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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기사입력 2017-09-27 10:46

▲“아드님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신용재 동년기자)
▲“아드님을 제가 책임지겠습니다”(신용재 동년기자)
어느 날 둘째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를 소개하겠다면서 언제쯤 시간이 되느냐고 물어왔다. 필자가 상경해서 생활한 이후 울산 집을 지키면서 혼자 살고 있는 둘째가 늘 걱정이 됐는데 그 아들이 결혼할 사람을 인사시키겠다고 해서 바로 일정을 잡아 만났다.

아들의 여자 친구는 표정이 밝고 항상 미소를 띠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당돌하게 “아드님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아들이 키도 크고 호남형이라 키가 큰 편이 아닌 예비 며느리와 결혼을 시키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으니 그 선택을 믿기로 했다. 세상이 달라져 요즘 젊은이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잘 만나지도 않는다 하니 눈치만 보고 빨리 결혼하길 기다렸다.

그 후 시간이 흘러도 결혼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아들에게 잘 지내는지 슬쩍 물어봤다. 아들도 고민하고 있었다. 이유인즉슨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하나밖에 없는 딸을 너무 좋아해서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결혼을 좀 천천히 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혼자 있는 아들이 걱정되어 빨리 결혼을 시키고 싶었는데 급할 것 없다는 예비 사돈의 생각에 난감했다.

결국 필자가 나서야 했다. 만약 결혼을 더 늦춘다면 다른 혼처를 알아보겠다고 통보한 후 상견례 일자를 빨리 잡도록 했다. 이윽고 상견례 일정이 잡혀 양가 부모가 만났다. 이미 딸을 통해 상황을 전해 들은 예비 사돈도 더 이상 결혼을 늦출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상견례에 나온 것 같았다.

예비 신부의 부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젊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약 10년 정도 우리 부부보다 젊은 사돈이었다. 서로 결혼하게 되었음에 감사해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상견례가 진행되었다. 길일을 택해 결혼 일정을 잡는 등 결혼식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돈은 이미 아들과 만나 술도 함께하고 노래방까지 다니면서 아들의 품성을 충분히 검토했다고 한다.

필자는 사돈 내외가 젊어서 오래도록 아들 부부를 가까이서 잘 돌봐줄 것 같아 더욱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안심이 되는 것은 사돈 내외가 우리 아들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언행 바르고 품성이 좋아 괜찮은 아들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사돈 될 분으로부터 칭찬을 받으니 그날따라 아들이 더욱더 대견했다.

예비부부는 결혼 준비를 척척 해나갔다. 필자는 혼주로서 처음 맞는 결혼식이라 걱정만 했는데 직접 식장을 잡아 예약하고 청첩장 인쇄 등 자신들이 알아서 다 했다. 심지어 청첩인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만 엑셀로 만들어주자 청첩장 발송 준비까지 다 했다. 예비부부가 직접 주도하니 예단 등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들만 처리하고 나머지는 조언만 했다.

작은아들 결혼식을 생각하면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당시 사돈댁에서 준비한 음식들이 얼마나 푸짐했는지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이 “그때 정말 잘 먹고 즐거웠다”고 지금까지 인사를 해온다는 사실이다. 귀경 중 차내에서 실컷 맛있게 먹고도 남아 귀가할 때 봉지에 싸들고 갈 정도였다. 사돈 내외분께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한다.

결혼식이 끝나고 파리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얼마 있다가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결혼 전에 모아두었던 돈 1000만원이 있는데 아빠한테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각자의 부모님에게 결혼 전에 모은 돈을 몽땅 드리고 자기네들은 완전히 새 살림을 시작하겠다는 설명이었다. 요즘 세상 아이들 같지 않았다. 나름대로 새로운 삶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것이 보여 대견했다. 비록 큰돈은 아니지만 부모를 생각하는 아이들 생각이 참 장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후 며느리는 더욱 예쁘게 보였다. 아들이 좀 과묵한 성격인데 며느리가 약간 말을 재미있게 하는 편이다. 마치 아들 대변인처럼 우리 부부가 궁금한 것들을 며느리가 속 시원하게 다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진심으로 아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며느리의 언행을 통해 느끼고 있다. 결혼 후 며느리의 첫 생일에 결혼반지 외에는 다른 반지가 없어 극구 사양하는 며느리를 설득해 작은 금반지 두 개를 생일선물로 해줬다.

결혼 2년 차에는 며느리가 아들을 낳아 우리 부부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아내의 핸드폰에는 손주 사진으로 꽉 차있다. 며느리가 매주 손주와 영상통화를 하게 해주고 수시로 카톡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보내줘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걱정했던 집 문제도 잘 해결됐다. 40평 임대 아파트를 계약해 2년 후에는 새 집으로 손주와 함께 이사 갈 꿈에 부풀어 있다. 사회에 하나씩 적응해가는 아들 내외의 모습을 보는 게 요즘 우리 부부의 큰 기쁨이다. 며느리는 결혼 전 했던 약속처럼 변함없이 내조를 잘하고 있어 고마운 생각이 든다. 아들로부터 받은 1000만원은 그간 아들 부부로 인해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을 감안해 그만큼 더 보태서 돌려줘야 할 것 같다. 사이좋게 예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고마워 어떻게든 보답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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