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메뉴

산꼭대기

기사입력 2016-07-26 11:06

▲필자부부가 도봉산을 오르고 있다. (양복희 동년기자)
▲필자부부가 도봉산을 오르고 있다. (양복희 동년기자)
찌푸린 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빼는 이른 오후. 날씨도 부쩍 이상 증상으로 기승을 부린다. 전 세계가 무더위와 폭우, 테러로 들끓는다. 온통 어수선한 분위기에 사람의 마음도 혼란스럽다 못해 멍하다. 혼 나간 영혼들은 정거장마다 멈추어서 한 시대를 장식하고,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이 저 높은 곳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한발 한 발 옮기고 있다.

산마루로 가는 길, 아침의 발걸음에는 고개를 살짝 든 햇살이 상큼한 미소로 인사를 한다. 계절의 중턱에서 올려다보는 높은 산의 절경은 웅장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산등성이들은 저마다 서로 기대어 세차게 불어대는 지독한 외로움도 잘 버텨가고 있다. 펼쳐진 대자연의 공간은 파랗게 펼쳐진 하늘의 섭리 아래 꿋꿋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버팀의 갈증을 마구 뿜어내고 있다.

꼭대기로 향하는 초입부터 왁자지껄하다. 좁은 거리에는 병들어 신음하는 도시의 한복판을 벗어난 피난민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총천연색 일률적 빛깔로 온몸을 포장하고, 이미 소진해버린 빈 산소통에 재 충전을 준비한다. 저마다의 삶에 무거워진 심장 문을 활짝 열고 심호흡하는 소리가 왕왕거린다. 이른 아침부터 인내를 벗 삼아 두려움 없는 용기가 활기찬 삶을 향해 시작을 알린다.

봉우리를 지나고 저 높은 곳을 향해 한 고개 두 고개 의지의 기반을 쌓아간다. 어떠한 삶의 폭풍우에도 견디기 위한 강인함을, 온갖 세상 흔들림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저 바위들처럼, 든든하게 지켜내기 위한 안간힘으로 산소를 들이킨다. 사람들은 온전한 인격과 풍부한 지혜로 안정된 삶의 설계도를 위해 묵묵한 침묵과 함께 힘겨운 중턱으로 향한다.

산언덕 위로 그림 같은 하얀 집들은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된다. 환상 속, 꿈을 가라앉히려 잠시 약수터로 향한다. 알록달록 차려입은 닮은 꼴 등산객들도 욕심의 갈증들을 이제쯤은 풀고만 싶은 가보다. 쪽 바가지 한 모금으로 마른 목도 축일 겸, 어깨의 무거운 짐 들을 산 중턱 바람결에 내려놓는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낡아진 긴 숨을 한껏 몰아 쉬었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여린 나뭇잎들도 파릇한 미소로 호흡을 가다듬는다. 어미 등줄기에 다소곳이 매달려 자연의 섭리로 가냘프게 떨고 있다.

산 중턱에는 자신을 구속하며 흐트러지지 않는 해묵은 소나무들이 검푸르게 자태를 드러낸다. 계곡아래로 맑고 깨끗한 투명의 물줄기가 줄기차게 쏟아 내리며 평화로움을 노래한다. 혼탁하게 물들어 버린 사람의 가식들을 씻어내고 싶다. 뭇사람의 마음속도 계곡물처럼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쉼터가 필요한 지친 사람들이 또 마음을 감추고, 발걸음만 무작정 꼭대기로 향하고 있었다.

사람의 인내는 온갖 자유의 방종 아래서도, 자신을 속박할 수 있는 구속의 지혜를 발걸음 위로 피어오르게 하는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으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다만 살아가면서 인내와 절제, 자신의 성찰로 그 욕심을 무던히 내려야만 한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꼭대기를 향할 때처럼 끊임없이 스스로 노력해 마침내 얻어 갈 수 있는 것이리라.

마지막 고개, 정상을 위한 고지가 눈앞에 보일수록 발의 무게가 더 무거워진다. 끝을 향한 마지막 인내가 빗장을 풀어댄다. 마침내, 삶의 종착점 같은 환희가 두 팔을 힘껏 뻗어 올린다. 꼭대기를 향한 꿈과 인고가 넓은 하늘로 소리 없이 흩어지고 있다. 가팔랐던 오르막길을 위로받기 위해 애써 참아왔던 지나간 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비로소 꾹 참아왔던 올바른 삶 뒤의 터질듯한 숨 막힘이다.

어느새, 숨 가쁜 산의 끝자락 정상에 올라와 있다. 힘겹게 올라온 길들이 저 멀리로 굽이굽이 내려다 보인다. 저 아래 성냥갑 같은 온 세상은 마치 다른 나라만 같다. 발 아래로 보이는 세상이 힘껏 올라와 보니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보인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숲과 바위와 하늘, 자연의 맑은 공기뿐이었다. 산꼭대기에 올라와 보니 끝내 별것이 없었다.

단지 가볍고 가운데가 뻥 뚫린 위대한 동그라미인 원(0), 그것은 우주의 모양이었다. 영이라는 오묘한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고 있었다. 산소라는 맑은 공기가 세상사에 찌들고 답답해진 인간의 가슴을 맘껏 녹여 내고 있었다. 꼭대기 영의 세상, 텅 비어있는 삶의 공터 공간에서 숨 쉬며 존재하는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내려다보며 훌훌 털고내고 있었다.

산꼭대기를 향해 무던히도 앞만 보고 올라왔다. 삶의 정상을 위해 그렇게도 힘든 역경을 헤쳐 지나왔는데, 결국 사람들은 시작이라는 발걸음으로 또 가장 안전하게 아래로 내려 와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모든 산행 길의 마무리였다.

꼭대기에서 다 털고 다시 빈손으로 내려가야만, 멋진 하산 길, 그것이 사람들에게 남은 삶이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더 궁금해요0

관련기사

저작권자 ⓒ 브라보마이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 / 300

브라보 인기기사

  • 학연·지연·혈연은 그만! 요즘 중년의 관계 맺기 트렌드
  • 중장년의 '어른 공부'를 위한 공부방, 감이당을 찾다
  • 중년 들어 자꾸만 누군가 밉다면, “자신을 미워하는 겁니다!”
  • “은퇴 후 당당하게” 명함 없어도 자연스러운 자기소개법은?

브라보 추천기사

브라보 테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