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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 생판 남들과 ‘가족’ 됐다

입력 2026-10-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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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북]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 조선희 작가

북인북은 브라보 독자들께 영감이 될 만한 도서를 매달 한 권씩 선별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조선희 작가가 사랑하는 미로헌의 특별한 공간도 함께 만나보세요.

함께 살기로 하면서 우리는 약속한 게 있다. 치매가 아닌 이상, 요양원이 아니라 집에서 서로를 돌보며 노후를 보내자는 것. 이른바 ‘커뮤니티 케어’에 대한 약속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의 첫 주자는 나였다. (…) 단지 공간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노후를 함께 돌보는 삶. 그 가능성을 리허설처럼 경험했다.

-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 67p

어느덧 60대, 남편과 사별한 뒤 싱글이 된 조선희 작가는 생판 남들과 살고 있다.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없는 다섯 사람이 ‘무연고 우연 가족’으로 산 지 벌써 4년째. 조 작가는 이들과 더불어 나이 들며 행복한 노년을 그려가고 있다.

▲조선희 작가(주민욱 프리랜서)
▲조선희 작가(주민욱 프리랜서)

제13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종합 부문 대상작인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 제목부터 발칙하다. 가족도 아닌 생판 남은 어떻게 뭉쳤고, 어떻게 살아갈까. 이 특별한 가족의 맏언니 ‘써니’, 조선희 작가가 솔직한 동거기를 풀어냈다.

제주 ‘미로헌(美老軒)’에는 다섯 사람이 산다. 집도 사람도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의미다. ‘미로허니’ 구성원은 써니(조선희 작가), 비누와 마루 부부, 수, 루나다. 혈연·학연·지연 어느 것 하나 얽히지 않은 이들은 스스로를 ‘무연고 우연 가족’이라 부른다. 집 설계부터 함께한 이들은 1년 넘는 공사 기간을 거쳐 2022년 마지막 날 입주했다. 각자의 공간은 66㎡(약 20평)이 채 되지 않지만 330㎡(약 100평의 집 전체를 함께 누린다.

생판 남과 사는 데는 낭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조 작가는 셰어 라이프의 핵심으로 ‘좋은 루틴’을 꼽는다. 정기 회의와 가사 분담, 공유 공간 이용법 등 생활의 규칙으로 각자의 자유를 지킨다. 아플 때는 서로의 보호막이 된다. 집을 짓던 중 유방암 진단을 받은 조 작가는 미로허니들의 돌봄을 받으며 “진짜 셰어 라이프의 완성은 돌봄과 보살핌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책은 단순히 외로움을 덜기 위한 공동체 생활을 말하지 않는다. 타인과 일상을 조율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더불어 ‘좋은 어른’으로 나이 드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혈연 밖에서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며, 100세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노년의 또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조선희 작가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조선희 작가 저서와 사인.(브라보 마이 라이프)

생판 남들과 함께 살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정년을 2년쯤 앞두고 있을 때였어요. 저는 싱글이고, 일을 그만두면 사회적인 역할도 사라질 텐데 혼자 늙을 수밖에 없겠다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가득했죠. 그때 절친한 비누가 “우리 부부와 제주에 집을 짓고 같이 살지 않겠느냐”고 기상천외한 제안을 했어요. 제가 교생 실습했을 때 학생으로 만난 비누는 오랜 인연을 이어온 특별한 존재예요. 그런 비누 부부였기에 같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와 루나도 부부가 추천해 믿음이 생겼죠. 그렇게 새로운 가족이 탄생했습니다.

마루, 비누, 수, 루나. 미로허니를 소개해준다면요?

비누는 미로헌을 탄생시킨 인연의 중심이에요. 마루는 비누를 따라 셰어 라이프에 발을 디뎠다가 이제는 중심이 된, 비유하자면 종범에서 주범이 된 인물이죠. 예쁘게 꾸민 방이 돋보이는 수는 가끔 저보다 더 허당인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루나는 언니·오빠들과 다른 유머 코드로 웃음을 주는 막내고요. 그런데 미로허니들이 맏언니인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네요. 하하.

▲미로허니 단체 일러스트레이션.(샘터사)
▲미로허니 단체 일러스트레이션.(샘터사)

셰어하우스를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요?

우리의 평균 나이가 올해로 57세를 넘었어요.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우리는 앞으로 나이 들 일만 남았다”는 사실이었죠. 설계는 시간이 흘러도 돈이 덜 드는 집, 늙어서도 안전한 집, 허세 없이 실용적인 집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계단 폭을 넓히고, 연장자인 제가 1층에 거주하는 등 안전을 고려했고요. 유지비를 줄이려고 태양광 발전과 열교환 환기장치에도 투자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한 건 함께 살되 각자의 삶을 지킬 수 있는 구조였어요. 침실과 거실, 욕실 같은 개인 공간은 독립돼 있고 대문과 현관, 주방과 살롱은 공유해요. 밥도 매번 같이 먹지 않아요.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고, 같이하고 싶을 때는 자연스럽게 어울려요. 독거의 자유와 동거의 안전성을 함께 누리는 거죠.

셰어 라이프를 잘 이어가기 위해 어떤 생활 원칙을 지키고 있나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역할 분담과 만장일치예요. 각각 ‘독박 방지’와 ‘독단 방지’라고 표현해요. 그 중심에는 월례 회의가 있어요. 청소나 집수리 등 공동생활에 필요한 일을 의논하고 역할을 정하죠. 의사결정은 가능하면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이야기해요. 함께 모이기 어려우면 줌으로라도 합니다. 지금까지 회의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고, 결정한 내용은 회의록으로 남겨요.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는 대문과 현관을 조용히 여닫는 등 사소한 약속도 있어요. 이런 것들이 쌓여 생활의 루틴이 됐죠.

‘정말 같이 살기 잘했다’고 느낀 순간과, 반대로 ‘혼자였으면 편했겠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요?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은 역시 아플 때예요. 집을 짓던 중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미로허니들의 돌봄을 받으며 ‘서로 돌보며 늙어가는 삶’을 예상보다 일찍 경험했어요. 지금도 우리는 서로의 건강을 살피고, 늦은 밤에도 병원에 동행하죠. 집을 비울 때 우편물이나 냉동식품을 대신 받아주는 사소한 도움도 든든하고요. 매달 한 번은 함께 식사하며 다양한 음식을 즐기고, 주방·생활용품을 공유하는 재미도 있어요. 혼자라면 누리기 어려운 것들이죠.

반대로 ‘혼자였으면 좋았겠다’고 느낀 적은 딱히 없어요. 대부분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하니까요. 유일한 남성인 마루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하지만 누구나 꼰대가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따지기 전에 한 번 더 물어보기. 그것이 생판 남과 오래오래 함께 사는 기술이다. 아마 다른 식구들은, 이 언니가 잘 늙어보겠다고 이렇게 부단히 애쓰는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뇌를 자주 그리고 많이 쓰고, 관계를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다듬어가며 나이 들어가는 지금의 내가 참말이지, 좋다.

-‘나이 60, 생판 남들과 산다’, 220p

조립식 가족으로 살면서 새롭게 배운 삶의 태도가 있나요?

오히려 같이 살면서 뇌를 많이 쓰게 되는 게 좋아요. 혼자라면 내 마음대로 결정하면 되지만 여기서는 회의 시간을 언제로 할지, 같이 밥을 먹을지, 풀을 언제 뽑을지 사소한 것까지 서로 이야기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거든요. 연령대도 다르고, 제가 맏언니다 보니 꼰대 같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스스로 성장한다고 느끼는 순간도 많아요. 혼자 추측해 상대를 오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고,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다스리는 법을 익히게 됐죠.

공동체 주거가 노년의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제가 책을 쓴 이유도 “이렇게 살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에 하나의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죠. 꼭 남들과 살라고 권하는 것도, 미로헌과 똑같은 형태로 살라는 것도 아니에요. 친구들이 공동명의로 아파트를 구하거나 자매들이 같은 빌라의 층을 나눠 살 수도 있죠.

함께 살 사람을 고를 때는 뜻보다 여건이 중요해요. 모든 일에서 뜻이 같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어떻게 늙어갈지에 대한 방향과 여건이 비슷했어요. 그래서 “뜻 맞는 사람을 찾지 말고 여건 맞는 사람을 찾으라”고 합니다. 뜻은 살면서 맞춰가면 돼요.

그리고 더 분명해진 건 가장 든든한 노후 대책이 ‘관계 자산’이라는 점이에요. 돈도 집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회적 관계예요. 아직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누구와 어떻게 늙어갈지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미로헌에서 살면서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요?

저는 계속 좋은 어른으로 나이 들고 싶어요. 제 노년 프로젝트의 모토가 “노인 말고 어른, 어르신 말고 시민”이에요. 나이가 권력이 아닌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죠. 나이로 밀어붙이지 않고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제 이야기도 하면서 대화와 토론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람. 그런 어른으로 미로허니들과 함께 늙어가고 싶어요.

(이미지=이은숙 기자)
(이미지=이은숙 기자)

(이미지=이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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