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창단 밴드부의 전통 이어 음악으로 나눔 실천
강현호 배재사운드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학창 시절 연주하던 악기를 수십 년 만에 다시 잡았다. 예전처럼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악보 읽는 속도도 더디지만, 서로 다른 악기의 소리가 하나로 맞아떨어지는 순간의 짜릿함은 그대로였다.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배재고등학교 밴드부 출신이 모인 ‘배재사운드 사회적협동조합(이하 배재사운드)’ 이야기다. 이들은 추억을 나누는 데 머물지 않고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과 저소득층 어린이 음악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배재사운드는 학창 시절 운동장을 달궜던 응원곡을 되살려 존중과 선의의 경쟁이라는 응원의 본뜻을 전하는 10월 정기 공연을 준비 중이다.
흩어진 졸업생을 다시 불러 모은 음악
배재고 밴드부의 역사는 194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민국 최초의 학교 밴드부로 알려진 이들은 이듬해인 1941년 정동 경성방송국 연주 행사에 참여할 만큼 일찍부터 활동을 펼쳤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졸업생에게 밴드부는 학창 시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현재 배재사운드에는 20대부터 70대까지 함께한다. 나이 차이가 반세기에 이르고 학교를 다닌 시기도 다르지만, ‘밴드부’라는 공통의 경험과 음악이 이들을 한자리로 이끌었다. 처음부터 사회적협동조합의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비정기적으로 졸업생 모임을 10여 년간 이어오던 중 강현호 이사장과 동문들은 “다시 악기를 연주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졸업생끼리 만나 친목을 다지는 것도 좋지만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끼리 즐기는 밴드 말고 음악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생활의 중심에 밴드부가 있었으니 악기를 다시 해보자고 했죠.”
하지만 밴드부 활동은 했지만 졸업 후 음악에 관심을 두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생업과 자녀 양육으로 시간 내기 어려운 동문도 많았던 탓에 처음엔 그가 원하던 반응은 아니었다. 강 이사장은 포기하지 않고 뜻 맞는 동기·선후배 몇 명이 모여 우선 작은 무대를 만들었다. 변화는 공연을 거듭하면서 생겼다. 동창회와 체육대회, 학교행사와 동창회장 이·취임식 등에 참여해 연주하자 관심을 보이는 동문이 하나둘 늘었다. “왜 사회적협동조합까지 만드느냐”고 의아해했던 사람들도 이들의 활동을 지켜본 뒤 합류했다.
사회적협동조합을 출범하기 한참 전인 201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해 꾸준히 이어오면서 정기연주회도 15차례나 열었다. 활동을 좀 더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기 위해 2025년 정식으로 배재사운드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배재사운드라는 이름도 이때 지었다. 배재의 음악을 다시 들려준다는 뜻과 배재를 대표하는 좋은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미를 함께 담았다. 현재 조합 임원은 이사장을 포함해 5명이다. 공연을 열 때마다 배재고 밴드부 출신 연주자와 음악에 관심 있는 동문들이 객원으로 참여한다. 조합은 2025년 기획재정부 지정 공익법인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친목 단체로도 활동할 수 있지만, 공연을 하고 회비와 후원금을 다루다 보면 재정 투명성이 중요해집니다. 배재 안에 머물지 않고 사회를 향해 활동하려면 운영체계도 필요하고요. 돈이 오가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처음부터 투명한 조직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악보 읽는 속도 느려져도 합주의 희열 깊어졌다

오랫동안 악기를 놓았던 사람이 다시 합주에 참여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젊은 시절에는 자연스럽게 읽던 악보를 한 박자씩 헤아려야 하고, 머릿속으로 계산한 음을 손가락과 호흡으로 옮기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가 가장 먼저 느낀 변화는 ‘체력’이 아닌 ‘머리의 속도’였다고.
“밴드 합주는 악보를 보고 박자를 계산하면서 동시에 다른 악기의 소리도 들어야 해요. 머리로 계산한 대로 손가락이 바로 움직여야 하는데, 그 속도가 예전보다 느려졌어요. 처음 합주할 땐 꽤 심각한 수준이었죠.”(웃음)
단원들의 실력과 연습 참여도도 제각각이다. 60~70대 단원 중에는 은퇴 후 비교적 꾸준히 연습에 참여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반면 최근 졸업한 20대 후배 중에는 음악을 전공한 이들이 많다. 이들이 선배의 연주를 지도하고 곡을 편곡한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던 과거의 선후배 관계가 음악을 매개로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관계로 바뀐 셈이다.
모든 단원이 매번 모여 연습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하지만 난도 높은 곡으로 정기연주회를 할 때면 연초부터 매주, 비교적 쉬운 곡이라 해도 무대에 올리기까지 3~4개월은 꼬박 연습이 진행된다. 클라리넷과 색소폰·트럼펫·유포니움·트롬본·드럼·팀파니·콘트라베이스 등 여러 악기가 제소리를 낼 때까지 연습하면서 그는 인생 후반의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고 한다.
“내가 내는 소리만 맞는다고 합주가 되는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들어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죠. 그렇게 각자 따로 연주하던 소리가 어느 순간 하나의 곡으로 완성됩니다. 그때 느끼는 희열이 굉장히 커요. 짜릿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습니다.”
연주의 결도 학창 시절과 달라졌다. 당시 밴드부의 중요한 역할은 응원이었기에 넓은 운동장과 경기장을 소리로 채우기 위해 크고 세게, 오랫동안 부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은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며 곡의 흐름과 다른 악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젊었을 때는 힘으로 밀어붙였다면, 중장년이 된 뒤에는 서로의 소리를 듣는 법을 배운 것이다.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도 20대 후배와 70대 선배가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연습실에 들어서면 모두 같은 악보를 보고 같은 박자를 맞춰야 하는 연주자가 되듯 서로 다른 세대를 잇는 힘 역시 음악이다.
“배재고 출신이라는 게 이런 모임을 할 수 있는 힘이라면, 세대 차이를 넘어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결국 음악입니다. 합주가 완성되는 순간의 기쁨을 음악을 해본 사람은 알거든요. 그 경험을 함께하기 때문에 나이가 달라도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추억의 응원곡으로 되찾는 ‘존중의 경쟁’

배재사운드는 10월 24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샤론아트홀에서 ‘씨스뿜바, 리턴즈-그때 그 시절 응원곡’을 연다. 무대에는 ‘성자들의 행진(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베사메무초’, ‘에이맨(Amen)’을 비롯해 1970~1980년대 운동장과 스탠드에 울려 퍼졌던 응원곡 10여 곡이 오른다.
공연 일주일 뒤에는 배재고와 양정고의 럭비 정기전인 ‘배양전’이 열린다. 두 학교의 오랜 전통인 배양전은 연세대와 고려대 정기전보다 먼저 시작된 행사로 전해진다. 강 이사장이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교생이 한두 달 전부터 운동장에 모여 응원가와 율동을 연습했다. 경기 당일에는 잠실학생체육관을 빌려 두 학교 학생들이 스탠드를 가득 채웠고, 밴드부와 응원부가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가 기억하는 당시의 응원은 단순히 상대를 이기기 위한 함성이 아니었다. 상대 학교를 놀리거나 깎아내리는 대신 새로운 응원곡과 율동을 만들어 보여주며 경쟁했다. 경기 중에는 응원단이 자리를 바꿔 상대 학교를 응원하고 서로의 교가를 불러주는 순서도 있었다.
“경쟁은 치열했지만 상대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문화는 아니었어요. 우리만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 학교의 응원곡도 함께 연습했습니다. 선수들도 경기가 끝나면 상대편 응원석으로 가서 교가를 불렀고요. 그렇게 서로의 전통을 알고 존중했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이 가능했습니다.”
최근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이 광주제일고와의 경기에서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응원 구호를 외쳐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스포츠 정신을 훼손하고 경기장 질서를 어지럽힌 사안이라고 판단해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출전 정지 6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 뉴스를 접했을 당시 심정에 대해 그는 “배재 출신으로 무거운 마음”이라면서 “이번 공연이 논란을 덮거나 학교의 명예를 앞세우는 자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선배들이 기억하는 응원의 본모습을 되살려, 응원이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언어가 아니라 함께 힘을 북돋는 문화였음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학생들이 그 말이 얼마나 심각한 의미인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예전의 배양전처럼 서로의 교가를 부르고 상대 학교를 응원하는 경험이 계속 이어졌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학업을 중시하는 학교 분위기와 학생 문화의 변화 속에서 정기전 규모는 작아졌고, 응원 연습에 들이는 시간도 줄었다. 오랜 응원곡 가운데 상당수는 더 이상 연주되지 않는다. 배재사운드가 잊힌 곡을 복원하고 음악을 전공한 후배의 편곡을 거쳐 오늘의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과거를 무조건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응원 문화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음악으로 되묻기 위해서다.
강 이사장은 “과거에는 이렇게 서로 존중하며 응원했다는 사실을 후배들이 보고 느꼈으면 한다”며 “학교행사에서 이어가기 어렵다면 배재사운드의 공연을 통해서라도 전통과 의미를 계속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우리만 즐기던 음악이 이웃을 위한 음악으로

배재사운드가 오랜 시간 품어온 중심 가치는 배재학당의 설립 이념인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와 그 궤를 같이한다. 이는 큰 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돕는 자세를 갖추라는 의미의 성경 구절이다. 강 이사장은 학창 시절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졸업 후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시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그는 “회사원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이 이념을 간직하며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며 “거창한 능력을 새로 갖추기보다 이미 가진 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다가 밴드부 시절 익힌 악기를 떠올랐다”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생각해보니 음악이었어요. 이제라도 배재사운드의 이름으로 나누고 싶었습니다.”
배재사운드의 주요 활동은 크게 세 가지다. 문화생활을 누리기 어려운 이웃을 공연에 초청하고, 직접 지역과 시설을 찾아가 음악회를 열고, 저소득층 어린이에게는 악기 연주를 가르친다. 현재 성북문화재단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 어린이는 약 50명이며, 음악을 전공한 젊은 후배들이 주로 교육에 참여한다. 그는 “이런 활동을 통해 음악을 선물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연주자가 받는 것이 더 많다”고 털어놨다.
“관객이 고맙다고 이야기해주실 때 느끼는 보람이 큽니다. 재능을 받는 사람보다 나누는 사람이 얻는 기쁨이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단원들도 같은 마음입니다. 단순히 악기를 함께 연주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연주가 누군가에게 도움 된다는 사실이 서로를 더 단단하게 묶어줍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조합은 현재 임원과 동문들의 후원, 공공 지원사업 등을 통해 활동비를 마련하고 있다. 강 이사장의 동기들이 공연 비용을 부담하며 젊은 후배들에게는 가능한 한 경제적 짐을 지우지 않고 있다.
강 이사장은 사회공헌 활동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도록 재정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말했다. 수익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연습실 대관 등 수익사업을 통해 마련한 돈을 초청 음악회와 찾아가는 공연, 어린이 음악교육에 다시 투입하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음악을 활용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관련 분야를 공부한 후배가 있어 활동 범위를 넓힐 가능성도 살피는 중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 있는 활동을 많이 보여드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배재사운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져야 후원과 참여도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사회공헌을 안정적으로 계속하려면 후원금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수익 구조도 필요합니다.”
그는 악기를 다시 잡기까지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학창 시절 듣던 노래를 우연히 들으며 그때의 자신과 꿈을 떠올렸고, 동기들에게 함께 해보자고 말을 건넨 것이 시작이었다.
“누구나 한때 좋아했던 일, 잘했던 일이 있을 겁니다. 너무 오래 쉬어서 지금 시작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부터 그냥 시작해보세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더 좋고요. 한 걸음 떼면 그다음 길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