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재정·건강·관계 점검, 기관 연결 필요… 서울시, “중장년 종합계획 준비 중”

서울 시민이 40세부터 일자리와 재정, 건강, 관계 등을 온라인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정책과 상담을 안내받는 ‘서울형 생애설계 검진’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기존 중장년 정책이 일자리와 재취업에 치우쳐 있었다면 앞으로는 돌봄과 건강, 관계, 사회참여, 자기실현까지 삶 전반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연구원은 27일 서울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서울 중장년 삶 실태와 지원 체계: 취약성을 넘어 다양성으로’를 주제로 ‘중장년 생애전환 지원 정책 포럼’을 열었다. 포럼에서는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책임지는 ‘더블케어’, 중장년의 여가생활, 생애전환 지원체계를 주제로 3개 발표가 진행됐고, 각 주제에 대한 전문가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오균 서울연구원장은 개회사에서 “중장년은 돌봄과 일, 여가, 노후 준비 등 여러 생애과제가 중첩되는 동시에 개인별 삶의 여건과 경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 중요한 시기”라며 “다양한 생애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지원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장년, 부모·자녀 함께 돌봐… 40대 더블케어 65.7%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최지은 서울연구원 인구변화대응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경제적 부양과 신체적 돌봄을 합쳐 한 성인이 2명 이상의 가족을 책임지는 경우를 ‘더블케어(이중 부양·돌봄)’로 정의했다. 부모와 성인 자녀뿐 아니라 손자녀와 배우자의 부모, 비동거 가족까지 포함해 중장년이 실제 부담하는 돌봄의 총량을 보자는 접근이다.
가족실태조사의 서울시민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성인 전체의 38.2%가 2명 이상에게 경제적 지원과 집안일, 돌봄 등을 제공했고 22.0%는 3명 이상을 책임지고 있었다. 연령별 2명 이상 케어 비율은 40대가 65.7%로 가장 높았고 50대도 52.5%였다. 소득별로는 저소득층보다 중산층 이상에서 더블케어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최 부연구위원은 “정책을 개발할 때 가족의 책임을 더욱 떠넘기는 방향으로 설계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며 “더블케어 제공자의 소진이나 일·가정 양립, 경력 단절에 대응하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외 정책을 검토한 결과 더블케어 자체에 특화된 정책은 찾기 어려웠으며, 해외에서는 돌봄 관계를 법적 직계가족에 한정하지 않는 사례가 상대적으로 많다고 설명했다.
이 발표에 대한 지정토론에서 김경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더블케어를 곧바로 취약성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더블케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나 고정관념 때문에 제대로 집단을 타깃하지 못할 수 있다”며 “그 안의 다양성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실효성 있는 정책 개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정토론에 나선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중장년을 하나의 ‘낀 세대’로 묶는 시각을 경계했다. 남 교수는 “세대 내의 변이가 상당히 크다”며 “중장년이 겪는 문제는 세대 자체의 독특한 특성이라기보다 저출생과 고령화, 퇴직 연령, 노후 준비와 사회보장 제도 등 사회경제적 여건에서 나타나는 반응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롯이 ‘나의 시간’으로… 중장년 여가의 재구성
두 번째 발표자인 반정화 서울연구원 포용도시연구실장은 중장년기를 여가가 줄어드는 시기가 아니라 가족 책임 속에서 개인의 여가를 다시 설계하는 ‘전환과 재구성의 시기’로 봐야 한다고 했다.
조사 결과 중장년은 직장과 가사, 자녀 일정으로 자유시간이 부족했고 짧게 생긴 여가시간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자녀가 성장하면 가족 중심 활동이 줄면서 문화·운동·여행 등 개인 활동이 다시 늘어나는 모습도 나타났다. 운동은 단순한 취미에서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으로 의미가 바뀌었고, 문화·관광 활동 역시 소비보다 경험과 학습, 향후 삶을 준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실제 여가 참여 빈도는 50대에서 가장 낮았다가 60대에 다시 증가했고, 여가 만족도 역시 50대가 가장 낮았다. 경력이 불안정한 중장년과 중장년 1인 가구, 은퇴 초입 집단에서 특히 낮게 나타났다. 반 실장은 “청년기에 집중된 여가 정책을 중장년기의 여가 전환과 재확산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넓혀야 한다”며 “중장년에게는 개인 여가 회복과 은퇴기의 재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발표의 지정토론을 맡은 신인철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연령보다 ‘생애 사건’을 기준으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같은 50대라도 어떤 사람은 은퇴 시기에 들어갔고 어떤 사람은 이제서야 자녀를 키울 시기가 된다”며 “소득 기준이 아니라 생애 사건을 기준으로 한 한시적인 생애전환 바우처나 여가전환 바우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지정토론자인 황남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중장년 여가의 전제조건으로 ‘시간’을 꼽았다. 황 연구위원은 “아이를 돌보고 부모를 돌보는 시간이 계속된다면 여가를 누릴 시간 자체가 주어지지 않는다”며 “중장년이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만큼 고용주인 기업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연구위원은 다양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도 취약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여가 참여율과 만족도가 낮았던 경력 불안정 집단, 중장년 1인 가구, 은퇴 초입 집단을 보면 고용 불안정과 단독가구, 소득 감소가 함께 나타난다”며 “다양성과 취약성을 연결해서 다각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장년 특화정책 56% ‘일자리’… 관계·건강 등 살펴야
세 번째 발표를 맡은 최봄이 서울연구원 인구변화대응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서울의 40세에서 64세 중장년을 356만 명, 서울 인구의 38%로 제시했다. 중장년 관련 정책을 분석한 결과 중장년을 직접 대상으로 한 특화정책 25개 가운데 14개(56%)가 일자리 분야에 집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 부연구위원은 “현재 정책 영역에서 중장년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가족을 부양하는 가족 부양자와 노동자로서 주로 정책화돼 있다”며 “지원받는 수혜자를 넘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축적된 자원을 발현할 수 있는 기여자이자 다양한 생애과정을 가진 집단으로 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부연구위원은 이날 정책 아이디어로 가칭 ‘서울형 생애설계 검진’을 제안했다. 영국의 ‘미드라이프 MOT’를 참고해 서울시민이 40세가 되면 안내를 받고, 이후 일정 연령마다 일과 재정, 건강, 관계 등을 온라인으로 자가점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결과에 따라 50플러스센터와 평생교육센터, 가족센터, 보건소 등 기존 기관의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필요하면 심화상담으로 연결한다.
검진은 취약한 사람을 가려내는 방식과도 차이를 뒀다. 최 부연구위원은 “위험 등급을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고 있는 부분은 자원을 확인하고 사회참여나 기여 활동으로 연결하며, 함께 준비할 영역은 공공이 지원하는 체계”라며 “위험의 선고가 아니라 준비의 출발점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발표의 지정토론자인 안현찬 서울연구원 포용도시연구실 연구위원은 중장년기에 자신이 축적한 경험과 자원을 다음 세대와 사회에 기여하면서 의미를 찾으려는 ‘생성감’에 주목했다. 안 연구위원은 “일자리와 가족 부양이 눈에 보이는 중요한 문제였다면 생성감은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문제”라며 “생애설계 검진에서도 중장년이 어떤 생성감을 갖고 있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파악해야 개인에게 맞는 정책을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유진 서울시 평생교육국 중장년지원과장은 서울시의 정책 추진 상황을 설명하면서 연구진의 제안 취지에 공감을 나타냈다. 김 과장은 “그동안 중장년은 사회의 허리로 인식됐기 때문에 일자리나 취업, 재취업 교육·훈련 쪽에 정책이 집중돼 온 것 같다”며 “지금의 중장년은 살아온 삶의 경로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형 생애설계 검진 제안에 대해서는 “생애설계 건강검진처럼 하나의 관문으로 작용하면서 자신을 점검하고 미래를 대비하게 하는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연구 내용을 서울시 정책에 잘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다만 일자리 정책에서 다른 영역으로 무게중심을 단순히 옮기는 방식은 아니라고 했다. 김 과장은 “일자리와 취업 분야에서도 여전히 수요가 많고 정책 경쟁률도 높다”며 “일자리와 취업, 직업훈련도 같이 가되 그동안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관계와 역할, 자기실현 영역까지 정책의 목적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서울시가 지난 7월 중장년지원과를 신설한 뒤 중장년 정책 전반을 담은 ‘중장년 종합계획’을 올해 안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50플러스센터와 관련 기관 등 여러 전달체계가 함께 움직여야 정책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기존 50플러스 인프라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한종 서울시50플러스센터협의회장은 “50플러스센터는 자치구에서 중장년의 인생 후반전 준비를 지원하는 베이스캠프이자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중장년지원과와 센터가 함께 서울시민의 관점에서 역할을 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논의는 중장년을 하나의 ‘취약계층’으로 규정하거나 반대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의 허리’로만 보는 기존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모였다. 같은 40대와 50대 안에서도 일자리와 소득, 가족구성, 돌봄 부담, 건강, 사회관계가 다른 만큼 정책 역시 하나의 프로그램보다 각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기존 서비스를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