에 막혀

가족이 뜻을 정해도 의뢰를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대표에게는 선산의 여러 묘를 한곳에 모아 관리 부담을 줄이고 싶다는 의뢰도 들어온다. 봉분을 없애고 지면을 평평하게 정리하는 평장 형태나, 나무 주변에 화장한 골분을 묻는 수목장으로 바꾸려는 가족들이다. 여러 곳에 흩어진 묘를 돌보거나 해마다 벌초하는 수고를 덜고 싶어서다. 물론 미적인 요소도 고려 대상이다.

하지만 가족이 생각하는 ‘묘를 정리하는 일’이 제도상으로도 단순한 것은 아니다. 유골함을 시설에 안치하는지, 화장한 골분을 땅에 묻는지에 따라 적용 기준이 달라진다. 기존 묘가 있던 곳이라도 원하는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지, 표지나 석물의 크기와 형태가 기준에 맞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가족이 주변에서 보고 원했던 방식이 해당 장소에서는 허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저희는 법적인 테두리에서 권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의 인식과 법적인 기준에 차이가 있어요. 그분들은 나름 큰 결심을 하고 ‘이렇게라도 바꿔야겠다’고 하시는 건데, ‘이것도 안 되는 거였어?’라고 하시는 거죠. 예를 들어 묘지 유형에 따라 표지석의 크기나 설치 방식에 제한이 너무 엄격해서, 여러 조상을 한곳에 모시려는 가족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요.”

이 대표는 묘소 관리의 부담을 덜려는 수요에 맞춰 제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적법한 방식을 찾더라도 실행할 시설과 일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개장 유골의 화장 예약이 그중 하나다.

“묘를 개장하고 유골을 화장하려 해도 화장장 예약이 안 되면 날짜를 바꿔야 해요. 돌아가신 분의 화장과 개장유골 화장의 배정이 나뉘어 있거든요. 지방에는 개장유골 화장을 하루 두 건밖에 할 수 없는 곳도 있어요. 그러면 원하는 날에 묘를 정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거죠. 이런 배정 물량을 상황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도간 울타리 넘어야 할 ‘엔딩플랜’

이 대표가 장기적으로 만들려는 것은 죽음 전후의 준비를 한곳에서 안내하는 ‘엔딩플랜’ 서비스다. 묘소 관리나 장례뿐 아니라 유품 정리와 상속까지, 가족이 해야 할 일을 함께 살피고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려는 구상이다. 분야마다 다른 업체와 전문가를 찾아야 하는 가족의 부담을 덜자는 취지다. 상속에는 재산을 나누는 절차와 세금 문제도 따르는 만큼, 세무법인·법무법인과 연계하는 상담 모델도 검토했다.

“세무법인이나 법무법인과 협력해 고객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안내하는 모델을 검토했어요. 그런데 전문직 업무를 소개하거나 알선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데는 법적인 제한이 있더라고요. 고객 입장에서는 여러 분야의 도움을 한곳에서 받을 수 있으면 편리할 텐데, 이런 서비스를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수익 구조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변호사법과 세무사법 등 관련 법률은 전문직 업무의 소개·알선과 그 대가 수수에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전문가 정보를 안내하는 것과 대가를 받고 업무를 알선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대표에게는 가족의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도움을 연결하는 초기 상담을 어떤 수익모델로 운영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다.

그 상담을 맡을 사람을 기르는 일도 쉽지 않다.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지 판단하려면 법률·세무·장례 등에 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관련 교육을 직접 들어보니 죽음준비를 교양으로 배우는 것과, 이를 직업으로 삼도록 훈련하는 것은 달랐다.

“상담하려면 여러 분야의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하잖아요. 상담원도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 인프라를 갖추기가 쉽지 않아요. 관련 교육을 들어봤지만 전문적인 업을 하기보다 ‘알아두면 좋다’는 취지로 듣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결국 돈이 돼야 선순환이 될 텐데, 어떻게 직업으로 만들어낼까 하는 고민이 커요.”

▲이정준 메모리올 대표.(이준호 기자)
▲이정준 메모리올 대표.(이준호 기자)

“죽음에 대한 대화, 인식 전환 있어야”

서비스와 제도를 갖추는 일에 앞서 가족 안에서 풀어야 할 문제도 있다. 장례나 장지에 관한 뜻을 미리 나누지 않으면 남겨진 가족은 선택의 기준부터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가족끼리 말을 안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화장했으면 좋겠어’, ‘수목장을 하면 좋겠어’ 같은 말도 불효하는 것 아닌가 싶어 꺼내기 어렵잖아요. 그러다 장례를 치르게 되면 자녀들은 ‘마지막인데 여기까지만 하면 불효하는 것 아닌가’하는 강박에 시달리죠. 관도 수의도 좋은 걸 쓸 수밖에 없어요. 그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은 결국 부모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님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묘소를 돌보며 만난 문제는 묘소 밖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뜻을 이야기할 자리, 알맞은 방법을 안내할 사람, 실제로 이용할 서비스와 시설이 함께 필요했다. 이 대표가 만들려는 죽음준비의 안내 창구도 이 사이를 잇는 일이다.

초고령사회에서 죽음준비는 가족의 경험과 수고에만 맡겨둘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다. 묘소 관리에서 출발해 장례와 사후 준비까지 사업을 넓히려는 이 대표의 구상도 이러한 현실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관련 제도의 제약과 수익모델 확보, 전문 인력 양성 등 풀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늘어나는 죽음준비 수요를 지속 가능한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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