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생활] ‘소득의 형태’ 바꿔라
건강보험료는 세금이 아니지만 체감은 세금 그 이상이다. 소득이 줄어든 은퇴자에게는 세금보다 건강보험료가 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건강보험료는 단순히 소득에 비례하지 않고, 일정 기준선을 넘느냐에 따라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은퇴 후 처음 맞닥뜨리는 재무적 충격의 근원이 국민건강보험료인 이유다.

김 씨와 최 씨, 박 씨 세 친구가 있다. 김 씨는 금액을 나눠 여러 예금에 가입했는데, 만기 시점이 같은 해에 몰리면서 이자 1050만 원이 한꺼번에 잡혔다. 이자에 국민연금 월 100만 원을 합쳐도 연 소득은 2250만 원이었다. 그러던 11월, 아들 회사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던 김 씨에게 지역가입자로 바뀌었다며 고지서가 날아왔다. 놀라운 것은 김 씨보다 소득이 많은 최 씨와 박 씨는 여전히 자녀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라는 점이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갈랐을까.
피부양자가 되기 위한 세 개의 관문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하려면 부양 요건과 소득 요건, 재산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우선 직장가입자에게 주로 생계를 의존하는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자매 등 법정 관계에 해당해야 하며, 소득은 연간 2000만 원 이하여야 한다. 사업소득은 더 엄격하다. 사업자등록이 있다면 사업소득이 발생할 경우 원칙적으로 제외되고, 사업자등록이 없다면 연간 사업소득 금액이 500만 원을 초과하면 제외된다. 주택임대소득은 사업자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소득이 발생하면 피부양자에서 제외된다.
재산세 과세표준 합계가 5억 4000만 원 이하라면 연 소득 2000만 원 이하 기준이 적용된다. 5억 4000만 원을 초과하고 9억 원 이하라면 소득 합계가 1000만 원 이하여야 하며, 9억 원을 초과하면 소득과 관계없이 재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여기서 가장 많이 오해하는 것이 재산 요건이다. 5억 4000만 원과 9억 원은 공시가격이 아니라 재산세 과세표준이다. 주택 한 채의 가격이 아니라 법령상 재산의 재산세 과세표준 합계로 판단한다. 재산세 과세표준은 공시가격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산정한다.
2026년 주택 기준 1세대 1주택은 공시가격 3억 원 이하 43%, 3억 원 초과 6억 원 이하 44%, 6억 원 초과 45%가 적용되고, 그 밖의 주택은 60%가 적용된다. 예를 들어 1세대 1주택인 공시가격 12억 원 아파트의 과세표준은 12억 원의 45%인 5억 4000만 원이다. 다른 재산이 없다면 공시가격 12억 원 근처까지 소득 2000만 원 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는 반면, 같은 12억 원이라도 다주택여서 60%가 적용되면 과세표준은 7억 2000만 원이 돼 소득 기준이 1000만 원으로 낮아진다. 따라서 부동산 뉴스에 등장하는 공시가격을 피부양자 재산 기준과 그대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또 1세대 1주택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본인의 과세표준은 재산세 고지서나 위택스에서 확인하는 것이 정확하다.

두 종류의 분리과세소득
건강보험료 계산에서는 예금이자나 주식배당처럼 원천징수로 과세가 끝나는 금융소득도 건강보험료 판정에 포함될 수 있다. 특히 이자와 배당을 합해 연 1000만 원 이하이면 피부양자 판정 소득에서 빠지지만, 1원이라도 넘으면 초과분만이 아니라 전액이 다른 소득과 합산된다. 김 씨가 바로 이 경우다. 예금 만기가 한 해에 몰리면서 이자 1050만 원 전체가 소득으로 잡혔고, 국민연금과 합산되면서 피부양자 자격을 잃었다.
반면 건강보험료 산정에서 빠지는 소득도 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대표적이다. ISA에서 발생한 수익은 일정액까지 비과세되고 초과분은 9.9%로 분리과세되는데, 이 수익은 건강보험료 산정 소득에 포함되지 않는다. 비과세 종합저축이나 저축성 보험의 비과세 이자도 마찬가지다.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에서 받는 사적연금 역시 현재 피부양자 판정에서 제외된다. 공단이 연금소득으로 보는 것은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히 ‘분리과세냐 종합과세냐’가 아니다. 어떤 종류의 소득이 어느 계좌에서 발생했느냐가 핵심이다. 같은 이자라도 일반 예금에서 나오면 판정에 들어갈 수 있지만 ISA에서 발생하면 빠진다. 배당주와 월 배당 상장지수펀드(ETF)가 시니어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이 문턱에 걸리는 사례도 주의해야 한다. 배당이 늘어난 해에 예금 만기까지 겹치면 금융소득이 한 해에 집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태가 자격을 가른다
국민연금 같은 공적연금은 피부양자 판정 소득에 포함되지만, 연금저축과 IRP에서 받는 사적연금은 포함되지 않는다. ISA 안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도 마찬가지다.
한 해 소득은 김 씨가 2250만 원으로 셋 중 가장 적다. 최 씨는 김 씨보다 900만 원, 박 씨는 1350만 원을 더 벌었다. 그런데 피부양자 자격을 잃은 사람은 가장 적게 번 김 씨다. 김 씨와 최 씨를 가른 것은 불과 100만 원의 이자 차이다. 이자가 1050만 원인 김 씨는 금융소득 전액이 판정에 들어가지만, 950만 원인 최 씨는 금융소득이 판정에서 빠진다. 그 결과 판정 소득은 김 씨 2250만 원, 최 씨 1200만 원으로 크게 벌어진다. 최 씨는 여기에 연금저축과 ISA에서 1000만 원을 더 벌어도 판정 소득은 국민연금 1200만 원 그대로다. 같은 1000만 원이라도 일반 예금이나 주식계좌의 이자·배당과 연금저축·IRP·ISA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건강보험상 취급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금에서도 차이가 난다. 일반 예금과 주식계좌의 이자·배당에는 통상 15.4%가 부과된다. 연금저축과 IRP를 연금으로 수령하면 연령에 따라 3.3~5.5%의 연금소득세가 적용된다. ISA는 일반형 기준 200만 원까지 비과세되고 초과분에는 9.9%가 적용된다. 결국 건강보험료를 생각한다면 ‘얼마를 버느냐’ 못지않게 ‘어느 계좌에서 어떤 형태로 버느냐’를 살펴야 한다.
피부양자 자격을 잃으면 지역가입자로 보험료를 내야 한다. 지역가입자 보험료는 소득에 부과되는 금액과 재산에 부과되는 금액을 합산해 산정한다. 2026년 기준 보험료율은 7.19%, 부과 점수당 금액은 211.5원이다. 여기에 장기요양보험료가 건강보험료의 13.14% 별도로 붙는다. 김 씨의 사례로 규모를 가늠해보자. 이자 1050만 원은 전액, 국민연금 1200만 원은 보험료 계산 때 50%가 반영된다. 피부양자 자격을 판단할 때 공적연금을 100% 반영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다. 이에 따라 소득월액은 137만 5000원이다. 여기에 7.19%를 적용하면 건강보험료는 월 약 9만 8900원, 장기요양보험료까지 더하면 월 11만 원 남짓이다. 여기에 재산에 따른 보험료가 추가된다.
이는 규모를 가늠하기 위한 예시다. 실제 보험료는 개인의 소득과 재산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공단 홈페이지의 모의계산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정확하다.
관련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