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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베스트셀러 70년 '민족과 역사를 거쳐 글로벌한 개인시대로'

기사입력 2015-04-03 09:22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

▲이태인 기자 teinny@

광복 이후 출판시장은 1950년의 6·25, 1960년의 4·19와 1961년의 5·16, 1972년의 10월 유신,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 1989년의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1997년의 IMF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말미암아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많이 읽히는 책의 유형이 달라진다. 광복 이전이 암흑기였다면 광복 이후 6·25가 터지지 직전까지는 민족문화 재건기로 볼 수 있다. 이후 1950년대는 전후 허무주의, 1960년대는 이데올로기, 1970년대는 산업화, 1980년대는 역사성, 1990년대는 대중출판, 2000년대는 글로벌 출판, 2010년대는 디지로그 출판 시대로 정리할 수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사진


◇ 광복~1949년 민족문화 재건

“아버지가 들고 온 『조선역사』란 책에 빨려들어 밤새도록 읽고 모자라 수업시간에까지 읽다가 들켰다. 그 바람에 전교생 앞에서 10여분이나 을지문덕이 수나라의 대군을 무찌르는 대목을 소리 높여 읽는 수모를 겪었다. 그 바람에 학생들은 그 책이 동이 나도록 모두 구입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사학과 교수였던 김성칠(金聖七, 1913∼1951)이 보고 겪은 6·25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담은 『역사 앞에서』(창비)에 실린 신경림 시인의 추천사에 나오는 글이다. 신 시인은 한 칼럼에서 『조선역사』가 “한글을 깨치고서 처음 읽은 책”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이 광복 이후 최초의 베스트셀러다.

해방 공간 시기에는 우리 역사와 글, 문학을 펴내고자 하는 욕구와 읽고자 하는 욕구가 넘쳤다. 이런 욕구 때문에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1947), 『조선어표준말모음』(조선어학회, 1946) 등의 사전과 학술교과서가 인기를 끌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로는 『해방 전후』(이태준), 『내가 넘은 삼팔선』(후지와라 데이, 1949), 『나는 자유를 선택하였다』(크리미센코, 1948),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 1948), 『목넘이 마을의 개』(황순원), 『렌의 애가』(모윤숙), 『청록집』(조지훈 외) 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jyelee@

◇ 1950년대 전후 허무주의

1950년대를 상징하는 베스트셀러는 정비석의 『자유부인』이다. 한국전쟁으로 한반도의 전체 인구 3000만 명 중 3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전쟁의 후유증이 적지 않았을 때에 대학교수 부인의 파탄적 행동을 그린 소설이 1년 만에 10만 부가 팔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자 이 소설이 “문화의 파괴자로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적군”(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이라는 공격이 나왔고, 작가는 열띤 논쟁을 벌여야 했다. 『우리말 큰사전』이 여전히 인기를 끄는 가운에 젊은 세대에게 유머감각을 크게 심어준 『얄개전』(조흔파)이 등장했다.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에는 『슬픔은 강물처럼』(최희숙), 『마음의 샘터』(최요안), 『청춘극장』(김래성), 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조병화) 등이 있다.


◇ 1960년대 이데올로기

1960년대를 상징하는 베스트셀러는 최인훈의 『광장』이다. 소설 속 철학도 이명준은 북에 올라가 북한의 정치체제에 가담해보지만 남의 ‘밀실’과 북의 ‘광장’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다 제3국행을 택한 끝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이야기는 4·19의 성과를 5·16세력에게 빼앗긴 경험을 지닌 지식인에게 깊은 허무감을 안겼다. 이 시기의 베스트셀러에는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박계형), 『저 하늘에도 슬픔이』(이윤복), 『석녀』(정연희), 『조선총독부』(유주현), 『거대한 뿌리』(김수영), 『금강』(신동엽) , 『빙점』(미우라 아야코) 등이 있다.


▲이태인 기자 teinny@

◇ 1970년대 산업화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청년문화’가 등장한 1970년대는 『별들의 고향』(최인호), 『영자의 전성시대』(조선작), 『겨울 여자』(조해일) 등의 이른바 ‘호스티스 소설’들이 한 흐름을 이뤘다. 산업사회로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여성의 상품화 현상을 ‘호스티스’라는 사회적 존재에 초점을 맞춰 다루고 있는 이 작품들은 고도성장의 이면에 숨은 우리 사회의 그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늘은 또 있었다. 부랑노동자의 삶을 그린 황석영의 『객지』와 도시빈민의 삶을 그린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이 시대의 주목할 베스트셀러로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박완서),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서울 1964년 겨울』(김승옥), 『데미안』(헤르만 헤세) 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jyelee@

◇ 1980년대 역사성

1980년대는 이념의 시대이자 불의 시대였다. 대학과 신문사에서 쫓겨난 지식인들이 출판계에 유입되어 변혁이론의 창출과 보급에 앞장섰다. 대표적인 성과로 강만길의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를 비롯한 근현대사 관련 서적을 꼽을 수 있다. 1980년대는 대하소설의 시대이자 시의 시대이기도 했다.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등은 모두 대중에게 정치적 각성을 하게 만든 ‘역사교과서’였다. 1980년대 내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이념시나 민중시가 거대한 트렌드였지만 정작 불로 뜨거워진 대중의 몸을 식혀준 것은 쉽게 읽히는 서정시였다. 서정윤의 『홀로서기』,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이해인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등의 시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대중에게 위안을 안겨주었다. 이밖에 이 시기를 상징하는 베스트셀러로는『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마광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바스콘셀로스), 『숲속의 방』(강석경), 『인간시장』(김홍신) 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jyelee@

◇ 1990년대 대중출판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된 직후 시작된 1990년대가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은 ‘개인’이었다. 1990년대 최초의 밀리언셀러인 『세계는 넓고 (내가) 할 일은 많다』(김우중)에서부터 1990년대 말의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까지 책 제목에 ‘나’는 넘쳤다. 세계화와 정보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컴퓨터 길라잡이』(임채성 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한호림),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등 개인의 성공 욕망을 자극하는 실용서나 자기계발서가 상한가를 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의 출판시장을 휩쓴 『소설 동의보감』(이은성), 『소설 토정비결』(이재운), 『소설 목민심서』(황인경) 등의 역사인물소설 트로이카들도 사실상 자기계발서 역할을 했다.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이었던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 『일본은 없다』(전여옥),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 등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었으며,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박완서), 『물 위를 걷는 여자(신달자)』 ,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 『모순』(양귀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 『혼자 눈뜨는 아침』(이경자) 등 사랑(결혼)과 일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베스트셀러로는 『퇴마록』(이우혁), 『드래곤 라자』(이영도),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석용산),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잭 캔필드 외), 『오체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등이 있다.


◇ 2000년대 글로벌 출판의 시대

2000년대는 절대 고독의 개인이 발견되는 여정이었다. 고학력 사회가 되었지만 고학력자일수록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는 바람에 성공욕구만 넘쳐났다. 덕분에 베스트셀러의 산실은 자기계발서였다.『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 줘잉),『화』(틱낫한),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 『마시멜로 이야기』(호아킴 데 포사다 외), 『배려』(한상복),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켄 플래차드 외),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 『시크릿』(론다 번) 『이기는 습관』(전옥표)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대중은‘성공’을 버리고 ‘행복’으로 말을 바꿔 탔다. 2000년대의 베스트셀러로는‘해리포터’ 시리즈(조앤 K. 롤링)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과 같은 블록버스터 소설, MBC <느낌표>방영도서,‘Why’를 비롯한 스토리만화 등이 있다. 이 밖에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국화꽃 향기』(김하인), 『가시고기』(조창인) 등과 같은 극도로 축소된 인간관계를 다룬 소설들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류시화)도 있다.


▲이태인 기자 teinny@

◇ 2010년대 디지로그 출판의 시대

1998년의 국지적인 IMF 외환위기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차원이 달랐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광풍 앞에 개인은 오로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대안적인 사람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대 초반에는 ‘셀프힐링’의 책들만이 인기를 끌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등 멘토가 던져주는 ‘위로와 공감’의 어록집,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등 사회적 어젠다를 담은 책, 대안의 삶, 성찰, 관계나 소통 등을 다룬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 『해를 품은 달』(정은궐), 『미생』(윤태호) 등의 미디어셀러와 『서울 시』(하상욱) 등이 이 시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다.


이 시대에 인기를 끄는 것은 위로와 공감의 어록, 관계와 소통을 다룬 책들이다. 이제 개인은 오로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일까.



한기호(韓淇皓)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학 학사, 2000년 제41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기획부문 출판상, 학교도서관 저널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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